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를 국제학교에서 보내고,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면서, 연애하고, 결혼한 김규진(30) 작가의 이력에서 한 가지만 빼면 그야말로 ‘엄친딸’이다. 그 한 가지는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점. 그것도 커밍아웃만 500번 이상, “숨을 쉬듯” 한 레즈비언이다. 부모, 친구, 회사에서도 커밍아웃을 하고 여자친구와의 결혼 청첩장을 회사에 제출해 결혼휴가와 경조금을 받아내고,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지상파 9시 뉴스까지 출연하더니 책 출간으로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묻는다. “자, 이제 다음에는 뭘 할 거죠?” 그는 답한다. “글쎄요…. 일단 내일 출근하겠죠?”
최근 프랑스 본사 발령으로 파리에서 지내는 김규진 작가를 3월2일 오후 4시(현지시각 오전 8시)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본사 발령이 커리어 면에서 너무 좋은 기회였고, 와이프가 흔쾌히 응원해줘서 오게 됐다”는 그는 일주일 전 파리에 도착해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2020)가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로 읽히길 바랐나요.
“동성애자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과 동시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같이 읽히길 바랐어요. 다르지 않다는 건,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지하세계에서 마약을 빨면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동성애자도 있겠죠. 그런 이성애자가 있듯이요. 동성애자 수가 정말 많고, 다들 생각보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제 책을 통해서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동성애자의 삶이 완전히 이성애자와 동일하냐 하면 그건 절대 그럴 수 없어요. 평범한 삶을 살지만, 병원 응급실에 가면 배우자의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는 게 일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그의 출간 의도는 성공적이다. 독자는 이 책에서 평범한 4인 가정의 딸로 태어나 남들이 공부할 때 공부하고 남들이 취업 준비를 할 때 취업 준비를 해서, 수많은 회사원 중 하나가 되어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성실한 납세자이자 적금과 상장지수펀드로 재테크를 하는 레즈비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고, 주택청약시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노려볼 수 없으며, 같이 살며 서로의 재산 형성에 기여해도 상속 순위에 낄 수 없고, 응급 수술 등 위급한 상황에서 법적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없다. 양가 부모를 모시고 30분마다 찍어내듯 하는 ‘공장형 결혼식’이 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남들에게 평범한 꿈인 ‘법적 결혼’이 그에게는 ‘야망’이 될 수밖에 없는 삶이다.
언론에 노출되고 책을 내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제 삶에서 회사 파트와 가정 파트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그런데 ‘운동가 겸 작가’라는 새로운 파트가 하나 생긴 느낌이에요. 이걸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새로운 생각을 알면 알수록 제가 갖지 않은 다른 소수자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장애인, 동물권 등 내가 직접 갖지 않은 소수자성이라도 그 사람들과 그 생명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도 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방향이구나 하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어요.”
그는 부모의 해외 파견으로 중국 상하이의 국제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때 알게 된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단다. “제가 레즈비언이라고 소문났지만, 학교에 인종도 다양하고 교사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기 때문에, 저를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손을 벌벌 떨면서 알코올의 힘을 빌려 겨우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커밍아웃 잘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사람들과 멀어지기도 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친구들, 부모님, 회사, 친척에게까지 커밍아웃을 하고, 이제는 처음 간 미용실 원장님에게도, 헬스 트레이너에게도 ‘남편은 없고 와이프는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모두가 그의 커밍아웃을 환대해준 것은 아니다. 가장 두려워했던 아버지는 의외로 ‘동성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며 받아줬지만, 어머니는 ‘딸은 사랑하지만 레즈비언 딸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눈동자가 흔들렸던 회사 동료도 있었고, 나이 드신 이모들은 충격을 조금 받았지만 결혼식장에 와주었다. 회사에 청첩장을 제출해 6일간의 휴가와 50만원의 경조금을 받아낸 기쁜 마음을 공유하고자 냉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한국 레즈비언인데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랑 경조금 신청 승인받은 썰 푼다!!!’ 무려 8천여 명이 소식을 공유하며 언론사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일반인이, 얼굴 까고, 실명 까고, 회사에 커밍아웃을 한다는 게, 이 네 가지가 하나하나는 평범한데, 합쳐지면 너무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미디어를 타지 않았나 싶어요.”
결혼 과정을 다 공개하면서 느낀 보람이 있나요.
“제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보고 ‘오, 나도 여자친구랑 결혼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여자친구와 결혼 결심을 하고 한국계 회사임에도 회사에 이야기해서 신혼여행 휴가와 경조금을 받았어요.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그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어요. 내가 한 일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생기니까 너무나 짜릿했죠. 주변에 결혼하는 레즈비언이 정말 많아지고, 심지어 ‘엄마가 뭘 해주면 되겠니?’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님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 정말 보람 있죠.”
여성·장애인은 자신의 소수자성을 숨길 수 없지만, 동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김으로써 차별을 피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차별당할 수 있는 커밍아웃을 할까요.
“정체성을 숨긴다고 차별받지 않는 것은, 차별받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드러내지 않아야만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차별이에요. 동성애자들은, 정말 꼭꼭 숨기려면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일이 더 힘들어지는 면이 있어요. 동성애성을 절대 숨길 수 없었다면, 차별이 훨씬 더 빨리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대하게 사회를 바꾸겠다는 목표보다 주변에 커밍아웃을 하면서 눈앞의 작은 성취를 목표로 하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큰 벽 앞에서 절망할 때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러다가 이런 세상에서 죽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 면에서도 세상은 안 변할 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 시간을 실용주의적으로 극복하게 됐어요. 이렇게 힘들어만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남들이 바꿔줘야 하는데, 내가 무언가를 하면 조금씩 바뀔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내가 한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도, ‘나는 뭐라도 했다’ ‘나는 당당하다’ 하는 성취감은 남겠죠. 이상주의자로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게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가 이렇게 매일매일의 작은 성취에 집중한 데는, 2013년 부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성의 사연이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여고 동창과 함께 40년간 살아왔던 그 여성은 동거인이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 살던 아파트 명의와 보험금을 자신의 이름으로 변경하려 했지만 동거인의 조카가 나타나면서 쫓겨났고 40년을 함께한 사람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면서 결국 투신했다. “내가 동성애자라고 세금을 덜 내는 것도 아닌데, 동성결혼이 법제화되기까지 수십 년을 참으라니, 성질이 급한 나로서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퀴어 퍼레이드 사회도 보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방송과 신문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는 물었다. “규진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그리고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신상을 공개하고 언론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냐”고. 그는 이렇게 답한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러지 못했을 거”라고. “모든 일은 내 편의를 위해서 했다”고. “내가 배우자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료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되도록, 그냥 다른 부부들처럼 살 수 있도록, 그런 삶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본인 삶의 편안함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운동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어렸을 때 활동가들을 보면, 너무 훌륭하고 멋진 사람들이지만, 삶을 다 바쳐야 하는 거 같으니까 나는 저걸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렇게까지 안 해도 조금씩 바꿀 방법이 없을까, 그런 롤모델을 만들면 사람들이 ‘오, 김규진 정도면 해볼 만한데’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했어요. 다들 변화를 만들고 성취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점점 더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이게 아주 큰 집단이 되면 개개인은 작은 일을 하더라도 집단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동료를 많이 늘리고 싶었어요.”
세상의 변화에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낙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 낙관주의는 어디에서 왔나요.
“살면서 변화를 많이 봤어요. 호주제 폐지, 낙태죄 헌법불합치 등 사람들이 노력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다만 사람들이 노력해야 세상이 바뀌니까, 내가 노력하면 동료가 많이 늘면 언젠가 바뀐다는 확신이 있어요.”
작가님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생각한 역할은 ‘오, 레즈비언이 있구나’ ‘레즈비언이 결혼하고 싶어 하구나’ 정도였어요. 우리 사회가 이것마저 안 돼 있기 때문에 이것 자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은 나 말고 다른 분도 함께해주시면 너무 좋죠.”
자신이 이뤄낸 변화에 대해 ‘레즈비언이 있다’는 걸 알리는 정도라고 겸손해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 사회에 남들이 가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 친구들을 불러 대형 결혼식장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리고, 9시 뉴스에 출연해 레즈비언의 존재를 알리고, 배우자와 함께 마일리지 가족 합산도 신청하고, 회사에 경조금과 휴가도 달라고 해보고, 기회 될 때마다 ‘동성결혼 법제화’의 마이크를 잡는다.
앞으로 동성애 인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입장이 있나요.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고요. 다양한 방향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보통 인구의 5%가 동성애자라고 하니까, 그러면 한국에선 250만 명이거든요. 250만 명이 다 같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나간다고 생각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거든요. 각자가 생각하는, 각자의 동성애 인권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고, 그런 게 조금 더 즐거운 일이면 좋겠어요. 성취감이 있고 뿌듯하고 뭔가 내가 멋있는 사람인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면서, 그런 식으로 전개하면 좋겠습니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hani.co.kr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투사
“소수자는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투사가 되기 쉬운데요. 존재가 투쟁인 삶, 그리고 투쟁해야 존재할 수 있는 삶이 녹록할 리 없죠. 어떻게 하면 나를 지키면서 싸워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도 동참하고 싶은 싸움을 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어요. 제가 찾은 하나의 방법은 주변의 작은 악들을 매일매일 조금씩 무찔러나가자는 것이네요.”
이것이 그의 책과 삶을 관통하는 핵심 전략이다. 내 일상과 생활을 지키면서 세상도 바꿀 수 있는 전략, 성실한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동성애 인권운동가가 되는 전략이다.
다른 동성애자들에게서 ‘그래도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 거 같은 절망감이 들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하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 그의 대답도 다르지 않다. “매일매일 구체적이고 작은 승리에 집중해요. 당장 거대한 악을 직접 모두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하루하루 작은 차별과 혐오와는 싸워나갈 수 있잖아요. 국가에 소송을 거는 건 무섭지만 회사에 신혼여행 휴가를 요청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작지만 값진 승리는 내 일상과 직접 맞닿아 있으니 동기부여가 되고, 변화를 즉각 느낄 수 있어 보람도 크죠.”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읽고, 나는 독후 메모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내 아이가 꼭 이 책을 읽고, 이 저자의 삶의 태도를 배웠으면 좋겠다. 머나먼 이상에 절망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일상에서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는, 그런 소소한 성취와 단단한 일상이 함께하는,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연예인 홍석천, 영화감독 김조광수 등 남성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종종 있었지만, 한국에서 레즈비언의 커밍아웃은 극히 드물다. 여성이라는 소수성과 동성애자라는 소수성이 이중으로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규진 작가는, 자신의 소수성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주류성 또한 직시했다. “저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왔고, 외국계 회사의 본사에 발령받았고, 어쨌거나 굶지 않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이 일 때문에 잘리지 않을 거라 믿는 구석도 있고…. 이런 부분이 제가 노력한 것도 있지만 운이 좋아서 그런 면도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식으로 운동할 수 있죠.” 자신이 운동할 수 있는 것도 운으로 돌리는 태도 덕분일까. 프로 커밍아웃러 김규진의 커밍아웃은 500번을 넘어 1천 번을 향해 달려갈 거 같다. “처음 언론 인터뷰를 할 때는, ‘알리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몇 군데 하고 나서는 같은 얘기를 너무 반복하면 독자가 지루할 거 같아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리 반복해도 이걸 처음 듣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레즈비언을 본 적이 없는 사회인 거죠. 그래서 이제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너무 힘들지 않은 한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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