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말할 때,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유명상(37) 협동조합 청풍 대표가 그렇다. ‘재래시장에 젊은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뜻의 청풍, 이 조합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보면 그가 하는 일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청풍은 강화풍물시장에서 화덕피자집으로 시작해 지금은 게스트하우스와 커뮤니티 펍, 기념품 가게로 분화했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일종의 계열사를 3개나 운영하는 청년 장사꾼, 사업가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러나 유 대표와 청풍 조합원들이 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들은 특별히 연고도 없는 인천시 강화군에 뿌리내려 살고자 했다. 모두가 서울로 몰려들 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꿈꿨다. 장사는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반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 대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성공적인 창업을 했는지는 평가 지표가 될 수 없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강화는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시장 내 상인들의 인식이 따뜻해졌고, 지역 내 청년에게 연대와 희망이 됐다. 그저 살아남는 게 목표였던 시간을 지나 어느덧 8년차를 맞은 2021년 3월5일, 협동조합 청풍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펍 스트롱파이어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유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기획자로 일했다. 그러다 문득 회의감을 느껴 일을 멈췄다. “주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축제 등을 기획했는데 당시엔 큰 변화가 단번에 생기길 바랐다. 그렇게 균열을 만들어내려니 반작용이 있더라. 청년들이 살아갈 생태계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일회성 이벤트로 몰아넣기만 했다. 축제는 좋지만 이후 청년들이 남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지속성을 고민하던 때였다.”
유 대표는 청풍을 만들기 전, ‘협동조합의 수도’로 불리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가서 열흘간 머물렀다. 협동조합은 개인 소유가 아닌 공동 소유를 지향한다. 볼로냐는 생산, 금융, 복지, 유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협동조합을 통해 제공된다. “볼로냐는 학교 교과과정에서 협동조합 설립 방법과 정신을 배운다고 하더라. 그때 한국 사회는 협동조합은커녕 협력 자체를 가르쳐준 적이 없구나 싶었다. 대학 때 팀 프로젝트를 하지만 그 또한 다른 팀과의 경쟁이다. 호의적인 협업을 해본 적이 없고, 협력으로 이득을 낸 경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볼로냐에서 돌아온 뒤 그는 전국 여행을 계획하고 첫 여행지로 강화도를 택했다. 우연히 고른 장소지만, 돌아보면 운명이었다. 그는 강화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그대로 눌러앉았다. “마니산 아래 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같은 방을 썼던 사람과 친해졌다. 둘이서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 내 친구의 후배가 왔다. 친해진 사람에게 “시장에서 피자 팔아보지 않을래?”라고 물었는데 그는 ‘저 빡빡이는 뭐라는 거야?’라고 생각했다더라. 그런데 어느새 나랑 같이 피자 굽고 있었다.” 2013년, 강화풍물시장 육성사업단에서 공간과 식기를 지원받아 강화에서 만난 친구 두 명과 시장 내 화덕피자집을 차렸다. 우연히 만나 친해진 세 사람이지만 지역을 새롭게 바꾸고 싶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청풍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서로 도와 일하며, 똑같이 나눈다. 상하 관계도 없다. 나이에 따라 서열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서로 별명으로 부른다. 특히 불편한 점도 잘 얘기하는 ‘칼 같은’ 대화법이 청풍의 지속 비법이다. “이탈리아 남부 사람의 정 많은 성향이 우리나라 사람과 비슷한데, 북부 사람은 칼 같고 냉정하다고 하더라. 그런데 협동조합의 결과는 북부가 더 좋다고 한다. 협업에선 불편한 것도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 같다.” 청풍 조합원은 불편한 것을 잘 말하냐고 하니 “맨날 싸운다”며 그는 웃었다. “매일 불편한 점을 말하고 회의한다.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서로 조율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기에 가능하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상대가 이 이야길 안 들어줄 거라 생각하는 순간 불편한 이야기는 안 하게 된다. 불편한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협업에선 제일 중요하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정착했던 건 아니다. 시장에서 피자를 파는 게 흔치 않다는 이유로 피자를 택했지만, 요리 관련 경력이 없던 세 사람에겐 어려운 도전이었다. 시장 어머니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실패한 피자는 개밥으로 주는 시간을 겪은 뒤 완성된 피자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를 토핑으로 올린 밴댕이피자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차츰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인 2015년 겨울, 재계약을 앞두고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 내 임대 재계약을 하려면 상인회 추천서가 필요한데, 상인회는 석 달간 가게 문을 닫고 상인회가 시키는 허드렛일을 하지 않으면 추천서를 써주지 않겠다고 했다. 청풍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호소문을 올렸고, 여론이 들끓자 지방자치단체가 중재에 나섰다. 상인회는 한 임원의 말실수가 잘못 전달된 거라고 했다. 결국 청풍은 시장에 남을 수 있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오히려 사람을 얻은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지지해주고 용기를 줬다. 시장 상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상인회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결국 상인회장은 다음 선거에서 물러났고, 청풍 조합원 중 한 사람이 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단순히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인들을 모아 동아리도 만들고, 축제도 기획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피자집은 2020년 9월 문을 닫았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청풍을 떠난 조합원도 있었고, 새롭게 들어온 조합원도 있었다. 현재는 세 명의 조합원이 각각 기념품 가게, 커뮤니티 펍, 게스트하우스를 맡아 운영한다. 유 대표는 ‘땜빵’과 기획을 맡는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돈독해졌다. 존폐를 걱정하기보단 똘똘 뭉쳐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나 펍, 기념품 가게 모두 강화도로 여행 오는 손님이 많아야 하는 업종이다. 코로나19로 타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유 대표는 이런 위기를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보려 한다. 최근엔 ‘집에서 즐기는 강화도 디아이와이(DIY) 투어’를 기획했다. 3만원을 내면 예쁜 디자인의 강화도 안내 책자와 엽서, 스티커뿐 아니라 6만원 상당의 지역 내 상점 상품(마카롱, 타르트)과 강화 특산물(소창, 속노란 고구마) 등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이 상품은 청풍의 페이스북에 게시물로 올리자마자 사흘 만에 매진됐다. “지역 내 소상공인과 협업해보자는 취지였다. 주변 상점들을 섭외하는 데 열흘밖에 안 걸렸는데, 그만큼 청풍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SNS에만 올려놨을 뿐 아무 홍보도 안 했는데 다 팔렸다.”
이처럼 유 대표 그리고 청풍은 자신들만 잘 사는 것이 아닌 동네 모두가 함께 잘 살기를 원한다. 상생을 위해서는 동네 사람들을 자꾸 귀찮게 할 수 밖에 없다. 강화도 투어를 기획할테니 탐방 장소 중 하나로 참여해달라, 강화도 관련 디자인 상품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등의 제안서를 들고 찾아가는 식이다. “각자 경쟁이 아니라 서로 협력했을 때 생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역 작가들과 협력해서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 기념품숍에서 팔고, 게스트하우스에 오는 손님들에게 지역 내 가게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준다. 동네에서도 청풍에 대한 신뢰가 생겨 이젠 제안하려고 찾아가면 뭔지 들어보지도 않고 다 좋다고 해준다. ‘청풍 놈들 귀찮게 하네’ 이러면서.(웃음)”
유 대표는 잊혀가는 강화도 문화를 기록해서 남기는 작업에도 열심이다. 강화도의 대표 산업이던 소창과 화문석을 알리기 위해 사진집도 출판했다. 평생을 직물공장에서 소창을 생산해온 노부부의 삶을 인터뷰한 사진집 <무녕>, 화문석 장인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 <왕골>이 그 결과물이다. “이분들이 은퇴를 준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진으로 기록해야겠다 싶더라. 알고 지낸 사진작가가 오랜 시간 촬영했고, 내가 인터뷰했다. 사진집이 나오는 데 2년 걸렸다. 이렇게 지역 문화와 삶을 지속해서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사진집 <무녕>을 소개한 글에 ‘동네주민 유명상’은 이렇게 썼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동네가 없어지고 새로운 게 생기는 것이 일상인 곳에서 살아왔습니다. 강화에서 삶은 천천히 쌓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어렴풋이 알게 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사양되고 있는 강화 직물산업에 큰 변화를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강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이야기가 녹아들면 할아버지, 할머니, 나, 이웃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풍이 강화에서 자리를 잡자 청풍처럼 살겠다는 후배도 나타났다. 유 대표는 아직은 창업을 뒷받침할 마땅한 기반이나 안전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강화에는 산마을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서 하는 포럼에도 참여하고 협업하면서 학생들과 친해졌다. 2019년 3월 첫 졸업생이 나왔다. 이 중 세 명이 대학에 가는 대신 청풍처럼 살아보려 강화에 남겠다며 의견을 물었다. 내 대답은 남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아직 다음 세대가 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 각오가 있으면 남으라고 했다. 결국 두 명은 강화를 떠났고 나머지 한 명이 현재 청풍에서 일하는 동료다.”
청풍이 강화에서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요즘 그의 최대 화두다. “우리 조합이 더 커지기보다는 우리 같은 조합이나 팀이 지역에 많이 생겨나고 늘어나서 협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청소년이나 청년을 위한 응원 기금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실험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또 한번 협동조합의 정신을 떠올려본다. “협동조합 정신은 전체선이 아닌 공공선이라고 한다. 전체선은 더하기 문화다. 내 이웃의 수입이 0이라도 다 더해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공공선은 곱하기 문화다. 내 이웃의 수입이 0이면 모두가 다 0으로 수렴한다. 최소한 내 옆 사람, 내 이웃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살 수 있다. 이런 정신이 강화에 있으면 좋겠다.”
강화에 부는 젊은 바람, 이름 그대로 유 대표와 청풍은 잔잔히 새바람을 만들어왔다. 때로는 동네 사람들을 귀찮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재미있는 일을 벌였다. 이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꽤 싱겁지만 역시 그답다. “거대한 담론을 갖고 대단한 뭔가를 하려고 하면 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더 오래간다.”
godjimin@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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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청년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이 많은데, ‘청년’이란 단어에만 너무 환상을 갖는 것 같아요. 물고기가 많이 있는 강이라면 청년들이 알아서 낚싯대를 갖고 올 텐데, 지금은 우물에 청년들을 불러놓고 낚싯대 줄 테니까 알아서 키우라는 식이죠. 창업하면 10명 중 3명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청년들에게 단기간에 성과를 내라고 해요. 실패해도 용인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실패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어요.”
협력 “협동조합 청풍을 설립하기 전까진 협력 경험이 없었어요. 해본 적이 없으니 협력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이제 ‘협력’은 청풍의 생존 방식이 됐어요. 청년 지원 사업에서 심사받을 때 심사위원들이 물었어요. 왜 성장하려 하지 않냐고요. 더 사업을 키울 생각을 하라고요. 한국 사회의 생존 방식은 그저 성장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린 협력을 택했습니다. 이렇게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음 세대 “혁신과 변화는 단번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쌓여가면서 임계치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 변화가 우리 세대 때 안 나타날 수도 있고요. 다만 이어달리기하듯 다음 세대에 전달해줘야 해요. 다음 세대가 강화를 떠나지 않고 더욱 잘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 화두입니다.”
인터뷰하기 전, 그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든 궁금증은 ‘그래서 돈은 많이 벌었을까? 지역에서 하는 장사가 잘될까?’였다. 흔히 생각하는 청년 사업가 모습을 그리면서. 나도 지역에 내려가서 이런 일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 않겠냐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그러나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끄러워졌다. 그저 ‘성장’ ‘성과’ 따위로 사람을 재단하려 했던 내 호기심이. 인터뷰하는 중간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유명상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 “숫자로 드러낼 수 없는 변화도 의미가 있다”고.
그는 인터뷰 내내 ‘우연’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조합원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에도, 왜 강화도냐는 질문에도 말이다. ‘재밌는 기획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냐’는 물음에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라는 대답을 했다. 인터뷰이의 구체적인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 나는 그의 답변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이라고 자꾸 되물었다. 그가 부러 추상적인 대답을 하는 건 아니었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모여 오늘날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우연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우연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라고. 그 노력의 원천은 바로 진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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