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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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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 학력이 학벌로

한국 사회에서 ‘신분’으로 기능하는 ‘학력’,
경력이 중한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에 학력 차별 금지는 필요하다
등록 2021-07-27 14:24 수정 2021-07-28 01:21
2021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 신입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 신입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차별금지법의 학력 차별 금지 조항에 대해 교육부가 낸 의견으로 잠시 소란스러웠다. 교육부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 인종 등과 달리 학력은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 정도가 달라지기에 다른 차별 조항과 같은 선상에서 다룰 수 없다며 ‘합리적 차별 요소’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합리적 이유 없는 학력 차별은 금지돼야 하며 입법 취지에 동의한다”고 말함으로써 수습됐지만 능력주의와 연결돼 여전히 차별과 학력 문제는 뜨거운 주제다.

졸업이 아니라 ‘입학’에 맞춘 학력

한국 사회가 학력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용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반에 걸쳐 학력은 강력한 힘을 행사했다. 여기서도 한국적 상황에서 관심을 끄는 건 ‘학력’이란 말의 의미다. 문자적으로 본다면 학력은 교육의 위계에서 어디까지 마쳤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학력은 졸업이 아니라 ‘입학’에 초점이 맞춰 있다. 대학을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학교에 들어갔는가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학력은 학력이 아니라 언제나 학벌로 작동했다.

이 학력에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 말해주는 건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이것은 이력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밟아온 길, 즉 생애를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이력서에는 학력과 경력이 분명하게 구분돼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학력은 한 사람의 이력이지만 경력은 아니라는 것이고, 그 사람의 학력에서 그의 경력을 알 수 없다는 걸 한국의 이력서가 분명하게 말해준다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역량을 짐작하고 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경력이다. 경력이 한 사람의 생애사에서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는 수많은 여성이 겪는 ‘경력 단절’이라는 말에서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경력 단절은 경제적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실존적 위기까지 낳는다. 한 사람의 삶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의 궤적, 즉 경력이 곧 생애이기 때문이다.

경력 단절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와 존재 의미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경력을 통해서만 사람은 그 사회에 경험을 통해 깨달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의미 전체에 위기를 가하는 것이 경력 단절이다. 경력이 단절되는 삶에서 개인은 생애사적 기획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사회가 무엇보다 경력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에서 경력 전환 불가능, 한편에서 경력 단절

물론 이때 경험의 연속이란 하나의 경험과 경력만을 연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삶에서 경력 전환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필요하기도 하다. 오히려 한 경력이 평생을 통해 고정될 때 경력은 생애사적 기획이 아니라 ‘숙명’이 된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회과학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학력은 학력이 아니라 학벌이며 ‘신분’으로 기능한다. 경력을 중심에 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학력 차별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학력이 학벌이 됨으로써 한편에서 경력 전환은 불가능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 경력 단절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경력이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경력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진 사람에게 거의 인신적 구속을 당하고 신분제적 폭력을 당하더라도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건처럼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이른바 ‘갑질’은 신분제적 폭력이다. 그 신분제적 폭력을 아무 연관도 없는 직무수행 능력으로 둔갑시켜 정당화/합리화하는 것의 전형을 이번 사건은 보여준다.)

그렇다면 학력의 역할은 무엇일까? 학력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학력은 어떤 경력에 진입하기 위한 출발점을 정하는 구실을 한다. 모든 노동에는 직급이 있으며 그 직급에는 책임과 권한이 따른다. 책임과 권한은 대부분 그 일을 수행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에 따라 차등 분배된다. 이상적으로 생각할 때 학력은 이 정도 교육을 끝낸 사람은 이런 부분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을 거라고 짐작하게 한다. 이 부분은 기술이 아무리 좋더라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 없다면 결코 부여되지 않아야 한다.

의료 분야가 대표적일 것이다. 대리수술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자체만 본다면 지금 막 의사가 된 신참보다 오랫동안 그 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보고 익힌 사람의 손기술이 더 정교하고 좋을 수 있다. 그게 그 사람의 ‘경력’이며 이 경력을 통해 습득한 숙련기술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숙련된 기술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수술할 역량이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 그 기술을 습득했을지언정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인간 몸과 의료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과 역량은 없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지방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 지방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시험에 학력 제한이 없는 이유

이처럼 채용 과정에서 학력 제한 문제는 어떤 역량보다 ‘판단’을 위한 지식 역량과 관련이 깊다. 무엇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에 대한 숙련된 기술을 넘어서는 종합적이고 총제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여기서 판단이란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고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상적으로 볼 때 고등교육(대학교육)과 중등교육의 차별성은 연구 중심 교육을 통해 문제의 원인과 이유를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했느냐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종합적 판단과 분석을 위한 지식이 없을 경우 그 지식을 적용하고 수행하는 역할로 한정되며, 직무도 그 기준에 따라 구분한다. (그리고 학력은 이 지식의 실제성은 말하지 않는다. 지식의 실제성에 대한 판단은 경력을 통해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력은 ‘경력’이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지식 자격’에 대한 최소 증명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최소 자격을 요구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 근거가 타당한가이다. 사실 대부분 최소 자격을 증명할 정도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은 이미 국가에서 자격증으로 관리한다. 의사와 변호사, 변리사, 간호사 등 전문 직종에 대해서 국가가 시험을 볼 자격부터 통제하며 관리한다.

이런 최소 자격 검증이 필요하지 않은 직무에 학력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점을 가장 잘 아는 것이 ‘국가’다. 상당수 국가 공무원 시험에는 어떠한 학력 제한도 없다. 5급부터 9급까지 모두 같다. 나이 제한만 따로 두며 학력과 경력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사전 자격 제한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판단 역량을 ‘고시’라는 시험을 통해 충분히 측정할 수 있다고 보며 ‘경력’은 이후 직무 수행을 하며 쌓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따라서 채용할 때 직무에 따라 선발하는 학력에 차이를 두기 위해서는 분명하게 그 직무에 특정한 지식과 그 지식에 대한 연마가 필요하기 때문임이 분명해야 한다. 그 지식과 연마의 차이에 의해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굳이 그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뽑는 데 자격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공연히 제한을 두는 것, 이것이 다름 아닌 차별이며 여기에는 어떤 ‘합리성’도 없다. 다만 불필요한 차별에 대한 ‘합리화’만 존재하며 오히려 직무 수행에 방해가 될 뿐이다.

학사 학위가 없어서 교수가 못 된 요리전문가

문제는 한국에서 지식 증명인 학력이 마치 경력인 것처럼 둔갑하다보니 이중의 폐해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하나는 학력과 상관없이 유능하고 숙련된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일에서 학력 제한 때문에 실제 일을 수행할 역량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필요도 없는 자격을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한 대학에서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유능한 요리전문가를 교수로 모셔오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게 학사 학위가 없어서 교수로 모셔오는 데 실패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학력이 경력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학력이 그 사람의 실제 업무 수행 역량을 보장하지 못하기에 그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 ‘가외’의 증명을 요구한다. 이것이 이른바 ‘스펙’이다. 스펙은 형식적으로는 경력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제적인 일을 수행하며 쌓은 ‘연마’로서의 경력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했다는 ‘증명’에 불과하다. 학력이 경력으로 둔갑하는 순간부터 실제적 경력에 대한 증명이 필요해지니 스펙 같은 옥상옥이 만들어진다. 지금 대학생들은 과거의 학력 차별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경력 증명을 위해 또 한번 학력화한 스펙 증명을 위해 ‘거의’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것 역시 학력 차별이 만든 폐해라고 봐야 한다.

한국에서 학력 차별은 경제적 차별만 만드는 게 아니다. 학력 차별이 정당화될수록 경력은 등한시된다. 기업들은 대학이 실제적 역량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제기하지만 학력에 초점을 맞춘 채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실제적 역량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경력은 학력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력 증명으로 경력이 아니면서 경력인 것처럼 둔갑한 스펙이 옥상옥으로 요구되며 실제 경력은 또 한번 밀려난다. 학력 차별 금지는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더 의미 있는 경력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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