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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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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질문해야 할 때, 안해야 할 때

질문해야 할 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고
받아야 할 때 받는, 제대로 질문하는 사회를 위하여
등록 2021-06-12 20:24 수정 2021-06-15 11:06
2021년 5월21일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권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2021년 5월21일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권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건달은 싸워야 할 때 싸워야 건달입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맞습니다. 어느 직업에나 본분이라는 게 있지요. 기자라는 직업의 본분은 무엇일까요? 기자는 무엇을 해야 기자일까요?

저는 ‘질문해야 할 때 질문해야’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란 질문하는 직업입니다. 시민이 묻고 싶어 하는 질문을 대신 던지는 것이야말로 기자가 하는 일의 본령입니다.

기자는 질문하는 직업

근래 기자들의 질문하는 능력을 의심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도자료나 취재원의 말을 ‘받아적는’ 데만 익숙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의지와 역량을 잃어버린 기자가 많다는 겁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2021년 5월21일,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두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미국 여성 기자 2명이 질문을 던지고 한국 기자가 질문할 차례가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여성 기자들은 손들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한 여성 기자가 질문에 나섰습니다.

이 상황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중요한 기자회견에 질문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기자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의 ‘추억’도 다시 소환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며 “아무도 없나요?”라고 거듭 물었지만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던 ‘흑역사’ 말입니다.

사소한 발언 하나도 뉴스가 될 수 있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질문이 끊어진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기자단이 질문할 기자를 미리 정해두었는데 대통령이 갑자기 여성 기자로 질문자를 한정하니 혼선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위가 어찌 됐든 변명이 용납될 일은 아닙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대통령을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알 권리가 있고, 기자는 그걸 물어보고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만났는데도 질문할 기회나 시간을 허투루 버린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기자라면 어떤 돌발상황에도 물어볼 수 있는 예비질문 몇 가지 정도는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추첨으로 선발된 소수의 기자만 참석 기회를 얻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기자단 대표선수로 기자회견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면 어땠을까요?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질문도 가능하겠지요. 시민들이 대통령에게 궁금해하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정상회담과 관련이 없다고요? 이날 미국 기자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UFO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선을 넘는 기자들

‘질문해야 할 때 질문하지 않는’ 기자보다 더 큰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야 할 때 질문하는’ 기자입니다. 초년생 때부터 기자들은 집요하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훈련받습니다. 기자는 어떤 질문이든 해도 부끄럽거나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지요. 그러다보니 취재원은 기자로부터 ‘수준 이하’의 질문을 너무 많이 받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특보를 진행하던 한 방송사 앵커는 막 구조된 안산 단원고 학생을 인터뷰하면서 “친구가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 학생이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2020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주검이 발견된 현장 브리핑에서는 “외모가 심하게 손상됐느냐”는 질문이 나와 논란이 됐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해 언론 취재에 응했던 감염증 전문가들은 최소한의 공부도 하지 않은 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수준 낮은 질문을 쏟아붓는 바람에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제 기자들의 질문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선을 넘는’ 질문을 절제하는 판단력도 포함돼야 합니다.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고 특종을 할 수 있다면 예의나 규범 정도는 어겨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취재원의 인권과 사생활을 존중하고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질문의 윤리’를 고민해야 ‘기레기’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습니다.

기자를 욕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참 편리하겠지만,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취재원도 바뀌어야 합니다. 서구의 공적 영역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에 응답하는 걸 당연한 책무로 여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질문에 응답해야 할 책임(accountability)’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의 공직자들은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이 기자를 만나는 건 어쩌다 한 번 있는 특별한 이벤트입니다. 청와대 비서들, 관료들, 판검사들도 자기 이해관계가 따로 없다면 기자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는 사실 ‘질문받지 않는’ 공직자와 동전의 양면 관계입니다.

시민 삶과 직결된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담당하는 공인이라면 기자들 앞에 서서 질문에 답하게 하는 문화와 제도가 뿌리내려야 합니다(현실에서 기자들 앞에 강제로 서는 이는 언제나 연예인과 스포츠선수뿐입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2019년 12월부터 시행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공소 제기 전 모든 형사사건에 관해 혐의사실과 수사 상황 일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검사와 기자의 접촉은 금지됐고, 검찰청에서 열리던 언론 브리핑과 티타임도 사라졌습니다. 기자들이 질문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거지요.

질문 차단, 그 수혜자는 누구?

수사 속보 과잉과 피의사실 중계의 폐단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자가 질문할 기회를 아예 차단하는 게 과연 현명한 해법일까요? 지금 웃는 건 규정을 편의적으로 활용해 불편한 질문은 안 받고 유리한 내용만 알릴 수 있게 된 검찰입니다.

기자와 취재원의 유착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자와 취재원의 접촉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교통사고가 많다고 운전을 금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질문하는 일은 기자의 본분입니다. 기자가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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