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고병권이 쓴 글 ‘두 번째 사람 홍은전’에 따르면 홍은전(42) 작가는 “두 번째 사람”이다. 첫 번째 자리는 슬픔의 자리이다. 세상에는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 화상환자, 형제복지원 생존자 등 첫 번째 사람이 있다.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첫 번째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전해 듣는, 세 번째, 네 번째 사람으로 살아간다. 세상에는 첫 번째 사람도 많고 세 번째, 네 번째 사람도 많지만, 두 번째 사람은 드물다. 두 번째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많은 사람이 세 번째, 네 번째 자리로 도망친다.
홍은전 작가는 “제가 그 글을 보고서 아, 나는 두 번째 사람이 아니구나 했어요”라고 말했다. “첫 번째 사람이 두 번째 사람으로 변하고, 저는 그 두 번째로 변한 사람들을 만나서 쓰는 거 같아요. 지난날의 저는 두 번째 자리에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두 번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교육공동체인 ‘노들장애인야학’(노들야학)에서 13년간 교사로 일한 홍은전 작가는 현재 기록활동가로 살아가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창비, 2019)를 썼고, 화상환자들을 찾아가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온다프레스, 2018)를 펴냈고,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육성을 담은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오월의봄, 2019)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인간의 고통에서 동물의 고통까지 외연을 확장해나간 그를 3월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고통과 해방, 차별과 저항, 그가 꿈꿔온 변화와 지금 꿈꾸는 변화에 대해 물었다.
그가 많이 받는 질문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서 고통받는 이야기 듣는 거 힘들지 않나요?”다. 그의 답변은 명쾌하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싸우는 사람들이에요. 그건 굉장히 다른 거예요. 싸우는 사람들은 힘이 있어요. 이미 자기 고통을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도 생기고, 그걸 말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요. 자기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싸울 수 있거든요. 만약 그분들이 지금 고통의 한복판에 있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망망대해에 있는 사람이라면 만나더라도 제가 힘이 빠질 거 같아요. 하지만 싸우는 사람들은 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힘을 받아요.”
그래서 그는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가 ‘두 번째 사람’이 아니라 ‘두 번째 사람을 만나서 쓰는 사람’이라고 한 이유다. 차별받는 사람이 첫 번째 사람이라면, 저항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이들은 더는 슬픔의 자리에 머무는 첫 번째 사람이 아니라, 첫 번째 사람을 도와주는 두 번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항하는 사람의 매력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너무 멋있다”고 했다.
“2001년 장애인들이 처음으로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막으면서 지하철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던 그 모습을 찍은 영상은 지금 봐도 심장이 뜨거워져요. 어두운 선로에 지하철이 ‘빵’ 경적을 울리며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자, 선로를 장악한 중증장애인들의 몸이 드러났죠. 그게 되게 멋있었어요.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세상의 위선을 드러내고 세상의 위선과 정면으로 맞서는 장면이잖아요. 우리를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동정을 원하는 게 아니라, 싸울 것’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이잖아요. 저항은 차별받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싸우기로 할 때 시작되는데, 그때 싸움이 시작됐죠.”
그렇게 많은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목격했기에 생긴 고통에 대한 정의나 철학이 있을까요.
“인간의 고통이나 슬픔은 각각의 사람에게 너무나 고유하기 때문에 그걸 정의하고 추상화하는 작업은 제가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다만 저는 고통과 슬픔이 하는 일에 관심 있는 거 같아요. 고통스러운 경험, 절망적인 경험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어떤 힘이 제 관심사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이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일 때, 그 힘은 혈기왕성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23살 박경석이 행글라이더 사고를 당해 하반신마비의 장애를 입고 집에만 누워서 보내던 5년간의 시간에서 나왔을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가 발언하는 걸 보면 아, 저 사람은 비장애인인 내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가졌구나라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에너지를 보여요.” 또 16년간 집에만 갇혀 있었던 중증장애인이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탈출시키는 데 헌신하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에너지를 느낀다. 다른 활동가와 달리 장애인이 ‘나가게 해달라’고 하면 데려올 곳이 없을 때도 그 중증장애인을 외면하지 못한다. “스스로 겪었던 유폐의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자유를 만들어주고 그들의 인생을 열어준 거죠. 겪지 않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을 그분이 하셨어요. 그것도 그 사람의 고통과 절망이 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2020년 펴낸 칼럼집 <그냥, 사람>(봄날의책)은 그가 장애인, 선감학원 피해자, 화상환자, 동물권 투쟁가들을 만나면서 길어 올린 사유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출판인들이 꼽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고, 6쇄를 찍으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냥, 사람>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요.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으니 연대해주세요’라기보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고 그것이 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어요. 어린이·임산부·노인 등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회적 취약함을 가지게 되고, 또 누구나 언제든 사고를 통해 취약해질 수 있어요. 한때 취약했던 당신, 언젠가는 취약해질 당신을 위해 우리가 싸우고 있다, 우리가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있지만 그래서 비참한 게 아니라, 밑바닥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그 변화의 수혜자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의 그런 바람이 독자들의 어떤 변화로 이어졌을까요.
“인터넷에 <그냥, 사람> 리뷰가 많이 올라오는데, 그중에서 ‘뭔가 나만의 싸움을 하고 싶다’는 글이 있어요. ‘내가 장애인을 위해 뭘 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싸움을 한번 생각해보겠다’는 리뷰가 좋았어요. 누군가가 싸우는 걸 보고 거기에 영감 받는다는 게 좋았어요. 저도 글을 쓸 때 ‘연대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거든요. 제 글을 읽고 장애운동을 지지하고 돕기 위해 고민하는 것도 너무 고맙지만, 자기 자리에서 어떤 싸움을 시작하면 더 좋죠. 우리가 서로 주체가 되면 언젠가 만나게 되니까, 그렇게 서로 주체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연대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사범대 학생이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사를 준비하다 노들야학을 만났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선생님이 정말 되고 싶었어요. 임용고사가 잘못된 제도라는 걸 모두가 아는데, 다들 1·2·3학년 때는 임용고사가 잘못됐다고 하지만 4학년 때는 모드를 전환해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게 신기했어요. 어떻게 저게 되지? 저는 그게 안 되는데 선생님은 너무 되고 싶어서 ‘야학’을 검색했어요. 가장 먼저 ‘노들야학’이 나와서 오게 됐어요.” 천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사들이 있는 곳이었고, 특히 게릴라들이 넘쳐났다. 도움을 주려고 찾아간 곳에서 ‘네 도움은 필요 없고 같이 싸우러 갈 거면 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뛰었어요. 여기 뭐지, 할 만큼. 노들야학에 온 첫날 사랑에 빠져버렸죠.”
사랑에 빠졌다고요? 어떻게요? 왜요?
“완전히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를 만나서 야반도주하는 식으로 사랑에 빠졌어요. 부모도 안 보이고 기존 친구들과도 연을 다 끊고 매일 야학에서만 살고, 너무나 완벽하게. 첫날 야학에서 ‘만약 당신이 나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라는 문구를 봤어요. 그 태도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또 ‘네가 오늘 타고 온 버스도 문제고 지하철도 문제고, 네가 받은 학교 교육도 문제고 모든 게 문제야. 네가 가진 꿈이나 사랑, 우정은 너만 갖는 특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 거죠.”
그에게 배움이란, 들어와서 쌓이는 배움이 있고, 자신이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는 배움이 있는데, 노들야학은 완전히 후자였다. 노들야학은 그가 그때까지 배운 상식이 다 의미 없어지는 공간이었다. 완벽히 무너졌기에 새로운 것이 쏟아지듯 들어왔는데, 그것은 장애를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문제의 고유함을 알아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 좋고 설레었는데, 그게 바로 사랑에 빠진 거죠.”
홍은전의 해방과 장애인의 해방이 어떻게 연결됐나요.
“노들야학에 가서 해방감을 많이 느꼈어요. 저는 경쟁을 정말 싫어했거든요. 경쟁을 싫어한다는 건, 누구를 이기는 것도 싫어하지만 누구에게 지는 것도 싫어한다는 말이에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세상은 반드시 지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시스템 자체에 들어가기가 싫은 거죠. 노들야학에 왔더니 경쟁이 전혀 없고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세계인 거예요. 그야말로 중력이 다른 세계로 들어간 거였어요. 중력이 다른 세계에 가면 다른 근육을 쓰게 되죠. 걷는 것도 이상해지고 숨 쉬는 것도 달라지고 전부 다 새로 배워야 해요. 이전 세계와는 말이 안 통하죠.
자본주의 경쟁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철저히 버려지는 장애인들이 있다면 다른 쪽 끝에는 신체적으로 뛰어나고 지적인 성과를 이루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비장애인의 세계는 속도, 경쟁, 효율성에 지배당해요.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달리지 않을 방법이 없어요. 제가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달려야 했던 것처럼. 그게 비장애인에게 기대되는 방식이자 억압이죠.”
변화를 바꾸는 것은 상상력그가 노들야학을 하면서 야학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아버지와의 갈등이었다. 그가 ‘노들 이전의 세계와 노들 이후의 세계가 달라졌다’고 말할 때, 노들 이전의 세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담고 있던 존재가 ‘아버지’였단다. 그가 이 질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할 때 가장 강력하게 덜미를 잡던 사람, 그래서 그를 가장 강력하게 억압하던 사람, 그래서 그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 그래서 계속 싸워야 했던 사람이 아버지였다.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넘어올 때, 이동권 투쟁도 그의 싸움이었지만, 아버지가 그에게 기대했던 삶에서 벗어나는 싸움도 굉장히 중요한 싸움이었다. “저도 저의 저항과 싸움을 한 거죠. 그렇게 비장애인에게 기대하는 방식과 장애인이 버려지는 방식, 이 둘의 억압은 긴밀히 연결돼 있죠.”
세상의 변화를 낙관하나요.
“저는 경험적으로 세상을 낙관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세상은 바뀐다’가 아니라 ‘싸우는 만큼 바뀐다’라고 생각해요. 1만큼 싸우면 1만큼 바뀌고 100만큼 싸우면 100만큼 바뀌어요. 노들야학의 경험이 알려준 거죠. 세상에서 가장 힘이 있을 거 같은 장애인들이 만들어온 변화를 경험했으니까요.”
그에게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이다. 아무도 장애인 이동권을 생각하지 못했을 때,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는 구호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발명해내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탈시설 주거권, 장애등급제 폐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런 상상력을 발휘해 세상을 바꿔온 사람이 아니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을 믿어줌으로써 세상을 바꿔온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제 옆에는 별로 믿기지 않는 말을 되게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박경석 같은 사람이죠. ‘이제부터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싸울 거야’라고 그가 말할 때, 저는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라고 생각하지만, 그를 제가 믿어주고 그들 옆에 같이 서주고 그들이 깃발을 들 때 같이 들어주면 언젠가는 그런 믿기지 않는 세상에 제가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돼요.”
믿기지 않는 구호, 믿기지 않는 상상을 믿어줄 때 필요한 게 ‘용기’다. 그것이 홍은전 작가가 내어온 용기였다.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사람과 그 상상을 믿어주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축이 돌아가면서 변화를 이끌어낸다.
앞으로 꿈꾸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지금 동물권에 꽂혀 있어요.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구조를 좀 새롭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간이 이익이나 이윤을 위해 너무나 무자비하고 잔혹하게 동물을 착취하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르게 바라보고, 이 관계가 잘못됐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에 기여하고 싶어요. 지금은 장애인 활동가들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데, 앞으로는 동물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요.”
글 김아리 자유기고가,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공동체
“저를 변화시킨 것은 노들야학, 기록활동 동료들, 동물권단체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우리 집 고양이입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공동체라는 거예요. 고양이는 가족공동체고요. 그래서 저를 변화시킨 건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어느 것도 저 혼자 힘으로 한 게 없어요. 제가 세상을 배운 것이 다 그들의 통로를 통해서죠.”
특히 노들야학 공동체는 ‘다르게 관계 맺음’을 통해 차별받는 사람을 저항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꽃동네’ 같은 시설에서 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고, 비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이 관계는 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들야학은 첫 번째 사람들이 또 다른 첫 번째 사람을 만나서 두 번째 사람이 되어주는 관계를 계속 맺는 곳이다. 서로 힘을 주고 위로하고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을 배우고 싸워보자고 말하면서 사회와 다르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가족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세상과 싸울 수 있겠어요?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 세상과 싸워보자고 하면 믿지 않아요. 하지만 공동체 안에선 굉장히 빠르게 배워요. 노들 밖에서는 ‘저항’이란 게 정말 어렵고 말도 안 되는 얼토당토않은 것인데, 노들의 문화 안에 있으면 저항이란 걸 쉽게 받아들이죠.” 그에게 변화란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상상력’이었고 용기란 ‘그 상상력을 믿어주는 것’이었다면, 공동체란 ‘더 쉽게 용기를 내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동성애자가 동성애인권운동을 하고 장애인이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면 그에게 “왜 그런 운동을 하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애자가 동성애인권운동을 하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면 “왜 그런 활동을 하나요? 그 운동이 당신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를 묻게 된다.
홍은전 작가는 비장애인으로 장애인인권운동의 한복판에 서고,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화상환자가 아니지만 화상환자를 만나러 다니고, 국가폭력 피해자가 아니지만 선감학원 생존자와 형제복지원 생존자를 찾아다니고, 동물이 아니지만 ‘동물권’에 온 관심을 쏟는다. 그를 만나러 갈 때, 그래서 가장 궁금한 질문은 이거였다. 비당사자가 당사자를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니라서 느낄 수밖에 없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었을까? 당사자가 아니라서 피할 수 없었던 괴리감과 혼란, 그리고 실수는 없었을까?
그는 서로가 다르다는 걸 알게 돼서 좋았다고 답했다. “위치가 다르면 전혀 다르게 감각하잖아요. 서로 너무 다르니까 서로를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해요.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 서로를 어떻게 오해하는지, 서로 어떻게 실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실수로부터 배우는지 등등이 중요해서 괴리감이 싫지는 않았어요. 실수하면 만회하면 되고 실수를 통해 배우면 되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서로를 만나서 알아가면 그들은 더는 장애인, 화상환자로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계속 만나면 그냥 사람으로 만나게 돼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사회 밖으로 많이 나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들이 ‘그냥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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