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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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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환자 돌보며 우울증, 산재 아닌가요

코로나19 감염자에게만 적용되는 업무상 재해, 무감염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적용 범위 넓혀야
등록 2021-08-17 03:46 수정 2021-08-17 11:22
요양원에서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환자를 돌보다가 우울증과 급성 스트레스 반응 진단을 받은 요양보호사 김미경(가명)씨가 2021년 7월30일 인터뷰 중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요양원에서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환자를 돌보다가 우울증과 급성 스트레스 반응 진단을 받은 요양보호사 김미경(가명)씨가 2021년 7월30일 인터뷰 중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요양보호사 김미경(63·가명)씨는 1년3개월째 계속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붙잡고 “당신도 코로나19에 확진됐어요”라고 말하는 꿈이다. 얕은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김씨가 근무한 경기도의 ㄱ요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2020년 5월 이후, 그는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다. 공포, 불안, 우울, 초조가 곁에 늘 머문다.

‘중장년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던 김씨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 ㄱ요양원에 입사한 건 2020년 1월이다. 갓 ‘초보’ 딱지를 뗄 즈음인 그해 5월28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요양원 2층에서 나왔다. 2층 요양보호사들은 모두 자가격리됐다. 당시 4층에서 어르신 9명을 돌보던 김씨는 “하루만 도와달라”는 요양원 쪽의 요청으로 2층으로 향했다. 어르신 12명이 입원한 방이다. “다음날 아침에 퇴근할 수 있다고 해서 간 거죠. 어르신들만 계실 순 없으니까요.”

1년3개월째 같은 악몽

2층은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됐다. 요양원이 약속한 하루는 나흘이 됐다. 김씨는 3박4일 동안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서 어르신 12명을 혼자 돌봤다.

“보통 담당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의 특성과 생활습관을 모두 알고 있는데 그걸 모른 채 갔어요. 이쪽 어르신을 돌보는데 저쪽에선 변을 보시고… 엉망이었죠. 주기적으로 체온을 따로 재야 했는데 어르신들은 방호복 입은 낯선 사람이 오니까 많이 불안해하시고요. 전쟁터였어요.”

그사이 김씨가 맡은 방에서 4명이 추가로 코로나19에 확진됐다. 건강하던 어르신이 김씨 눈앞에서 생사를 헤맸다.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이들을 돌보던 김씨의 몸엔 땀띠와 소름이 돋아났다. 아찔함과 무기력함, 슬픔과 분노, 불안과 공포가 수시로 교차했다.

혼자서 격리돼 어르신들을 돌보던 나흘째 되는 5월31일 아침, 방역 당국이 요양원 일시 폐쇄를 결정했다. 보건소에서 입소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김씨도 바깥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2주 동안 자가격리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아 업무에 복귀했지만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확진 뒤 돌아가셨다는 어르신의 얼굴, 나흘 동안 혼자 숨죽이며 고군분투한 기억이 계속 김씨를 덮쳤다.

출근이 무서웠다. 온몸이 떨렸고, 손발에 힘이 없었다. 증상이 계속돼 진료받은 결과 ‘반응성 우울증’과 ‘급성 스트레스 반응’ 진단을 받았다. 도저히 요양보호사 일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김씨는 격리된 채 돌봄노동을 지속하면서 감염에 대한 공포, 과중한 업무 부담, 불안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업무상 질병을 얻었다며 2020년 7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공단은 그해 12월 ‘급성 스트레스 반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이 동반되지 않아 ‘반응성 우울증’ 진단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21년 7월13일과 30일 두 차례,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산재를 신청할 때마다 공단으로부터 ‘(정신질환인 경우) 선례가 없어 (산재 승인을) 받기 힘들 것’이란 말을 들어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일부 산재 승인을 받긴 했지만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다시 요양보호사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그는 “요양보호사들은 휴식 시간도, 제대로 된 식사도 주어지지 않은 채 코로나19 (집단감염)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코로나19에 확진되지 않더라도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우울증, 트라우마 등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확진 뒤 닥친 공황장애

그러나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코로나19 감염자와의 접촉으로 감염된 경우”만 별도 판정 절차 없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코로나19 산재 신청 및 승인 현황’을 보면, 2020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해 산재가 신청된 사례는 총 537건에 이른다(40쪽 그림 참조). 이 가운데 377건이 승인됐고, 코로나19 확진 뒤 얻은 정신질환을 추가상병으로 신청해 산재로 승인받은 경우는 8건이다. 김씨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 등 정신적 질환만으로 산재를 신청한 사례는 통계로 따로 잡히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추가상병’은 △업무상 재해로 이미 발생한 질병이 추가로 발견된 경우나 △업무상 재해로 발생한 질병이 원인이 돼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경우로 규정한다.

쿠팡의 경기도 부천 신선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이진화(가명)씨는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추가로 ‘적응장애’를 겪어 업무상 질병의 추가상병을 인정받은 경우다. 앞의 사례 8건 가운데 하나다. 이씨는 2020년 5월 센터에서 일하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다행히 코로나19는 완치됐지만, 공황장애가 그를 덮쳤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그를 피하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졌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이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추가상병 신청서를 제출했고, 공단은 2021년 6월 “(이씨는) 우울·불안·불면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며 재해와의 인과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추가상병을 승인했다.

이씨 사건을 대리한 박소영 공인노무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와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은 이씨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 집단 산재 신청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코로나19로 정신질환을 얻은 경우에도 업무상 질병(산업재해)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 김미경씨와 물류센터 노동자 이진화씨가 겪은 것처럼, 코로나19와 관련한 업무상 재해는 반드시 ‘몸’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김씨처럼 코로나19에 확진되지는 않더라도 노동환경 탓에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하고, 이씨처럼 확진되고 완치된 뒤에라도 정신질환이 추가로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 뒤 동료 접촉 제한, 휴게 공간 폐쇄

이른바 ‘3밀’(밀집·밀접·밀폐) 환경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노동환경이 취약해지는 탓이다. 2021년 5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노동환경 심층 면접조사’ 보고서를 보면, 콜센터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사업이 늘어나고 퇴사자나 자가격리자가 발생하면서 노동시간과 업무강도가 모두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특히 방역을 이유로 회사가 동료와의 접촉을 제한하고 휴게 공간을 폐쇄하면서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직장갑질119는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고립감과 우울감이 증폭됐다”고 지적했다.

개별적으로 마스크를 쓸 뿐이지, 물리적인 거리 두기나 ‘아프면 쉬기’도 대체로 불가능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가 집단 발병한 이후 (콜센터마다) 하청업체별로 작업 공간을 분리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작업환경이나 방역을 고려하지 않고 가장 저렴하고 빠르게 임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사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권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 근로복지공단의 코로나19 관련 산재 인정 기준에 따르면, 이처럼 열악해진 노동환경 때문에 콜센터 노동자가 질병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코로나19 관련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진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나 번아웃(정신적 탈진), 우울증 등 정신질환과 의료진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는 경우 등도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코로나19 관련 산재’로 승인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소영 노무사는 “이진화씨의 경우 (공단이) 추가상병으로 결정하는 절차가 상당히 오래 걸렸고, 당사자가 직접 가서 자신의 고통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며 “코로나19 감염으로 이미 산재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할 때 (당사자가 직접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서 등을 근거로 (추가상병) 승인을 원활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은 “최근 영국 학술지에는 코로나19로 의사 10명 중 4명이 우울증과 번아웃을 경험하고 8명이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비정상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반하는 사건을 저지르거나 예방하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경우) 같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실렸다”고 소개했다. 과거 에볼라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직업성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만 관련 산재로 승인하는 건 (공단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판단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코로나19가 야기한 노동문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만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중대재해’로

코로나19 집단감염 자체를 ‘중대재해’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직업환경전문의)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 정한 24개 질병만 중대재해로 인정하면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겨 집단 발병을 야기했거나 안전관리 부족으로 노동자가 천식, 폐렴 등에 걸리게 만든 사업장도 중대재해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2021년 7월15일 민주노총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긴급 토론회’)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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