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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름 모를 청년의 죽음은 닮았다

대부분 불안정한 고용조건, 업무에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작업
노동자 죽음 이후에 경영책임자는 가벼운 형사처벌

제1376호
등록 : 2021-08-16 03:43 수정 : 2021-08-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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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노동자가 식수통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4.7도까지 올랐다. 폭염은 건설노동자 등의 산업재해 발생 위험을 높인다.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27일)까지 160여 일이 남았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법을 두고 세상은 시끄럽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산재 관련 인력을 갑절로 늘린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새롭게 출범시키고, 2021년 7~8월 내내 업종별 현장점검에 나선다. 현대건설·대우건설 등 사망사고가 연속해 일어난 기업에 대해서는 특별점검도 진행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적용됐을 때를 가정해 안전보건 예산 편성이나 전문인력 배치가 적절한지 등을 따졌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 맞는 일종의 ‘예방주사’다.

그러자 경영자단체와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과도한 형사처벌이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대형 로펌은 경영진이 처벌받는 것을 막아주겠다며 관련 팀을 꾸리고 고용노동부 출신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일찌감치 ‘법률시장 특수’를 누릴 채비 중이다.

노동조합과 보건·안전 단체들은 반대 이유로 반발한다. 8월23일까지 입법예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원청 경영책임자의 관리 의무를 협소하게 규정하는 등 애초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조용히 죽어간다. 최근 한 달 새 20대 노동자 5명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우리는 왜 매번 젊은 노동자들을 안타깝게 떠나보내야만 하는가. 구의역 김군, 이민호, 김용균, 이선호. 우리는 왜 이들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나. 2021년 산업재해로 숨진, 그들의 죽음을 다시 한번 기록하는 이유다.

중대산업재해만 산재가 아니다. 2020년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로 다치고 아팠다. 우리 곁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철 작가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산재를 겪은 다양한 이들을 만나, 안전하지 못한 일터와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겨레21>과 노회찬재단이 공동기획한 ‘내 곁에 산재’라는 이름의 연재는 앞으로 격주로 실린다.

코로나19 유행은 중대산업재해 못지않게 사회 곳곳에 상흔을 남기고 있다. 일터에서 집단감염된 뒤 우울증을 겪거나,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다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노동자가 말하는 산재 이야기도 전한다.

“아아….” 14m 높이 전봇대에 매달린 이훈우(28·가명)씨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신음 소리는 얼굴과 목 전체를 감싼 하늘색 마스크 사이를 비집고 나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40~50m 간격으로 늘어선 다른 전봇대까지 가닿았다. 각각 다른 전봇대 위에서 작업 중이던 동료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이씨의 상체는 맥없이 뒤로 고꾸라져 있었다. 전봇대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30도 넘는 더위에도 온몸 옷으로 감싸야
꼬박 21일째 30도가 넘는 폭염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2021년 7월28일 전남 곡성군 석곡면의 낮 최고기온은 34.9도. 실신한 이씨는 이날 오전 9시 넘어 발견됐다. 한 시간 가까이 전선 등을 철거하던 중이었다. 작업 현장은 한낮인 양 뜨거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온도계는 이미 30도 가까이를 가리켰다(기상청의 지역별 상세관측자료(AWS) 시간대별 기온·풍속 등 참조).

폭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안전모, 긴팔, 긴바지, 장갑, 마스크, 선글라스로 온몸을 꽁꽁 가렸다. 감전 위험 탓이다. 그늘 없는 전봇대 위의 여름은 괴롭다. 얼음이나 물은 꿈도 못 꾼다. 땀에 전 작업복에는 항상 소금꽃이 핀다. 몸이 축축해 감전될까 하는 두려움은 또 다른 고통이다. 이날 이씨가 작업한 220/380볼트(V)용 전기가 흐르는 저압선은 “살아 있었다”. 이씨처럼 한국전력공사와 계약한 협력업체 소속으로 전봇대를 세우거나, 전깃줄을 유지·보수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평소에도 고압선은 “죽이고” 저압선은 “살려놓고” 작업한다.

“9시58분에 현장 도착했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아버지 이중규(62·가명)씨는 그날 119 구급대원의 그 말만이 오직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10시23분에 소식을 전해듣고는 광주에서 곡성으로 달려가는 중에 구급대원과 전화 통화를 했다. “다른 이야기도 많이 했겄죠. 근데 그것만 기억이 나요.” 8월7일 광주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프다고 ‘나 좀 쉴랍니다’라는 말 한 번 없던 아들”에게, “아침에 밥 잘 먹고 출근한 놈”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동료들이 아들을 끌어내리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아들은 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같이 한전 협력업체에서 일했다. 아버지는 이동식 크레인으로 새 전봇대를 세우고, 아들은 헌 전봇대에 올라간다. 경기도에서 뷔페 조리사로 일하던 아들에게 이 일을 권한 사람은 그였다. “근무수당이 줄어서 힘들어하는 것 같기에 ‘너 아빠 하는 일, 한번 해볼래?’ 물었는데 선뜻 정리해서 내려오더라고요.” 그 뒤로 아들은 5년 가까이 전봇대에 올랐다. 3D 업종이라 20대가 드문 일터에서 아들은 묵묵히 막내 노릇을 했다. “내가 그때 안 데려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버지는 가슴을 친다.

법 제정 효과 나타나는지 아직 불분명
20대 청년이 갑자기 숨진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 결과에서는 감전사, 온열질환, 지병 등의 가능성 모두 확실하지 않다고 나왔다. 곡성경찰서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2차 정밀부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려” 각각 현장 안전관리자 책임 여부에 대한 수사와 재해 조사 의견서 작성 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어머니 김지영(51·가명)씨는 답답해했다. “평소 우리 아들한테 지병이 있었다면, 내가 벌어서 먹여 살리면 살렸지, 나는 그 일을 아들한테 안 시켰을 거예요.”

훈우씨가 세상을 떠난 그날 오전 10시30분,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서울 금천구의 한 중소 제조업체를 찾아 대표적인 산업재해 사망사고 유형인 ‘끼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요인이 없는지를 점검했다. 해마다 100명 안팎의 노동자(2020년 산재 사고 사망자의 11.1%)가 기계·기구에 끼여서 숨진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연일 현장점검과 감독에 나서자 경영자단체와 기업들은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법을 두고 벌써 ‘기업 옥죄기’ ‘과잉 처벌’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중대재해처벌법에 1명 이상의 사망사고가 일어난 사업장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못박아뒀기 때문이다.

단죄 ‘예고’에도 불구하고, 일터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0년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82명. 그해 4월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사고가 일어난 탓에 산재 사고 사망자는 2019년(855명)보다 늘었다.

2021년 공식 통계는 1~3월 집계(고용노동부 5월 발표)가 마지막이다. 1~3월 산재 사고로 238명이 숨졌다. 2020년 1~3월(253명)보다 줄어든 듯 보이지만, 대형참사였던 한익스프레스 사망자(38명)를 제외하고 비교하면 사망자가 2021년 되레 증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효과로 사망자가 줄어들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발생보고’ 등을 참고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6월 사망자는 최소 351명이다(31쪽 그림1 참조). 다만 이 자료는 지방고용노동청의 보고를 기초로 해서 “공식 통계와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강 의원실은 설명한다.

폭염이 계속 이어진 7월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 주택가의 한 전봇대에서 인터넷망 수리 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20년 산재 사고로 사망한 만 29살 이하 노동자 42명
그중에는 이훈우씨 같은 20대 청년들의 죽음도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만 20대 청년 노동자 5명이 숨졌다(노동건강연대가 집계하는 ‘이달의 기업살인’ 사례 등 참고).

7월5일 오전 부산에서 화물용 승강기를 점검하던 20대 노동자 A씨가 추락사했다. 12m 높이에서 승강기와 함께 떨어졌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다. 7월9일 새벽 6시30분께 인천시 부평구에서 20대 배달업체 소속 노동자 B씨가 숨졌다. 음식을 실은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던 그는 교차로에서 승용차와 충돌했다. 7월28일 오전 전남 곡성군에서 이훈우(위 그림의 C)씨가 전봇대에서 작업 중에 실신해 숨을 거뒀다. 7월29일 낮 경기도 포천의 한 폐기물처리 업체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24살 이주노동자 D씨가 파쇄기에 끼여 숨졌다. 8월4일 오전 전남 여수의 엘지화학 공장에서 29살 엔지니어 E씨가 시운전 중이던 가스터빈 발전기를 점검하다가 감전사했다. 전기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은 상태였다.

2020년 산재 사고로 사망한 만 29살 이하 노동자는 42명. 매달 평균 4~5명의 젊은이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셈이다. 2021년 1~3월에는 20대 이하 청년 노동자 7명이 숨졌다. 산재 사고 사망자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다(31쪽 그림2 참조). 가장 많이 숨지는 연령대는 60살 이상 고령층(2020년 39.3%)이다. 50대도 적지 않다(33.1%). 고령층 노동자가 그만큼 위험한 환경에서 험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모든 죽음의 무게는 똑같지만, 어떤 죽음은 유독 더 가혹하고 묵직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같은 이유로 반복된다면, 그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기 때문이다.

2016년 서울 구의역 김군(19살), 2017년 제주도 현장실습생 이민호(18살),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24살), 2019년 경기도 건설 현장 김태규(26살), 2020년 광주 폐기물업체 김재순(25살), 2021년 경기도 평택항 이선호(23살).

해마다 일터에서 청년들이 죽어갔다.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며, 기업의, 정부의, 사회의 책임을 묻고 또 물었다.

이들의 죽음은 닮은꼴이다. 구의역 김군도, 김용균도, 이선호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곁에서 안전을 살펴줄 동료도 없이 홀로 지하철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구의역 김군), 파쇄기 입구에 걸린 폐기물을 혼자서 밀어넣다가(김재순), 새벽에 외롭게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가(김용균), 오작동한 기계설비를 홀로 살피다가(이민호) 목숨을 잃었다. 현장실습생(이민호)이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노동자(김재순)였음에도 사업주는 이들이 혼자 위험한 작업을 하도록 하거나, 안전설비 설치를 소홀히 했다.

7월28일 이훈우(가명)씨가 일했던 전남 곡성군 석곡면에 있는 전봇대. 이씨는 앞에서 두 번째 전봇대에 올라가 작업하다가 실신했다. 이날 최고기온은 34.9도였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전기원지부 광주지회 제공

10명 중 1명 이주노동자, 죽음의 이주화
이름 모를 청년들의 죽음은 달랐을까. <한겨레21>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2021년 1~6월 산재로 숨진 20대 청년 8명(이선호씨 사건까지 포함하면 9명)과 관련해 지방고용노동청이 고용노동부에 보고한 ‘중대재해 발생보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하는 ‘재해조사 의견서’ 등을 모아서 살펴봤다.

2월10일 인천의 한 공사현장에서 추락사한 28살 노동자 ㄱ씨는 대림건설의 하청노동자다. 2월18일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안전순찰요원으로 일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 숨진 ㄴ(26)씨는 일용직이고, 5월12일 강원도 원주시 건설현장에서 트럭에 치여 숨진 노동자 ㄷ(21)씨도 하청업체 소속이다. 위험한 일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다. 위험의 외주화다.

20대 청년들은 미처 업무에 익숙해질 새도 없이, 죽음을 맞았다. 4월30일 충남 아산시의 한 기계장비 제조업체에서 끼임사한 ㄹ(25)씨는 입사한 지 보름도 안 된 노동자였다. 건설현장에서 ‘비계’라 불리는 임시 발판을 설치하는 업무를 맡은 ㄱ씨는 입사 40여 일 만에 사고를 당했다.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청년 3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사업주의 안전관리 소홀 탓이었다. 3월8일 경북 안동의 농업회사에서 일하던 ㅁ(29)씨는 기계 내부를 청소하다가 설비가 가동되는 바람에 상체가 끼여 숨졌다. 사업주는 ㅁ씨 등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구글 번역기로 의사소통해가며 일을 시켰다. 이날 사고가 일어난 기계설비의 버튼에는 한국어 설명만 쓰여 있었다. 4월3일 경기도 용인에서 드럼용기를 절단하다가 폭발한 사고로, 4월6일 경북 경주시에서 컨베이어벨트 센서를 고치다가 설비 사이에 끼여서 20대 이주노동자들이 숨졌다. 2020년 산재 사고 사망자 10명 가운데 1명은 이주노동자였다(10.7%). 국내 노동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약 3%)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죽음의 이주화다.

그러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들이 감당해야 할 형사처벌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다. 구의역 김군이 일했던 스크린도어 정비용역업체 대표는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고, 원청인 서울메트로 대표는 벌금형에 그쳤다. 김재순씨를 고용했던 폐기물처리 업체 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뒤 8월11일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실형이긴 하지만 1심(징역 1년)보다 감형됐다.

원청은 위험의 외주화 덕분에 책임을 피해가기도 한다. 2020년 한익스프레스 화재 사고와 관련해, 공사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관리팀장은 7월16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건물 대피로를 폐쇄하기로 결정해 화재 피해를 키운 책임을 유죄로 인정했던 1심 결과를 뒤집고, 항소심 재판부는 “원청에게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를 부여하도록 개정된 산안법 적용 시점(2020년 1월)보다 이전에 결정된 일”이라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20대 노동자 3명을 포함해 총 38명에 이른다.

원청 책임 축소되고 ‘2인1조’ 의무 없는 법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안법보다는 한 걸음 나아갔다. 원청의 책임을 명토 박았다. 도급·용역 등의 형식으로 계약한 노동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8월23일까지 입법예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서는 다시 원청 책임을 축소해놨다. 원청 경영책임자가 도급·용역 업체에 대해 재해예방과 안전관리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적정한 안전보건 비용과 수행 기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범위에서만 의무를 명시했다. 시행령에는 구의역 김군, 김용균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2인1조 작업’ 의무화도 담기지 않았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기업범죄를 처벌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에 못 미치는 시행령”이라며 “기업의 책임을 안전관리 체계 선 안에서만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김용균 어머니의 단식농성 등 사회운동의 힘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입법은 어디까지나 출발일 뿐”이라며 “앞으로 재해 조사, 작업중지 명령,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판결 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감시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사문화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무슨 법이 생기니 어쩌니 그러는데, 그 법이 언제 정착돼서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르겠고, 단지 지금은 그냥, 제발 귀를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들처럼 작은 목소리로 내뱉는 노동자들, 이런 일을 겪은 부모들의 사소한 목소리 하나하나에요.” 이훈우씨의 어머니 김지영씨는 절절하게 호소했다. 이씨가 일했던 업체는 직원이 50명 이하여서, 2024년 1월에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이 유예됐다.

“2주 전만 해도 남 일이었는데…”
엄마에게 유난히 살갑던 아들은 숨지기 전날 저녁, 엄마와 함께 카레를 만들었다. 감자를 깎아준 엄마를 “부셰프”라고 부르며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엄마, 다녀올게”라며 집을 나선 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김씨는 다시는 카레를 먹지 못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씨는 인터뷰하러 나오면서 아들의 손목시계를 “괜히 한번 차고 나와봤다”. 아들의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잘도 돌아가는데, 아들의 삶은 7월28일로 멈췄다. 그날 이후 부모의 모든 것도 “멈춰버렸다”.

“한 달 새 20대 노동자 5명의 삶이 멈춰버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버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아들이 숨진 현장을 이야기할 때도, 본인이 2월부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내내 담담했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일이 없으면 좋은데잉. 전혀 없을 수는 없죠. 단지 너무 쉽게 가고, 너무 잦다보니까… 분명히 2주 전만 해도 산재로 집에 못 돌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남 일이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산재로 숨진 이름이) 내 곁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렇게 이름 모를 젊은 노동자들이 하나둘 부모 곁을,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광주=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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