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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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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물려준 성의 본관은 ‘자유분방’

자기 성 물려준 할머니 임봉근씨, 그걸 개그 소재로 알뜰하게 사용하는 손녀 임다운씨
등록 2021-07-18 07:42 수정 2021-07-22 00:24
임봉근씨와 할머니의 성을 받은 임다운씨. 할머니는 “네가 나온 게 큰 보람”이라 하고 손녀는 “할머니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류우종 기자

임봉근씨와 할머니의 성을 받은 임다운씨. 할머니는 “네가 나온 게 큰 보람”이라 하고 손녀는 “할머니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류우종 기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시들어가는 노년기를 성장기보다 늘이려 애써왔다. 그러니 노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노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101살에 유명을 달리한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은 2006년 91살에 <어떻게 늙을까>(2016)를 쓴 이유를 이렇게 썼다. “청춘에 관한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출산 경험을 다룬 책들도 쏟아져 나오는데” 노년을 다룬 책은 별로 없어서다. 애실이 책으로 보여준 것처럼 ‘할머니’들의 기록이 늘어나고 있다. 이 할머니들은 정형화된 틀로 가둬지지 않는, 몰랐던 ‘미지의 할머니들’이다.
김영옥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는 ‘늙은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인도, 노년도, 어르신도, 시니어 선배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할매나 할배도 다 온전한 자긍심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올바른 이름이 발명되기 전, 그나마 비슷한 ‘할머니’의 정의는 날로 풍부해지고 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김원희씨는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박막례 할머니가 유튜브에서 순발력과 유머감각을 뽐낸 지 어언 4년이 지났고, 유튜버 밀라논나는 ‘엘레강스’의 대명사가 됐다.
젊은층도 할머니에게 열광한다. 김연수는 다이애나 애실의 책을 읽고 쓴 글에서 “그때 어떤 분이 장래희망에 대해 물었는데 얼떨결에 할머니라고 대답해버렸다. 얼결이라고는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멋진 할머니들이 정말 많다. 할아버지들은, 글쎄 잘 모르겠다.”(<시절일기>)
이런 마음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 무루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책의 제목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고 달았다. “나의 쓰기가 할머니의 바느질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할머니의) 손은 오래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 손이고, 때로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 과감히 자르는 손이며, 끝내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손이다. 나이 든 어느 날의 내 손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손이기도 하다.”
여기 다정하고 과감한 미지의 할머니들이 있다. 어느 날 내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그 세계로 떠나보자._편집자주

코미디 그대로다.

“할머니가 저한테 사랑하는 사람끼리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결혼할 때 남편이 그랬대요. 여보, 내가 평생 잘할게. 내가 당신 두고 바람피우면 성을 갈 거야. (어느 날) 남편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습니다. (…) (할머니는) 자식의 성을 자기 성으로 갈아버렸습니다.”

2021년 6월 스탠드업 코미디 극단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 발표회, 임다운(30)씨가 한 스탠드업 코미디다. 임다운씨 할머니는 1931년생, 충남 ○○ 출신 임봉근씨. 손녀와 성이 같다. 2021년 7월10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무려 46년 전(1975년)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에 살구색 핀을 꽂은 임봉근씨가 새침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장강 홍수처럼 흘러넘쳤다.(질문 안 해도 말이 흘러나왔기에 여느 인터뷰와 달리 구술처럼 적는다.)

배움도 제도도, 그 사람 덕에 눈이 떠졌네

우리 손녀가 아주 망신을 주려고 작정했나봅니다. 제 인생은 실패작입니다. 결혼에 실패했고,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이미 물러나기에는 늦었을 때에야 정리한 게 실패지요. 남편은 전북 ○○의 ○○학교 국어 선생으로 있었는데,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우리 반 급우와 자취집이 같았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이 사람을 데리고 시골집에 찾아왔습니다. 우리 학교 교지에 ‘선배에게 후배가 주는 글’을 실었는데, 그것을 보고 소개해달라고 했대요.

그렇게 만난 뒤 (남편인) 김 선생 있는 데(집)를 퐁당퐁당 드나들었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제 눈에도 ‘쓸짓’(쓸 만한 짓) 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시장에서 쪼그라진 양은 밥그릇을 얻고 월급을 쪼개 고아원 식비를 도와줬습니다. 그런 밥을 ‘유사 이래’ 처음 먹어봤습니다. 같이 간 고아원에서 밥을 먹었는데 꽁보리밥과 나온 시금치가 소금으로만 간이 돼 있었습니다. 제가 외딸로 자라서 눈 오는 날이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지게로 업어 등교시켰거든요. (내가)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김 선생은 봉사단체 선생도 자원으로 했습니다. 처음 보고 ‘세상에 말로만 듣던 이런 사람이 있구나’ 했습니다. 그 사람 덕에 눈이 떠졌습니다.

김 선생이 저를 5년간 따라다녔습니다. 결혼하자고 마음먹으니, 김 선생은 충청도 ○○의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에게 자신의 ‘플랜’을 펼쳐놓았습니다. ○○에 실업대학을 만들겠다, 지금은 기술이 필요한 때다, 기숙사도 설립하겠다. 50마지기(약 1만 평) 땅을 그 사람에게 대주었습니다.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작물 재배 교육을 농촌마다 하러 다녔어요. 가끔 집에 오는 정도였어요. 남편과 같이 다니는 최군이 어느 날 물어요.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아냐”고. “지금 한번 따라다녀보실래요” 하네요. 막내를 업고 따라나섰습니다. 오르막을 오르다가 성황당이 나오고 이걸 돌아가니 예쁜 한옥집이 나와요. 2층에 올라갔는데, 신혼집 같아요. 남편이랑 젊은 여자가 있더라고요. 얼마 안 있으면 결혼한댑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부엌에 칼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것을 갖다가 남편을 찌르고 싶다. 남편이 탐나서가 아닌데 그러고 싶더라고요.

임봉근씨가 다운씨에게 좋은 문구와 함께 보낸 편지글들. 류우종 기자

임봉근씨가 다운씨에게 좋은 문구와 함께 보낸 편지글들. 류우종 기자

“호적 등에 써붙이는 것도 아닌데” 하신 어머니

여자가 임신해서는 집을 찾아왔어요. 나중에 아이 낳으면 키워달라, 나는 시집갈 테다, 이래요. 그래서 저는 “그러지 마라, 나는 다 끝났다” 했어요. 서로 남자를 안 갖겠다고 한 셈이 됐네요. 시장에서 가장 큰 가방을 외상으로 사서 남편 옷을 다 넣어다가 여자에게 줬습니다. 기차 타고 가야 한다기에, 택시에 태웠습니다. 좋게 말하면 ‘여걸’이고 다르게 말하면 ‘지지리 못난 거’지요.

그 뒤 남편에게 저보다 더 이전에 와이프가 있어서 그 밑으로 애가 2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사람을 호적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랑 혼인신고가 된 거였습니다.

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니 실패를 인정하자”고 “호적 등에 써붙이는 것도 아닌데”라며 호적을 바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에게) 안긴 돈도 어느 사이엔가 다 없어지고, 사회주의운동을 해서 취직하려 하면 커트돼버리니까, 아버지도 이혼하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싫었습니다. 법률사무소를 찾아갔어요. 당시 다니던 대기업의 넉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몇 개월이 걸려 일이 이뤄졌습니다. 이혼도 하고 성도 바꿨습니다. 남편 도장이라고 제가 파다가 “남편이 준 거”라고 갖다줬습니다. 법무사가 그래요. “내가 30년간 이 일을 해봤지만 이런(이혼하고 자녀 성 바꾸려는) 사람 처음 봤다.”

큰아들이 고1이고 밑의 두 딸이 중학생이던 1975년 김○○에서 임○○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두 딸이 “엄마가 나를 전교생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며 방바닥을 구르며 울어요. 그런데 그렇게 성을 바꾸고 나니 하늘이 흐리멍덩했는데 파래지고, 어제 노랗던 달이 오늘 보니 그 색깔 그대로 밝아요. 이전에는 밥을 먹어도 살이 안 찌더니 이제는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쑥쑥 내려가요. 그동안은 내가 아니었던 거죠. 그때부터 나답게 살자,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2021년 6월 서울 을지로에서 열린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 발표회 무대에 오른 임다운씨. 임다운 제공

2021년 6월 서울 을지로에서 열린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 발표회 무대에 오른 임다운씨. 임다운 제공

아들에게 ‘애무’를 당부한 어머니

사회주의운동 하던 남편에게 의외의 반전이 일어난다.

“남편은 일본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감옥에 끌려갔는데, 고문을 받아서 후유증이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혼한 여자의 친척이 신청해 남편을 애국지사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현충원에 묻혔다지요. 그 여자 자식 둘 다 공무원이 되었는데, 여자가 그것까지는 못 보고 죽었다고 해요.” 여전히 전남편이 재혼한 여성에게 연민을 갖는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할머니들은 ‘내 새끼 더 먹어’ 하면서 가시 발라 살점 밥 위에 얹어주고, 손주가 ‘할머니도 먹어~’ 하면 ‘할미는 배불러, 할미는 아까 다 먹었어’ 이런 분이 많으신데요. 제 할머니는 정확히 반, 그것보다 조금 더 드세요. 밥그릇으로 가져가면서 혼잣말하세요. ‘난 금방 죽응게~.’”(2019년 발표 스탠드업 코미디)

전쟁 통에 마치지는 못했지만 대학을 다닌 임봉근씨는 대기업 기숙사 사감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길렀다.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가 사람을 결정하죠. 그런 남자한테 당한 어리숙한 여자가 세상 바뀌어 대기업 기숙사 카운슬링을 했어요(기숙사 사감).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나무 하나가 서 있는 것처럼 꼼짝달싹 못했지요. ‘B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처럼 엄격했죠. 러브레터 읽는 B사감 그 심정도 잘 알아요. 그런데 60이 넘어 동네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밥 친구 이상은 안 돼요. 순정해도 될 때 안 되고, 순정을 안 해도 될 때는 순정파고.”

다운씨에게로 이어진 ‘임’이라는 성은 할머니의 정신을 담고 있다. 다운씨는 그걸 ‘자유분방’함이라고 느낀다. 할머니는 다운씨에게 몸과 섹스를 알려준 사람이다. “할머니가 음담패설 잘하고 보지, 자지 그러잖아.” 다운씨가 옆에서 거들자, 할머니가 한자로 포장해 자신의 분방함을 쑥스러워하는데.

“보지는 보물이 있는 방죽이란 뜻이고, 자지는 자식을 떨어뜨리는 알이 있는 방죽이라는 건데 그걸 입으로 말하는 게 어때서요. 옛날에 며느리한테 ‘남편한테 거시기 헐 때 힘자랑보담도 애무에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혀’ 했는데, 며느리가 질겁하고는 대답을 안 해요.”

이러니 할머니의 말들은 개그 소재로서 그만이다.

“지금은 남편이 된 애인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할머니에게 소개해줬습니다. (…) 할머니가 그 친구의 귀를 잡아끌고 말했습니다. ‘쎅쑤 잘해야 돼. 애무를 잘해야 돼.’”(2021년 코미디)

2020년 임다운씨는 결혼신고를 하면서 자신의 성을 물려주겠다는 합의서를 함께 제출했다. 현행법상 엄마 성을 쓰려면 결혼신고서와 함께 합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때 신청하면 받아주지 않는다. 2021년 4월 여성가족부는 출생신고를 할 때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관련 법은 개정 전이다. 여성가족부의 개정 의지는 2018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조사 대상자 약 3천 명 중 67.6%가 ‘부성주의 원칙은 불합리하다’, 71.6%가 ‘자녀의 성은 부모가 협의해 선택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힘들게 이어받은 성이니…

2020년 결혼한 남편은 “그렇게 힘들게 이어받은 성인데 당신 성으로 하라”고 말해줬다. 여자 성으로 물려줄 때의 혼돈 역시 코미디에 담겼다. 46년이 지나도 여전히 코미디 그대로다.

“합의서 ‘동의함’에 체크하고 혼인신고서를 냈더니, 구청 직원이 저를 보고 크게 물어요. 이거 제대로 쓰신 거 맞아요? 이렇게 하면 아기가 엄마 성 따르게 되는 거 아세요? 이거 한번 이렇게 하시면 못 바꾸는 거 아시죠? 법원 가야 해요.”(2021년 코미디)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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