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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만드는 법

성범죄 카르텔은 경찰을 다 보고 있었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제1382호
등록 : 2021-10-04 13:08 수정 : 2021-10-0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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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11일 국회 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경찰의 모니터링을 감지하는 웹하드 업체의 범죄수법을 다룬 방송 뉴스가 화면으로 상영됐다. 국감장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권미혁 의원실 제공

“불법 영상물은 확인되는 즉시 삭제해야 하나, 그게 다 돈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놔둔다.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가 와도 ‘경찰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거짓말한다.”

2017년 5월,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에 당시 국내 웹하드 1위 업체 직원이 쓴 내부 고발 글이 올라왔다. 불법 영상물이 올라오면 걸러서 삭제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충격적인 내용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추가 제보가 줄이어 두 달 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됐다.

자신의 신체가 찍힌 영상이 웹하드에 업로드된 사실을 알게 된 피해 여성은 디지털 장의사 업체(당사자가 비용을 내면 온라인에 배포된 자료를 삭제해주는 대행업체. 디지털 세탁소로도 불린다)에 자료 삭제를 요청했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 성형시술을 감행했다. 그럼에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오점을 가지게 됐다는 심정으로 인해 자포자기하고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생을 마감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후에도 그의 영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유작’으로 포장돼 다시 업로드됐다. 다운로드 비용 100원으로.

웹하드 카르텔, 병 주고 약 주고 그 약마저 가짜
여성의 동의 없이 영상을 찍고, 유포하고, 판매하는 돈벌이가 거대한 성폭력 산업구조를 형성했다. 웹하드 업체-필터링 업체-디지털 장의사가 강고한 카르텔을 만든 것이다. 웹하드 업체 소유주가 병 주고 약 주고, 약값도 받아 챙기고, 그마저도 가짜 약이었던 구조.

그즈음 나 역시 낯선 장소의 공공 화장실에는 의도적으로 가지 않으려 애썼다. 가야만 하는 경우에는 사방에 ‘카메라 구멍’이 있는지 찾기 바빴다. 놀랍게도 화장실 벽에 있는 작은 균열들은 어김없이 이미 다 휴지로 막혀 있었다. 불안의 조각들. 많은 여성이 보편적으로 이 공포를 겪고 있구나. 슬프고 참담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국회의원실은 행정안전위원회, 디지털성범죄 수사의 주체인 경찰청을 감시·감독하는 상임위원회 소속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된 이후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수사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경찰이 이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다.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범죄행위는 검거하기 힘들다며 방관한다’는 증언도 줄을 이었다.

뛰는 경찰 위에 나는 범죄자
그때부터 의원실에서는 마음먹고 유관기관인 경찰청, 대검찰청,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디지털성폭력 사건의 피해·수사·검거 현황 등의 자료를 요구했다. 그중 방심위에서 불법 영상물로 추정돼 ‘삭제 데이터베이스(DB) 목록’으로 관리한다는 영상을 살펴봤는데, 이미 웹하드 업체에 삭제 요구한 영상 20건이 217건으로 복제돼 25개 웹하드 사이트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방심위의 행정명령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25개 웹하드 업체 중에는 경찰이 그즈음 압수수색한 곳도 5군데나 포함돼 있었다. 이는 경찰 수사에 허점이 있거나 웹하드 업체가 기술적인 우회로 경찰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간 것을 의미한다.

먼저 경찰 수사에 정말로 허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 담당자에게 수사 기법 매뉴얼 제출을 요청했다. 경찰의 수사 매뉴얼은 원칙적으로 국회에 제출할 수 없는 비공개 자료다. 유통되면 역으로 범죄 수법으로 활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열람 방식을 택해야 했다. 열람은 경찰이 인편으로 보낸 자료를 담당 공무원 동석하에 검토하고 다시 인편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청에서 수사 매뉴얼을 가지고 나온 담당 공무원과 마주 앉았다. 이런 때에 공무원과 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자료를 검토하는 나를 보는 업무를 맡은 그는 내가 자료를 어떻게 하지는 않을까 감시하는 본인의 처지를 머쓱해하면서, 그 앞에 앉은 나는 그 시선을 견디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 서너 시간을 속독하고 나니 수사 매뉴얼상의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수사 기법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마침 그때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보좌관님, 필터링 회사 대표 출신 아이티(IT) 전문가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을 만나면 업계의 불법적인 관행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IT 업계의 횡행하는 수법을 알아야 일이 진전될 텐데, 워낙 모르는 업계의 사정이라 제대로 알려줄 전문가를 찾고 있던 차였다. 가슴이 뛰었다. 전달받은 번호로 얼른 전화를 걸었다.

“K 대표님이죠? 필터링 기술을 초창기부터 개발해오신 전문가라 들었습니다. 필터링 업체가 웹하드 업체와 사실상 실소유주가 같아서 업계에서 법을 회피할 수 있는 기술을 쓴다던데 그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를 뵙고 여쭙고 싶어요.”

잠깐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답이 들려왔다.

“제가 초기에 필터링 회사를 만든 사람은 맞는데요, 지금은 다른 사업을 하고 있어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18년 11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웹하드 카르텔 규탄’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표준시 프로그램을 감지하면 깨끗한 화면이
철렁.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런데 업계의 문제를 파헤치면서 업계 종사자의 얘기를 듣지 못하면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더욱 간곡하게 부탁해보는 수밖에. 꽤 긴 간청과 설득 끝에 결국 그를 만났다. 이후에 친분이 생기고 그때 왜 내 증언 요청을 수락했는지 물었더니 “행안위 소속 보좌관이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넘어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이 있다”는 내 말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 K 대표는 결심했다는 듯 업계의 관행, 탈법, 편법, 불법행위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해줬다.

“경찰이 웹하드-필터링 업체의 유착을 못 잡는 이유는 업체가 이미 경찰의 모니터링도 우회하는 수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상했던 두 가지 가능성 중 후자가 원인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듣자 하니 경찰이 웹하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경우에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표준시 프로그램(인터넷을 통해 컴퓨터의 시각을 대한민국 표준시에 일치시키는 표준시각 맞추기 프로그램)을 함께 띄워놓고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업체는 표준시 프로그램 작동이 감지되는 순간, 불법 영상이 줄줄이 뜨는 원래 화면이 아닌 ‘깨끗한(불법이 없는) 화면’을 보여주는 수법을 쓴다는 것이다. 뛰는 경찰 위에 나는 범죄자들.

그렇다면 우리는 경찰이 하지 못한 일, 범죄 현장을 직접 포착하거나 증거를 수집해 경찰을 움직이는 일을 해야 했다. K 대표의 조언대로,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피시(PC) 여러 대 앞에 앉아서 표준시 프로그램을 띄웠다 닫았다 하며 웹하드 사이트의 불법 촬영물을 검색했다. 혹시 특정 아이피(IP)가 포착될까봐 PC도 여러 대 동원하고, 아이디 노출을 우려해 각자의 지인들에게 부탁해 만든 여러 개의 아이디로 접속을 시도했다. 컴퓨터 화면 뒤에는 카메라를 세워 이 모든 과정을 촬영했다. 혹시라도 화면이 ‘클린한(깨끗한) 이중 페이지’로 바뀌는 현장이 카메라에 담기면 그 자체가 강력한 수사 증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 밤을 새우며 이 일을 반복했고, 4일째 되는 날 아침에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이중 페이지 수법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 같아요!”

즉시 K 대표에게도 연락해서 이 과정을 함께한 모두가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실에 모였다. 그리고 눈앞에서 바로 그 ‘이중 페이지로 넘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사이버수사관 워크숍 뒤 업체 압수수색
이 영상을 JTBC 기자에게 제보했다. 그리고 그 보도는 2018년 10월11일 국회 경찰청 첫 국정감사장에서 상영됐다. 범죄 수법이 적나라하게 담긴 영상이, 더군다나 방송된 화면을 통해 나가니, 경찰청 국감장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전까지 방통위, 방심위, 경찰청은 불법 촬영물 유통을 우려하는 국민과 국회에 “웹하드 업체의 불법 DB가 잘 관리되고 있으니 직접 점검해봐도 99%는 삭제돼 있을 거다. 안심하셔도 된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안심은 무슨. 경찰의 수사 기법이 노출돼 범죄자들이 국가기관을 조롱하는 것이 고스란히 뉴스 영상에 담겼다. 피해 여성들이 왜 국가기관을 믿지 못하고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도 백번 천번 이해됐다. 그 순간, 범죄자에게 국가는 부재했고, 피해자에게 국가는 무용했다.

국정감사 첫 질의가 끝나자마자 우리 의원실로 기자들의 자료 요청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질의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오전 질의의 핵심이 ‘이중 페이지’라는 범죄 수법을 보여준 것이었다면, 오후 질의는 그런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가 중심이 됐다.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는 대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경찰력이 지체 없이 작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의 증거인멸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시정 지시를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질의를 하기 위해 우리 방 보좌진이 그토록 오랜 시간 수사 매뉴얼과 수사 기법을 공부했기에, 경찰청장의 반응이 어떨지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날 밤 11시, 경찰청장은 국감장에서 한 약속대로 우리의 자문위원인 K 대표를 경찰청으로 불러 우리가 들은 자문 내용을 그대로 청취했고, 바로 다음주 우리 국감 질의서를 토대로 전국 사이버수사관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웹하드 업체는 물론, 인터넷 데이터 센터를 압수수색해서 범인들을 검거했다.

국회, 여성들에게 지지와 쓸모로 가닿기를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범죄자들이 국가공권력을 조롱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담은 ‘웹하드 카르텔 방지 5법’을 만들었다. 또한 범죄자들의 범죄수익을 조속히 환수할 수 있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었고, 이 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돼 시행된 바로 당일 법원에서 범죄자들의 범죄수익 21억원을 환수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강고한 경찰 조직을 움직이게 하고, 범인 검거뿐 아니라 범죄수익 환수까지 했다. 국회가 할 수 있는 권능을 모조리 다 갖다 썼다.

웹하드 카르텔의 불법구조를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디지털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이었다. 본인의 촬영물이 웹하드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고 업체에 지워달라고 요구해도 그때뿐, 또다시 유포돼 ‘사회적 살인’을 당하는 이 참담하고 기가 막힌 현실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게 했다. 나 역시 불법 카메라의 공포에 떤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곧 내 것이었다. 그리고 국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리해야 할 책임을 졌다.

여전히 우리는 성폭력 산업구조에서 안전을 위협받으며 살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이 범죄는 변형에 변형을 거쳐 뿌리까지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국회는 그 여성들의 대리인이 될 것이다. 그들이 위임한 권능이 그들에게 더욱 강력한 지지와 쓸모로 가닿게 할 것이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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