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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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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이 미얀마 군부 규탄하는 이유 [이설아·박도형]

세계시민선언 이설아·박도형 공동대표
등록 2021-03-23 13:04 수정 2021-03-24 17:17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특별한 잡지를 네 번째 만듭니다. 2020년 코로나 뉴노멀(제1315·1316호),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제1326·1327호),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제1340호)에 이어 2021년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는 ‘체인저스 21명’을 펴냅니다. 지속가능한 세계, 평등한 세계, 자유로운 세계, 더불어 사는 세계를 꿈꾸며 체인저스들은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때론 변하지 않는 사회를 보면서 분노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그 작은 변화의 흐름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이들은, 작지만 값진 승리를 향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도 동행해볼까요? _편집자주

2021년 2월2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센터 앞에서 ‘사다리 시위’가 열렸다. 세계시민선언, 청년기후긴급행동, 녹색당의 청년 회원들이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포스코를 규탄하고 미얀마 민중과 연대”하는 시위였다. 이들은 포스코가 미얀마 군부의 돈줄 기업과 사업 파트너십을 맺고 배당금까지 지급해왔다고 비난한다. 이날 미얀마 전역에선 수백만 명의 시민이 군부 쿠데타에 맞서 총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미얀마 시민이 ‘22222 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이날, 미얀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미얀마와 서울에서 동시에 울려퍼졌다.

2019년 5월17일 박도형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 행진에 참석하고 있다. 이설아, 박도형 제공

2019년 5월17일 박도형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 행진에 참석하고 있다. 이설아, 박도형 제공

국제연대는 한국 청년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앞서 2월1일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압승한 2020년 11월 총선 결과에 불복해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뒤집고 권력을 장악했다. 시민들이 민주화 요구 시위와 불복종 운동을 두 달 가까이 이어가는 가운데, 3월18일까지 군경의 폭력 진압과 발포로 최소 218명이 숨졌다. 미얀마 시민사회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세계시민선언은 한국에서 미얀마 사태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청년단체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민중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세계시민의식을 퍼뜨리는” 활동을 한다. 2020년 6월 이설아(26), 박도형(23) 공동대표가 창설했다. 이씨는 생업(직장)과 학업(대학원)을 병행하는 활동가다. 박씨는 대학 4학년 재학생이다. 50여 명의 회원도 모두 20대 청년, 학생이다. 단체도 사람도 한창 물오른 나무처럼 생기가 넘친다.

세계시민선언은 창립 직후인 2020년 6월20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비판 성명을 시작으로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 직원의 현지인 성폭행 비판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을 지지한 배우가 출연한 영화 <뮬란> 보이콧 △타이와 벨라루스의 민주화운동 지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12월10일) 논평 △미얀마 군부 규탄 침묵행진 등 꾸준히 연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들이 국제사회의 인권 이슈에 앞장서는 이유는 뭘까? 이설아·박도형 공동대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은다. 그 희망은 해당국 민중에게뿐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한국 청년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기도 용인 출생인 이설아 대표는 단국대(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낮에는 게임기획사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다문화정책(사회복지학)을 공부한다. 외교부 ‘청년 공공외교단’과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에서 일하면서 세계를 보는 눈을 넓혔다. 박도형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2018년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인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의 배경과 실상을 알게 된 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을 만들어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11월23일 박도형 공동대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청년·학생 긴급행동’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설아, 박도형 제공

2019년 11월23일 박도형 공동대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청년·학생 긴급행동’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설아, 박도형 제공

국제사회 인권 이슈마다 목소리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이설아(이) “2019년 12월 국회에서 당시 바른미래당이 5개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초대해 ‘홍콩 민주항쟁에서 5·18 정신을 만나다’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어요. 저는 바른미래당 경기도당 대학생 위원장이었고, 박 대표가 시민단체 참석자 중 한 명이었죠.”

박도형(박) “저는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 모임 대표로 참석했어요. 녹색당 당원입니다, 하하.”

바른미래당은 보수 성향 정당이었는데 뜻밖이군요. 보수 정당은 민주화운동, 인권, 기후환경 같은 진보적 의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지 않나요.

“적은 걸 넘어 무지하죠. (인터뷰 첫 질문부터 돌직구 답변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바른미래당이 처음 창당할 때는 ‘따뜻한 보수’를 주창하고 인권을 강조했어요. 그런 어젠다에 낚였죠. (다시 웃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입당했는데 그 뒤로 새누리당과 ‘싱크로’(공조)를 맞추면서 극우파 발언도 하고 변색하더라고요. 실망하고 탈당했죠. 그래도 다음에 선출직 정치인으로 ‘폭력 없는 세상,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어요.

인권운동을 위해서라면 더 진보적인 색채의 정당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정당들은 문턱이 좀 높았어요. 청년·학생이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고 싶어도 정치인과 개인적 인맥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했죠. 바른미래당은 당시 청년정치학교를 운영했어요.”

“이 대표를 처음 봤을 때 진짜 신기했어요. 저 사람은 바른미래당 당원인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맨날 전태일 3법 얘기하고,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하고. 퀴어 프렌들리한 페미니스트이고. (좌중 웃음)”

세계시민선언 활동에 대해 친구나 가족,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

“주변에서는 다 환영하고 격려해줬어요.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쟤네 돈 많으니까 한가한 소리 한다, 사는 게 절실하지 않아서 저런다’는 말도 해요. 저희, 돈 진짜 없거든요?(웃음) 삶이 더 절실한 사람들이 주거든 취업이든 인권이든 삶의 현안에 관심을 갖다가, 자연스럽게 우리 문제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깨닫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 곁의 고통받는 노동자들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홍콩이나 국제연대 말하는 게 기만적이지 않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답답했죠.”

2020년 11월17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운데)가 ‘태국항쟁 연대 청년·학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설아, 박도형 제공

2020년 11월17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운데)가 ‘태국항쟁 연대 청년·학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설아, 박도형 제공

“한국에서 해봐야 되겠어?” 냉소를 넘어

지금 청년 세대는 한국을 ‘헬조선’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자기 앞가림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세계시민 개념이나 국제연대 운동이 설득력이 있을지.

“요즘 젊은 세대가 이전보다 더 보수화한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으로 자기 의견이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고,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보수층이나 침묵하는 다수가 노출되면서 전체적으로 보수화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또 지금 청년 세대는 우리나라 윗세대보다 다른 나라 또래 세대와 동질감이 더 높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취업난에 시달리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심지어 그들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폭압적 정부의 인권 탄압을 현재진행형으로 겪는 걸 보면 그게 꼭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공감이 커질 수밖에 없죠.”

“1980~90년대에는 사회운동을 하는 청년 세대를 포함해 모두가 ‘희망’을 가졌던 것 같아요. 취업난이 지금만큼은 아니었고, 민주화 투쟁 활동가들은 ‘혁명’을 외칠 수도 있었죠. 지금은 희망을 말하기가 어려운 시대 같아요. 일례로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불공정하다’고 반대했던 청년들도 정규직화가 좋은 일이란 건 알고 있어요. 다만 정규직화를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한 거죠. 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정규직이 되는 세상을 꿈꿀 수 없을까? 저희는 그런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국제연대 운동도 “한국에서 해봐야 되겠어?” 냉소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찾기 위해서,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죠.”

2021년 2월5일 세계시민선언 회원들이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침묵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맨 앞이 이설아(왼쪽), 박도형 공동대표. 이설아, 박도형 제공

2021년 2월5일 세계시민선언 회원들이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침묵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맨 앞이 이설아(왼쪽), 박도형 공동대표. 이설아, 박도형 제공

국제연대를 위한 기준, 시민자결주의

국제 뉴스를 계속 보고 그 맥락까지 알아야 하겠군요.

“인터넷으로 외신도 보고, 트위터도 보고, 여러 통로로 살펴봅니다.”

“공부를 많이 해요. 국내에도 이주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가져달라며 연대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고요. 100년 전 미국이 ‘민족자결주의’를 말했는데, 저는 오늘날 ‘시민자결주의’를 말하고 싶어요. 각 나라 시민, 보통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타이에도 세대 갈등이 있는데, 젊은 세대는 일국양제(중국)나 왕정(타이)이라는 기성 체제나 가치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어요. 저희는 그런 주장에도 나름 합리성이 있다고 보니까, 전체적인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고 고려해요.”

수많은 국제 인권 이슈 중 어떤 사안과 연대할지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요.

“먼저, 국제사회에 연대와 도움을 요청하는 분이 많아요. 미얀마의 경우 ‘밀크티 동맹’이라고, 아시아 이웃 나라들에 연대를 요청했죠.”

“한국이 도의적이든 실질적이든 인권 탄압의 ‘책임 국가’인 사례에도 주목합니다. 예컨대 한국을 찾는 분쟁지역 난민 신청자 출신국을 보면, 타이나 바레인,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탄압에 쓰인 물대포와 최루탄이 한국산 수출품이거든요.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미얀마 군부와 합작투자를 하는 식으로 인권 탄압 세력과 연루된 사례도 많고요.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를 보면, 미얀마 군부와 합작투자를 하는 외국계 기업 14개 중 6개가 한국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더 명확하다고 생각해요. (유엔 글로벌 콤팩트는 “모든 기업은 기업의 인권 존중 의무를 확인하고, 인권 침해에 연루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인권 탄압 국가에 대한 비난 성명이나 수출 규제 같은 수단이 있지 않나요.

“그게 일관되지 않고, 외교나 국익 논리로 강대국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홍콩 문제에 침묵하는 우리 정치권에 많이 실망했어요. 정부가 최근 미얀마 사태에 대해선 발언을 많이 하잖아요. (3월12일 정부는 미얀마에 최루탄 등 군용물자 수출을 중단하고 개발협력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홍콩 문제엔 방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입니다. 국제 문제에서도 정말로 옳지 않은 걸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정부와 국회였다면 우리 삶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보편적 가치보다 국익을 따지는 ‘선택적 방관’이죠.”

“난민지위 심사도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난민 신청자에게 그걸 증명할 자료를 내놓으라는데, 성소수자가 박해받는 나라일수록 더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고 증명하는 건 더욱 어렵잖아요. 그런 걸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형식만 요구해요. 난민 신청자가 왜 난민지위 심사에서 거절됐는지 이유도 알기 어렵고요.”

청년들이 왜 국제연대를 하는지 민주화 세대가 알았으면

단체 사무실 임대료, 활동 비용 같은 건 어떻게 마련합니까.

“저희는 회비가 없어요. 공동대표와 회원들이 그때그때 갹출하거나, 주변 도움을 받습니다.”

“회비를 내는 것도 누군가에겐 활동과 참여의 문턱이 될 수 있죠.”

단체가 창설된 지 9개월가량 지났는데, 자평해본다면.

“우선 정치권을 보면, 홍콩 문제엔 전혀 말이 없다가, 타이 민주화 시위는 조금 얘기하더니, 미얀마 사태에 대해선 너도나도 얘기하거든요. 저희를 비롯해 인권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만큼, 정치권이 국제 문제로도 관심을 넓혀가지 않나 싶어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에 국제연대 운동을 하는 청년단체가 정말 드물구나, 기반이 없는 곳에서 운동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점점 더 청년 세대도 국제연대에 관심을 갖고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저희가 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SNS에서 공유한다거나, 관련 보도에 대한 댓글, 주변 사람 반응을 보면, 저희 주장이나 활동을 낯설게 여기기보다는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확연하게 늘었어요. ‘너희, 이런 건 안 해?’ 물어보는 친구도 종종 있고, ‘그럼 같이하자’ 그러죠.”

또래 청년 혹은 10대 청소년 세대에 해주고 싶은 말은.

“같은 동료 시민으로서, 글쎄요, 저희가 해줄 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얘기하기보다 (그들의 말을) 듣고 싶어요.”

86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웃음)”

“기성세대는 민주화운동 시대를 관통하면서 거대한 ‘정치적 경험’을 독점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화운동 당사자로서 정체성은 어디로 갔나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외국 시민들이 힘들게 싸우고 있을 때 정작 민주화 세대는 침묵하고, 오히려 당장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왜 남의 일에 연대하는지 그 이유를 좀 생각해보고 알았으면 좋겠어요.”

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이설아·박도형을 바꾼 것

이설아 성희롱
대학 재학 중이던 2017년 12월, 학생회관에 낯뜨거운 펼침막이 걸렸다. 학생자치기구의 ‘졸업 축하’ 펼침막에는 심각한 성희롱 문구가 쓰였다. 학교 쪽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탄원서를 냈지만, 대학 당국은 오히려 가해 학생들을 감싸려 들었다. 다른 학교에서도 교수가 성희롱을 저질러도 탈 없이 넘어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권력의 차이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묵살해버릴 수 있구나” 절감했다.

박도형 세월호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그 전엔 사회문제나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고2 학생들이 너무나 안타깝게 죽어갔는데, 책임자 처벌은커녕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 된 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이 뭔가 크게 잘못됐구나’ 생각했다.

에필로그

이설아·박도형 공동대표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로 초대해 만난 날은 3월1일, 공휴일이었다. 평일에는 함께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인터뷰는 시종 진지하면서도 즐거웠다. 20대 특유의 때 묻지 않은 발랄함과 낙관적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공부하랴, 연애하랴, 사회활동 하랴,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것 같아요.

“지난 학기 수강 과목은 C마이너스를 받았어요. 대학원에서 그런 점수 받기도 참 힘든데.(웃음) 여가 생활을 포기할 때가 많은데, 뭐, 날씨 좋은 날에는 시위하면 되니까요.(좌중 폭소)”

이 대표는 직장도 다니죠.

“게임기획사에 다닙니다. 게임 콘셉트를 짜고, 시나리오도 써요. 연애 시뮬레이션이나 스토리 게임 같은…, 하하.”

단도직입으로 물을게요. 활동이 재미있나요.

“재밌어요, 하하.”

“일하는 것도, 사는 것도, 재미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어 사회를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재미있게 해야죠. 어떤 영역에서 재미있게 세상을 바꾸는 것도 얼마나 멋있어요?”

“많은 시민이 여러 분야에 조금씩 참여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꿔가는 것, 흥미로운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친 뒤 두 대표는 서로 “술 먹으러 갈까?” “그래” 하며 맞장구를 쳤다. 문득 ‘인터뷰 뒤풀이’를 구실 삼아 “따라가고 싶다”는 말을 꺼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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