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밉기만 합니다. 학교도 매일 못 가고, 친구와 놀지도 못하고, 가족과 마음 편히 여행을 떠나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집에 ‘갇혀만 있던’ 어린이들에게 코로나19 유행은 “징그러운 추억”(이예린)입니다. 혹시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때는 마스크를 쓰고 온라인으로만 만났다!”(강지호)고 추억하게 될지라도 말이죠.
지난 1년여 코로나19 탓에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그랬어>에 실린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다섯 명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친구들이랑 손잡으면 안 돼서 슬프고” “마음에서 눈물이 내려오는 것 같다”는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어떤 답을 해줘야 할지, 학교 선생님,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부모 등에게 들어봤습니다. 재난은 사회의 약한 고리에는 더 가혹하게 닥칩니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더 아픈’ 마음을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직접 전합니다.
어른들은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요.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요. ‘작은 학교’ 말고 ‘진짜 학교’의 문이 다시 활짝 열려서, 아이들이 매일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재잘대며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조금 늦은 어린이날 편지를 띄웁니다._편집자주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 공포는 작지 않았다. 30명 넘는 아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바깥출입을 못해서 센터를 나오지 못했다. 지금도 사람만 보면 슬슬 피하는 지경이지만 당시 센터에 나오는 아이들은 마치 전쟁터의 지뢰밭을 겨우 지나서 피란처에 도착한 듯한 착각이 들게도 했다.
정말 학교도 문을 닫았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나도 학교 문은 열었는데, 그런 학교가 꽁꽁 문을 걸어 잠갔다. 대다수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센터를 찾는 친구는 생계를 위해 계속 일터에 나가야 하는 부모님을 둔 아이들뿐이었다.
개학이 미뤄지고 졸업식과 입학식도 모두 취소됐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는 2월부터 센터에 나오지만, 학교를 갈 수 없어 1학년 노릇은 못해본 채였다. 3월이 훌쩍 지나고 4월 중순이 되자 센터를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한번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에 나온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인 저녁 7시30분 무렵에나 가능할 가정방문을 대부분의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해줬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더 많이 봐달란 것이 부모님들의 요청이었다. 온 식구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심지어 일요일이나 늦은 밤의 돌봄을 청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나 한족인 부모님들이 유독 그랬다. 주로 공장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부모님들은 대개 아이들이 학교나 센터에서 돌봄 받는 시간과 엇비슷하게 일이 끝난다. 이에 견줘 면세점 등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조선족이나 중국계 어머니들은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과 오후에 노동시간이 잡힌다. 월급제보다는 인센티브 등으로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 노동시간을 훨씬 더 길게 잡으려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관광 성수기에는 대부분의 중국 출신 어머니들이 면세점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는 돌봄 요구가 높아져만 갔다.
관광객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면서 면세점들이 문을 닫았고, 부모들은 실직자가 됐다. 그런 사정으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기도 했다. 때로 그 여파가 아이들의 이사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더 머물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멀리 인천으로 이사한 아이의 집에 인사차 전화했을 때는 ‘이젠 센터도 못 가게 멀리 왔다’고 아이가 종일 침울해한다고 어머니가 전했다.
동네는 벗어나지 않더라도 거처를 옮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집이 적지 않았다. 외벌이를 하는 한부모 가정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아예 직장을 잃고 좌절해버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듯 술에 의지하며 현실을 외면하려는 부모님도 있다. 실직으로 절망한 부모 곁에 혹시나 자기 삶터가 옮겨지지 않을까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절망은 사회적으로 별로 포착되지 않는다.
2. 동굴 바이러스P는 거의 하루 걸러 하루씩 아프다. 아픈 곳은 주로 배와 머리다. 학교를 갔다오면 적잖은 아이가 두통과 복통을 하소연한다. 그중 P는 유독 눈에 띈다. P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서도 수시로 양호실에 가서 누워 있는 모양이다. P에게는 공부가 힘들고,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장난’이 힘들다. 걸핏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배를 부여잡는다. P에게는 고집쟁이 동생이 있다. P의 동생은 오늘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딱히 이유는 없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가기 싫어서 계속 미적거리다 결국 안 갔단다. 엄마는 화내다 결국 “그럼 오늘만이다!”라고 말하며 일을 가셨다고 한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K의 말은 가끔 알아듣기가 힘들다. K의 신경이 예민해질수록 웅얼거림이 더 심해진다. 어쩌면 웅얼거림이 아니라 본래 있던 음성 틱이 심해져서 대화를 어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K의 곁으로 다가갈수록 K의 말은 더 속으로 숨어버린다. 말을 알아듣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K가 속상해하는 그 지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K는 좀 전에 “저녁을 먹기 전에 집으로 가겠다”고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조금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곧 나는 울면서 나를 찾는 다른 아이에게 달려가야만 했다. 잠시 뒤 돌아왔는데 그동안 K의 울음이 더욱 커져 있었다. 센터 밖 계단에 서서 훌쩍거리는 모습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나를 보자마자 이제는 계단을 오르며 울기 시작한다. K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누군가 자신을 괴롭혀서 그랬다든지,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어 그런다고 할 것이 틀림없다.
K도, P도 조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작은 자극에도 크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아이들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K가 하고 싶은 말은 당장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일 테다. 바로 지금, 당장…. K에게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일러주고 센터로 들어왔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학교는 아이가 조금만 아프다고 해도 얼른 아이를 집으로 보낸다. 집에 돌볼 사람이 있는지는 따질 필요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자주 아픈 아이들은 자주 집에 있게 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은 더 자주 아파하는 것 같다. 학교는 아이들이 오든 말든 아무 부담이 없어 보인다. 그런 학교가 정말 부럽다. 아이들의 입소에도 퇴소에도 지역아동센터는 아무런 선택의 자유가 없다. 굳이 다니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이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다니기도 한다. 그런 아이는 와서도 우두커니 서 있거나 드러누워버리기 일쑤다. 부모님들은 거기라도 다녀야 안심된다며 아이를 센터에 굳이 보낸다. 등록 아이 수가 30명이 못 되는 경우 석 달 안에 그 수를 채우지 못하면 교사 1명을 빼야 하는 지역아동센터 처지에선 ‘그러면 넌 그만 다녀라’ 하고 큰소리칠 입장도 못 된다. 현실은 오히려 ‘혹시 그만둘까’ 늘 마음을 졸여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못 본 척 그냥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아이들이 집에 머물 수 있는 더 많은 명분이 주어진 이 현실을 지역아동센터로선 더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집에 있어도 되잖아? 집에 있으라며… 그래서 집에 있겠다고… 저번에도 혼자 있었는데. 이제는 혼자 잘 있을 수 있어. 온라인학습도 열심히 할 거야.” 이제 아이들은 마치 행복의 열쇠를 찾은 것처럼 더욱 당당하게 집에만 있길 원한다. 집에서 유튜브도 보고, 게임도 하고,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어가면서 그렇게 사는 게 더없이 좋단다. 공부는 온라인으로도 가능한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그렇게 집에 둥지를 튼 아이들은 어디를 가도 자주 아프고, 더욱 힘들고, 더욱 부대껴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코로나19는 딱 맞는 동맹군 노릇을 한다. 그래서 코로나19의 다른 이름은 ‘동굴 바이러스’일지도 모르겠다.
J에게 휴대전화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J의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빼앗았다가 출석이나 온라인학습을 자기 휴대전화로 해야 한다는 J의 말에 할 수 없이 다시 내줬다. 아이를 혼자 다 돌볼 수도 없고,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 알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D의 할머니는 도저히 형편이 안 되지만 휴대전화를 D에게 사줬다. “반에서 휴대전화 없는 아이는 D밖에 없다는데 어떡해?” 이제 휴대전화는 아이들의 또 다른 자아가 되고 있다.
아이들은 흔히 유튜버가 보여주는 세상을 욕망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새로운 악기를 배워보자”고 말해도 우선 그걸 유튜브에서 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나뉜다. 경험은 결국 유튜브로 수렴돼, 그걸 유튜브에서 보았거나 혹은 그걸 유튜브에 올리고 싶다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들마다 알고리즘이 독특해서 J는 ‘좀비’에서 ‘사이코패스‘를 지나 이제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고 있단다. 물론 다행히 아직 놀이터를 나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든 일상이 망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점점 더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데 왜 귀찮게 그걸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아이가 늘고 있다. “쌤! 벌써 유튜브에서 그거 다 봤어요.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아요. 그거 하지 말고 다른 거 해요.” 유튜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은 이미 ‘희귀템’이 돼버렸다.
이 모든 일이 무엇의 징후가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자기 터전에서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만, 그렇게 최소한의 삶을 살아가려는 세대가 생겨나는 건지 아직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찬 ‘신 역병의 시대’에 참으로 절묘하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손가락과 눈동자만 움직이면 종일 끝도 없이 흥미진진한 콘텐츠를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는 삶 말이다. 그리고 0과 1의 디지털 시대를 눈동자와 손가락만으로 살아내려는 아이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부대껴야 하는 아날로그적 돌봄은 자주 마찰음을 낸다.
아이들이 코로나19로 잃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본래 주어진 게 많지 않았던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뭘 잃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학교를 안 가서 더 좋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전에도 여행이나 나들이를 많이 하지 않았고, 좋은 집에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행복이 보장되지도 않았다. 코로나19 덕분에 휴대전화를 더 자주 할 수 있어 좋아졌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의아해할지 모른다. 어차피 우리는 실제를 경험하는 것보다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익숙하다며 말이다. 그러니 주지도 않고 잃은 것을 염려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이라며 재미있어할지 모른다.
죽은 식물에는 어떤 재난이 와도 고통이 아니다물기가 바싹 말라버려 뿌리가 아직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화분 속 식물을 보면 이걸 내다버리는 게 나을까 늘 고민스럽다. 죽은 식물에는 태풍이 아니라 그 어떤 재난이 와도 어차피 더는 고통이 못 된다. 어쩌면 아이들은 겨우겨우 지탱해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덕분에 화려하게 미쳐 돌아가던 세상을 잠시라도 덜 보게 되니 차라리 낫다고 할지 모른다. 오히려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모두가 함께하고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모른다.
누리는 게 많았던 어른들에게는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는 정말 힘겨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며 살아가야 했던 어떤 아이들에게는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건 별다르지 않은, 변함없는 일상일 뿐일지 모른다. 그 대단한 코로나19가 말이다.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센터장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와 함께 만듭니다. 어린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그토론’을 요약하고 ‘코로나로 생긴 취미’ ‘차라리 혼자가 편할 때’ 등의 주제로 어린이 독자들이 <고래가그랬어> 엽서에 그린 그림과 사연을 싣습니다. 토론은 마스크 사용 등 방역 수칙을 지키며 진행했습니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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