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님, 문의드립니다. 대표의 사적 업무 지시가 2019년도 7월 직괴법(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전에도 계속 있었고 직괴법 이후에도 이어서 계속 지시가 있었습니다. 근로감독관은 사적 업무 지시가 어떤 경로로 맡게 된 것인지 묻고, 이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요.”(아이디 ‘맥주한잔’)
“근로감독관이 어떤 경로로 사적 업무를 선생님이 하시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얘기한 것은 아마도 자발적으로 하게 된 일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 같은데요. 대표가 시키는 일은 부당하더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아래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해당한다고 얘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직장갑질119 스태프 박점규)
“근로자 대부분이 을의 위치에서 거부할 수 없어 했던 것이지 자발적으로 하는 근로자가 있을까요?ㅠㅠ 완전 개인비서인 양 부립니다. 대표의 개인사업자 업무도 시키고요. 개인 실비 처리 등등 너무 많아서 나열할 수 없어요. 거기다 대표 배우자도 개인 업무 시켜서 여직원들이 꿈에 나올 것 같다고 벌벌 떨어요.”(맥주한잔)
“대표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 개인사업자 업무까지 시키고, 심지어 대표 배우자의 개인 업무까지 시켰고, 그 증거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직원들이 고통받으셨다면, 당연히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노동부 지침대로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는 근로감독관들 많습니다. 감독관과 대화(통화)한 내용 녹음해놓으시고요. 위 공지 사항에 있는 메일로 자세한 내용 써서 보내주시면 도와드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박점규)
“네, 스태프님 감사합니다!!!”(맥주한잔)
3월15일 오전 10시40분. 직장갑질119의 오픈 카톡방은 오늘도 시끌벅적하다. 대표이사의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지시를 따르느라 굴욕적인 직장생활에 한숨짓는 직장인의 하소연이 쏟아진다. 팀장의 폭언과 난데없는 해고 통보에 피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이어진다. 직장갑질119는 노동 전문가와 노무사, 변호사 등이 이런 직장인들의 고민을 무료로 상담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온라인 시민단체다. 박점규(50)는 이 단체의 몇 안 되는 상근활동가다. 2017년 3월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당할 때까지만 해도 훗날 이런 일을 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즈음이었어요. 넉 달가량 서울 광화문광장에 예술인, 노동운동가 등과 함께 세월호 천막 옆에 텐트를 치고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며 먹고 잤어요. 토요일 밤 9시쯤 청와대 행진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광장 쪽을 향해 난 9번 출구에서 많은 청년과 마주쳤죠. 그들의 눈빛을 보며 ‘이들은 촛불을 들고 싶어도 토요일까지 일해야 하는구나. 광장의 촛불이 꺼지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들은 다시 불안정 저임금 노동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촛불은 무엇으로 이어져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박점규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다른 노동운동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토론을 이어갔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맞선 1987년 6월 항쟁이 그해 가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듯, 30년 뒤 국정농단에 맞서 일어난 촛불 투쟁은 또 다른 노동자 권익 향상 투쟁으로 이어져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의 울타리로 두르는 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이른 결론은 거대한 담론 투쟁이나 ‘다짜고짜 노조’가 아니었다. “평범한 회사원들의 관점에서 직장을 바꾸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직장갑질119라는 이름도 그가 붙였다.
2017년 11월1일 문을 연 직장갑질119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하루에만 수십 명의 직장인이 익명으로 입장이 가능한 오픈 카톡방에 들어와 자신들의 하소연을 쏟아냈다. 140여 명의 노동 전문가와 노무사, 변호사가 하루에 한두 시간씩 시간을 쪼개 상담하는데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다. 그렇게 상담을 통해 제보가 쌓여간다.
모두가 지켜보는 익명 카톡방에서 이뤄지는 상담이 미진할 땐, 전자우편으로 더 구체적인 상담을 이어간다. 지금도 일주일에 70∼100통의 전자우편이 날아든다. 일주일에 한 차례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 김한울 노무사, 윤지영·권호현 변호사 등과 회의해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박점규는 “노조 밖에서 사용자한테 당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피해를 매일 듣고 목도하고 있어요. 이 고통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엔 대안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됐다면, 지금은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죠.”
단체 이름이 직장갑질119라고 해서 제보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한정되진 않는다. 임금체불은 물론 성희롱, 부당해고에 이르기까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온갖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처우를 당한 이들이 단체 문을 두드린다. 박점규는 이 가운데 얘기가 되는 내용을 모아 보도자료를 만들고 언론사에 제보하는가 하면 고용노동부에 조사와 시정을 요구한다. 신입 간호사들한테 짧은 옷을 입혀 무대 위에서 춤추게 한 한림대성심병원 장기자랑 갑질 사건, 직원들을 강제로 사내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시켜 뛰게 한 쿠쿠전자 마라톤 갑질 사건,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외주회사 카메라맨 등한테 현금이 아닌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급한 SBS 상품권 갑질 사건 등이 민낯을 드러냈다. 해당 업체를 향한 국민적 분노가 쏟아졌고 결국 시정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마침내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내용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8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19년 7월 시행되기까지 직장갑질119는 사회 변화를 이끄는 단단한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박점규도 한때는 ‘조직노동’이라 불리는 큰 조직에서 일했다.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2001년 2월26일 낮 12시30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제선 1청사 출국장 앞에 박점규 당시 민주노총 조직부장이 섰다. 1998년 5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에서 판매원으로 일을 시작한 3년차 활동가 박점규 옆엔 대우자동차 해고자 유만형씨와 황이민 대우차 공동투쟁본부 대변인이 함께했다. 이 세 명이 이름도 무시무시한 ‘김우중 체포결사대’ 대원이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김대중 정권의 대우차 폭력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고 신자유주의 반대 국제연대 투쟁을 실현하기 위해”, 또 “김우중 전 회장을 체포하기 위해” 출국한다고 밝혔다.
당시는 1997년 하반기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여파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 그 대가로 공공부문 민영화와 이를 위한 노동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쓰나미가 몰아닥치던 때다. 김우중 회장은 채권단 뒤에 숨어 대우자동차 노동자 1750여 명을 정리해고하고, 검찰 수사 결과 43조원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분식회계 한 데 이어 25조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았다. 김 회장이 프랑스에 있다는 제보를 접수한 노동계가 그를 체포하려 3명의 결사대를 보낸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12일 동안 무슨 활동을 했나.
“파리와 니스 등에서 대우차 폭력 진압의 진실과 김우중 회장의 도피를 알리는 거리 선전전을 했죠.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본부가 있는 리옹에 가선 민간으로는 처음 인터폴 관계자를 만나 ‘김 회장한테 국제수배령을 내렸다’는 한국 정부 발표가 거짓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김 회장을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프랑스 사회의 연대의식이 무척 높더군요. 정치·사회 단체들이 숙소를 제공하고 펼침막까지 써서 함께 다녔어요. 김 회장이 머물던 니스의 별장도 프랑스노총(SUD)이 조합원인 우편배달 노동자들에게 수배령을 내려 김 회장 이름으로 우편물이 들어가는 곳을 찾아 알려줬죠.”
법적 문제로 김 회장 별장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결사대 활동은 구제금융에 신음하던 나라 안팎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박점규는 2003년 민주노총에 가입한 16개 산별노조 가운데 하나인 금속노조로 자리를 옮겨, 선전홍보와 비정규직 업무를 맡았다. 기업별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 관행을 벗어나 같은 산업에서 유사한 노동을 하는 이라면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떠나 평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산별노조는 1995년 합법화한 민주노총이 당시 시대정신이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별도 노조가 모인 연맹 체제와 달리, 산별노조는 그 자체로 단일한 하나의 노조다.
당시 고민은 무엇이었나.
“한국 사회 문제의 근본은 불평등이고, 불평등의 근원은 비정규직 문제라고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비정규직이 노동하는 인구의 절반이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합니다.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죠. 노동 공약의 핵심인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하청업체 변경 때 노동조건 승계, 불법파견 확인 때 즉각 근로감독 및 정규직화 등 비정규직 관련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어요.”
2011년 10월 금속노조를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금속노조에 있을 때인 2008년 겨울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할 때였어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에쿠스를 만들던 정규직 노동자 500여 명은 다른 곳으로 발령 났는데, 사내하청 노동자 115명은 하청업체 폐업으로 모두 해고됐죠.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해고를 막지 않았어요. 전국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로 여겼죠. 한국 사회 양극화가 노동의 양극화로 이어졌는데, 막상 기업별노조 중심의 노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해 노동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어요. 희망버스와 같은 새로운 운동을 하고 싶어졌어요.”
박점규는 금속노조를 그만두기 전인 2008년부터 친한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비없세)라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불법파견 투쟁의 대표 사업장이던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 인권운동가 박래군, 송경동 시인 등 평생의 동지들이 뜻을 모았다. 비없세라는 이름도 박점규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2010년 11월 불법파견 철폐 투쟁을 벌이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5일간 벌인 공장 점거 파업에 가담했다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았다. 이때 현대차가 제기한 20억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에서 진데다 지연이자 20억원까지 모두 40억원을 다른 노동운동가 3명과 함께 물어내야 할 처지다.
2013년엔 삼성전자가 만든 텔레비전과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설치와 수리를 맡은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했다. 조합원 최종범씨가 노조 탄압에 항거해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을 땐, 열사대책위 홍보팀장을 맡아 최씨의 딸 별이 돌잔치를 기획했다. 대기업 계열사와 계약한 하청업체와 다시 개인 용역 계약을 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알리기 위해 뛰었다.
금속노조 활동 때까지만 해도 “머리띠 묶고 경찰과 부닥쳐 싸우는 운동을 주로 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운동”을 주로 하기 시작한 게 이즈음이다. 앞서 2011년엔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 고공농성을 벌인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2013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등 희망버스 기획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 사회 불평등의 근원을 향한 박점규의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은 지금의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코로나19 시기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되지 않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해고당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과 사내 복지가 필요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복지를 요구하죠. 코로나19 시대에 해고당하는 노동자는 노조로 조직화한 12%가 아니라 노조 밖 88%에 해당하는 아시아나케이오 같은 협력업체 노동자예요. 지금은 기업 안정성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 더 중요한 때입니다.”
양대 노총과 산별노조는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한다고 보는가.
“양대 노총, 특히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촛불 이후 새로 만들어진 노조들도 대부분 비정규직 노조들이죠. 그런데 직장갑질119 설문조사를 보면 지난 1년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36.8%로 정규직(4.2%)의 8.8배에 달하는 게 현실이에요. 노조 밖 노동자들을 위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노동운동판의 스타트업’ 직장갑질119가 기존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과 청년 취업난에 끊임없이 관심 갖는 배경이다. 2021년 들어 이 단체가 낸 보도자료의 제목만 봐도 ‘비정규직 10명 중 4명 직장 잃어’ ‘새해 희망 없는 20대·5인 미만 회사’ ‘코로나19 1년 비정규직 행방불명’ ‘코로나19=해고 면허증’ ‘입사에서 퇴사까지 차별·차별·차별’ 등이다.
박점규는 기존 노동운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이른바 ‘노동 대 자본’ 대립 구도 속에 노동의 권리를 찾는 것 못지않게 직장 내부 모순을 혁파하는 ‘디테일의 싸움’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장갑질119가 이뤄낸 디테일의 진전이 적잖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 이후에도 고용노동부에 요구해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기존 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한 사장과 친인척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피해자가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게 고용노동부 내부 지침을 바꾸도록 한 것도 단체의 노력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를 그만둔 노동자가 구직급여를 받도록 고용보험법을 바꿔낸 것도 직장갑질119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한 결과다. 박점규는 “법을 고치는 것 못지않게 노동부의 지침 하나를 바꾸는 게 직장인의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특히 노조 밖 88%의 노동자한테는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노조와 이주노동119올해 쉰 살을 맞은 박점규가 노동운동에서 꾸는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 권리를 확보하려면 결국 많은 불안정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묶어 세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노동자 4천여 명이 직장갑질119를 거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로 조직됐고, 사회복지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와 어린이집 교사 등 수백 명이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테면 박점규는 노조 울타리 밖에서 일하며 노조 울타리를 넓히고 고치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 2021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바로 온라인 노조, 랜선 노조의 출범이다. 직장갑질119 오픈 카톡방을 통해 모인 업종별 온라인 모임을 현재 협의체 수준에서 법적 근거가 명확한 노조로 묶는 것이다.
왜 온라인 노조인가.
“여전히 이 나라에선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10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가입률은 2.2%,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가입률은 0.1%에 불과하죠. 온라인 노조는 실명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기업별 노조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전국 어디서나 가입할 수 있어요. 직장을 옮기는 노동자도 해당 업종을 잘 벗어나지 않더라구요. 온라인 노조는 업종을 중심으로 한 노조가 될 거예요.”
어떤 업종의 온라인 노조를 기대하는가.
“현재 온라인에 어린이집교사모임(3600여 명), 사회복지사모임(600여 명), 대학원생모임(400여 명), 콜센터모임(380여 명), 병원간호사모임(300여 명) 등이 있어요. 이들이 온라인 노조로 뭉쳐 각 지부를 결성하는 방식으로 갈 것으로 예상해요.”
두 번째 목표는 ‘이주노동119’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며 갑질에 시달리면서도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직장갑질119 문을 두드리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를 위해 각 나라의 통역 서비스가 제공되는 새로운 플랫폼을 열려 한다.
“자국 언어로 쉽게 노동상담을 받으려면 통역이 중요해요. 어려운 노동법률 용어를 정확히 번역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주노동자와 통역자, 법률가, 이주노동 활동가를 연결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박점규는 2021년 2월 사표로 따르던 백기완 선생이 타계한 뒤 장례위원회 홍보위원을 맡았다. 박점규 말마따나 “백기완 선생님은 떠났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백기완, 불쌈꾼(혁명가)들이 노동해방을 향해 오늘도 싸우고 있다”.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2005년 만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위성라디오와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잘나가는 중소기업이었는데, 공장에서 일하는 300여 명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 노조를 만들어 250명 넘게 가입했는데, 업체 폐업으로 모두 쫓겨났다. 이 조합원들이 정말 대단한 게 자신들이 해고됐으면서 다른 해고노동자를 지원하는 일을 열심히 했고, 2006년 비정규직법 반대 투쟁,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등 전체 노동자, 국민의 문제에도 앞장서 싸웠다.
2008년 가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김소연과 유흥희가 소복을 입고 공장 옥상에서 60일 넘게 단식했을 때다. 옥상에 올라갔는데 뼈만 앙상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옥상 아래 컨테이너에선 기륭 조합원들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내왔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힘으로 2010년 11월1일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기륭의 연대는 사업장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운동으로 나아갔고,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들었다. 힘들고 우울한 조건에서도 밝고 신나게 싸우는 사람들. 직장갑질119 일을 하면서 힘들 때 기륭전자 조합원들을 떠올린다.
-박점규가 보낸 글
두 차례에 걸친 박점규와의 인터뷰 마무리는 모두 막걸리로 끝났다. 그의 막걸리 사랑은 유별나다. 노동운동판에서 ‘기획통’으로 손꼽히는 그와 막걸리잔을 부딪다 엮인 기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는 소속이 다른 언론사 기자 열댓 명을 모아 재능 기부 형식으로 단발성 프로젝트 매체를 여러 번 냈다. 2015년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메시지를 가슴 아프게 남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김정욱·이창근의 고공농성을 비롯해 스타케미칼 차광호의 세계 최장기 408일 고공농성 등이 벌어지는 동안 <굴뚝신문>이란 제호의 대판 신문을 세 차례 냈다. 이듬해엔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을 만들기 위해 같은 이름의 잡지를 만들어 종잣돈을 댔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선 <광장신문>을 발행해 ‘촛불’에 힘을 보탰다. 전태일 열사 서거 50년을 맞은 2020년엔 <전태일50> 신문도 냈다. 박점규는 노순택 사진작가와 함께 <한겨레21>에 기고한 글과 사진을 모은 <연장전>을 비롯해,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행본 <25일> <노동여지도> <직장 갑질에서 살아남기>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직장갑질119(사단법인) 정기후원 http://bit.ly/gabjil119, 일시후원 농협 119-119-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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