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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언론 자유’와 ‘언론 혐오’ 사이에서

언론중재법 ‘나쁜 뉴스’ 막지 못하면서 ‘좋은 뉴스’ 줄이는 부작용 우려… 신뢰 회복 위한 언론의 자정 노력 필요해

제1378호
등록 : 2021-08-27 02:50 수정 : 2021-08-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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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25일 새벽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언론중재법’을 통과시킨 뒤,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왼쪽 둘째)와 김영배 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웃으며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아시아 언론 자유의 모델.’

2021년 4월 국제 언론인 단체 ‘국경없는기자회’가 한국 언론을 두고 내린 평가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매년 세계 각국의 언론 자유도를 조사해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합니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국외 언론인들의 눈으로 우리 언론 상황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진단을 얻을 수 있는 지표입니다.

2021년 한국은 180개국 중 42위로, 아시아에서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이 늘 이렇게 언론 자유 ‘우등생’이었던 건 아닙니다. 이 단체가 처음 조사를 시작한 2002년 39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역대 최하위인 70위(2016년)까지 추락합니다. 권력이 방송사를 장악하고 기자를 해고하며 언론의 입을 다물게 한 대가였지요.

‘가짜뉴스’와 오보는 다르다
땅에 떨어진 언론 자유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건 문재인 정부였습니다. △2018년 43위 △2019년 41위 △2020년 42위 △2021년 42위. 한국의 언론 자유는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2022년 4월 발표될 조사 결과에서는 평가가 달라질 전망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순위가 다시 추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국경없는기자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뭣도 모르니까 우리나라 언론단체가 쓴 걸 인용한다”고 말해 폄훼 논란이 일기도 했으니까요.

‘나쁜 뉴스’를 근절하기 위한 법안이 왜 언론 자유를 침해할까요? 정론직필만 하는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을 텐데, 왜 언론인 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하는 걸까요? 많은 법률 전문가가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이 법이 허위·조작 보도를 너무 느슨하게 규정하는 바람에 법의 그물에 걸리는 보도가 지나치게 많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짜뉴스’는 거짓임을 알면서도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마치 진실인 것처럼 독자를 속이는 경우를 가리키지요. 열심히 취재했지만 의도치 않게 사실관계가 잘못된 ‘오보’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법안은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징벌 대상으로 삼습니다. 몇 가지 모호한 근거로 고의나 중과실을 섣불리 추정하는 법조항은 사실 확인에 최선을 다하는 언론의 보도조차 손쉽게 악의적 보도로 낙인찍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로 인해 늘 오보나 실수의 가능성에 노출되는 언론은 전보다 많은 소송에 시달릴 위험에 놓입니다.

그러면 대다수 언론사는 소송당할 소지가 있는 뉴스 생산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선 기자도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전보다 위축될 게 분명합니다. 권력과 자본을 감시·고발하는 탐사보도를 줄이고 취재원의 말이나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집중할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진짜 악의적인 허위 정보를 근절하는 실효성은 있을까요? 정작 오늘날 허위·조작 정보를 주로 생산하는 유튜브와 1인 미디어는 법 적용 대상조차 아닙니다. 결국 개정안은 타깃으로 삼는 ‘나쁜 뉴스’는 막지 못하면서 ‘좋은 뉴스’는 줄어들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겁니다. ‘재갈’을 물리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언론이 질적으로 나빠질 거라는 예측은 가능합니다.

언론과 시민은 공생관계
법안 내용보다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법안의 배경과 맥락입니다. 절반이 넘는 시민들이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지지합니다. 언론을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는 게 시민들의 생각입니다. 기득권 언론이 누리는 과도한 자유를 빼앗아 힘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언론중재법 자체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이겁니다. 많은 허점과 문제를 안고 있는 법안을 과감하게 추진할 동력을 제공하는 시민들의 ‘언론 혐오’ 말입니다. 정치 혐오가 의원 정수 감축과 세비 삭감 등 정치인에게 더 많은 타격을 주려는 방향으로 흘러가듯, 언론 혐오는 언론사와 기자를 최대한 아프게 때리려는 욕망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언론개혁은 ‘기레기’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 동의어가 돼버립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때리면 속은 시원해지겠지만, 결국 그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언론 자유가 제한돼 양질의 저널리즘이 실종되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충분히 받지 못한 시민들의 자유도 제약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과 시민은 적대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입니다.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좋은 뉴스’로 ‘나쁜 뉴스’를 덮는 겁니다. 언론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질 높은 저널리즘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뉴스가 더 많아지도록 유도하면 가짜뉴스는 뉴스 생태계 내부의 경쟁과 검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절로 도태됩니다. 그래서 국경없는기자회는 “허위 정보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는 저널리즘”이라 했습니다. 언론을 죽이기보다 잘 고치고 키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언론계도 개정안 반대만 외칠 때가 아닙니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높은 지지는 언론을 향한 시민들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보여줍니다. 언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유를 깊이 성찰해봐야 합니다.

서구 언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외부의 간섭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자율 규제로 자유를 지켜왔습니다.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우리 언론도 하루빨리 강도 높은 자정 논의를 해야 합니다.

늘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는 1970년대 베트남전쟁의 은폐된 진실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언론의 실화를 다룹니다. 미국 정부는 불법으로 입수한 기밀문서를 공개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보도를 금지하지만, 대법원은 끝내 언론 자유의 손을 들어줍니다. 승소 판결을 받아낸 뒤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늘 잘하는 건 아니지요. 늘 완벽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우린 그저 계속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늘 잘하는 건 아니지만, 늘 완벽하진 않지만 언론이 그저 그들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자유를 마련해줍시다. 그 자유 안에서 언젠가 또 황우석 논문 조작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폭로와 같이 세상을 바꿀 특종이 나올 테니까요.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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