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이도 별일 없이 산다.”(<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슬로비, 2019)
쓰레기가 주목받을수록 같이 뜨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19로 일회용 플라스틱 남용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호명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쓰레기 덕질’을 해온,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 고금숙(43) 알맹상점 공동대표(이하 직함 생략)다. 그가 공동 운영하는 알맹상점은 알맹이만 취하고 (곧 쓰레기가 될) 껍데기는 취급하지 않는다. 이곳은 ‘쓰레기 대란’ 사회에서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선도하는 ‘힙한 곳’이 됐다.
봄비가 흠뻑 쏟아진 3월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알맹상점은 고요했다. 평소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2030 세대를 비롯해 ‘제로 웨이스트 실천러’들로 붐볐지만 이날은 달랐다. 공휴일이어서가 아니라 알맹상점의 휴무일인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빨간 모자를 쓰고, 회색 숄더백을 멘 고금숙이 미소 띤 얼굴로 나타났다. 우산을 받쳐 들고 빗길을 헤쳐 집에서 걸어오는 길이었다. 공휴일에는 안 쉬냐고 물으니 고금숙은 “공휴일 다 챙겨가면서 쉬면 장사 못한다”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1978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고금숙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2018년부터 시민단체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에서 주 3일 반상근 활동을 하며 알맹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전엔 여성환경연대 활동가(2007~2017년)로 일했다. 2021년 2월 카카오가 만든 사회공헌재단 ‘카카오임팩트’가 선정한 사회혁신가 11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고금숙은 ‘어택’(기업에 플라스틱 포장재 절감 등을 요구하는 시민 직접행동)하는 활동가다. 2018년 영국 테스코 매장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퍼져나간 ‘플라스틱 어택’을 본떴다. 그가 최근 꽂힌 것은 ‘화장품 어택’이다. 그는 녹색연합, 여성환경연대, <매거진 쓸(SSSSL)>(제로 웨이스트 삶을 전하는 매거진), 전국 제로 웨이스트숍 등과 공동으로 ‘#야너두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화장품 용기를 수거하고, 온라인 서명을 받는다. 3월24일부터 제조업체는 상품 용기의 재활용 가능 정도에 따라 ‘재활용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 4단계로 등급을 평가받고, 그 등급을 용기 겉면에 표시해야 한다(2018년 자원재활용법 개정에 따른 ‘재활용 등급제’ 시행). ‘어려움’ 등급을 받은 기업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이 할증되고, ‘최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은 분담금을 받는다. 그런데 화장품 업계는 일부 화장품 용기를 기업이 회수하기로 하고 ‘재활용 어려움’을 제품에 표시하지 않도록 면제받았다.
이에 고금숙 등은 전국 86곳의 제로 웨이스트 상점, 사회복지관, 약국 등에서 8천 개 이상의 화장품 용기를 수거했다. 이날 알맹상점 마당에도 수거된 화장품 용기 더미가 천막에 덮여 세찬 빗줄기를 맞고 있었다. “화장품 용기 90% 이상이 재활용되지 않아요. 그런데 왜 화장품 회사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면제받아야 하죠?” 고금숙 등은 수거된 용기를 회사별로 분류해 전달하고 해당 회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다. “예쁜 쓰레기는 거부한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모아줬으니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해보라. 그 결과를 공개하라. 그러나 재활용이 힘들면 애초에 화장품 용기를 제작할 때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로 바꿔라. 용기 재활용과 화장품 리필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라.”
고금숙은 앞서 비슷한 ‘어택’으로 변화를 일군 경험이 있다. 2018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플러스에서 ‘플라스틱 어택’을 했다. 온라인을 통해 모인 40여 명의 ‘어태커’가 각자 필요한 장을 보고 같은 시각에 계산한 뒤 플라스틱, 비닐 포장재를 벗겨 모았다. 이들은 손에 ‘노 플라스틱’을 적는 등 퍼포먼스도 했다. 과대 포장의 심각성과 인체에 해롭고 재활용되지 않는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2019년엔 70여 명의 시민과 함께 서울 홍익대 인근 길거리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줍는 일명 ‘줍깅’과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 캠페인을 벌였다. 이러한 노력은 여론과 정부를 움직였다. 2021년 1월부터 과대포장을 줄이는 재포장 금지제도가 시행됐고, 2022년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작된다. 그전에도 고금숙은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이슈화, 화장품 미세플라스틱 금지법 개정 등의 성과를 일궜다. 고금숙은 “가정에서 쓰레기 분리배출을 착실하게 하는 등 동글동글 착한 일만 해서는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사회운동은 모가 나 있어야 하고 사회를 불편하게 해야 바뀐다”고 말했다.
“내 고무장갑은 일회용품 없이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메시지다.”(<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고금숙 등 공저, 2021)
고금숙은 집요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는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치러졌다. 정부는 투표하러 온 유권자에게 일회용 비닐장갑을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했다. ‘쓰레기 덕후’들은 비닐장갑 한 장의 두께를 0.02㎜로 계산하면 선거를 통해 버려지는 일회용 비닐장갑이 63빌딩 7개 높이와 같다며 개인 장갑을 사용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금숙은 사전투표에서 쓰레기 덕후들의 자기 장갑 사용 실패 경험을 모니터링했다. 그는 언뜻 보면 의료용으로 보이는 아이보리색 생고무 장갑을 끼고 투표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집에서 설거지할 때 그 장갑을 계속 사용했다(<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호모 쓰레기쿠스’로서의 주도면밀함이 드러나는 일화다.
이러한 그의 면모는 2020년 6월 개점한 알맹상점 운영에서도 발휘된다. 알맹상점에서 판매하는 400여 종의 친환경 제품을 들여오는 과정은 업체들과 ‘밀당’의 연속이다. 그는 현재 고체치약(한 번에 한 알씩 쓰는 동그란 알약 모양의 고체 형태 치약)을 낱개로 파는 방법을 찾는 데 부심하고 있다. 고체치약은 판매업체에서 작은 스테인리스통에 10개, 25개씩 넣고 종이로 포장해서 판매한다. 고금숙은 한 통이 아니라 포장재 없이 알맹이만 한 알씩 팔 수 있기를 원한다. “몇 해 전 방문한 독일에서는 커다란 유리병에 고체치약을 1만 개씩 넣어놓고 손님들이 핀셋으로 한 개씩 집어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게 해놨더라고요. 현재 국내에서 고체치약을 만드는 회사도 플라스틱을 안 쓰려고 최선을 다하는 업체예요. 하지만 알맹상점은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정말 알맹이만 원해요. 제도적 문제와 습기에 약하다는 문제 등을 검토하면서 낱개로 제공해줄 업체를 뚫고 있는 상황이에요.”
실리콘·스테인리스 재질 빨대는 먼지와 스크래치 때문에 죄다 낱개 비닐 포장돼 있다. 고금숙은 “먼지·스크래치로 인한 손실은 다 우리가 떠안을 테니 처음부터 비닐 포장하지 말고 상자에 담아서 보내달라는 요청을 업체에 한다. 하지만 개별 포장이 제조공장의 ‘디폴트값’(초기에 정한 설정)이라 이걸 바꿔주는 공장을 찾고 협상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알맹상점 오픈 초기에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가 사업성을 이유로 100~200ℓ 단위로만 공급해줄 수 있다고 할 때 2~5ℓ 적은 용량도 공급해주는 아로마티카 같은 반가운 업체가 나타나기도 했다. “‘제로 웨이스트 생태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러한 기업들 덕분에 알맹상점 같은 가게가 생길 수 있는 거죠. 최근 이런 기업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 기업들은 유통 단계부터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알맹상점 같은 제로 웨이스트 소매상점이 물건을 들여놓고 팔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줘 좋습니다.”
문득 호모 쓰레기쿠스의 소지품이 궁금했다. 그의 숄더백 속 ‘에코 소지품’을 보여줄 수 있을지 조심스레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응해줬다. 숄더백에서는 텀블러, 아기 약병에 담긴 리필 로션, 대나무 칫솔, 천으로 감긴 스테인리스 숟가락·젓가락, 천 장바구니, 납작하게 접히는 플라스틱 용기, 빗물 제거 극세사 우산 파우치 등이 줄줄이 나왔다.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다운 철두철미한 소지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면 가방이 무겁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무겁다. 이런 무거움을 사회가 좀 덜어주면 좋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 혼자 ‘에코 에코’ 해서 무슨 재민겨.”(<망원동 에코 하우스>, 이후, 2015)
고금숙은 연대하는 활동가다. 그는 2월22일 영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온라인 상영회를 열었다. 이 영화는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점을 갈파한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쓴 같은 제목의 책을 영상화한 다큐멘터리다. 고금숙은 이 상영회를 하면서 ‘희망 뚜벅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후원금을 모금했고, 230명이 참여해 모은 후원금을 후원계좌로 송금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해고자인 김진숙 지도위원은 “복직 없이 정년 없다”며 부산부터 청와대 앞까지 뚜벅이로 걸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닌 김 지도위원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업은 제러미 리프킨이 <글로벌 그린 뉴딜>에서 말한 ‘좌초 산업’(화석연료와 밀접하게 결합된 모든 산업.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적인 에너지전환에 따라 저무는 산업)이라고 봐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린 뉴딜’을 말할 때 노동자 이야기는 잘 안 나와요. 산업 체계가 저탄소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재취업이 안 되고 희생당하는 사람은 말단에 있는 노동자가 될 게 불 보듯 뻔한데 말이에요.”
김 지도위원에게 후원한 것은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도 있지만, 이 전환의 시대에 노동자 이슈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탄소자본주의와 환경문제가 사실상 노동문제와 별개가 아니라 맞닿아 있고, 연대하며 함께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어요.” 이 대목에서 고금숙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했다. 평소 구체적인 일상을 바꾸는 ‘소문자’ 활동을 중시하는 고금숙이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대문자’ 이슈이더라도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 충분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내비친 것으로 읽혔다.
고금숙은 쓰레기가 가난한 이들에게 이어지는 문제도 언급했다. 그가 최근 망원동 ‘알짜들’(알맹이만 원하는 사람들)과의 세미나에서 함께 읽었다는 <가난의 문법>(푸른숲, 2020)이라는 책에는 “재활용품 수집이란 여느 도시에나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문제적인 이유는 바로 이 일을 하는 이들이 ‘노인’이라는 데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은이의 말처럼 쓰레기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골목에서 폐지 줍는 이는 가난한 노인이고,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주노동자다. 고금숙은 “폐지 줍는 분들에게 사회가 공짜 노동을 시키고 있다. 이분들이 안 계시면 나라가 세금으로 그 쓰레기를 다 처리해야 한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상황이다. 다른 체계를 만들어낼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구 생태계 건강에 최대의 적인 시장 근본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열린책들, 2016)
고금숙은 ‘슬로 라이프’를 추구한다. 그는 알맹상점이 ‘느린 가게’라고 말한다. “다른 가게들은 필요한 물건만 사고 오래 걸려도 10분 이내에는 나오죠. 그런데 알맹상점은 길게는 2시간씩 있는 분도 있어요. 날씨 좋은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꽉 차서 명품 매장처럼 문을 닫고 공간 여유가 생길 때까지 손님을 한시적으로 안 받는 경우도 있어요.”
알맹상점에서는 리필할 병을 고르고, 살균·소독하고, 무게 재고, 화장품·세제 등 내용물을 펌프질 해서 넣고 하면 줄잡아 20분 이상 걸린다. 친환경 제품과 자원순환 등에 대한 설명이 많이 필요하고, 가게 자체가 동네 커뮤니티 기능도 한다. 그러다보니 손님 회전율이 낮다. 공휴일에도 쉬지 못할 정도로 일반 자영업자와 다름없이 일하지만, 한편으로 환경에 대한 ‘운동성’ 없이는 운영하기 힘들다.
그의 이야기는 최근 잇단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로 옮겨갔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속도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빠른 배송 서비스에 더해 새벽 배송까지. 이용자는 편리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 속도 사회의 압력을 택배노동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린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이니까요. 한국 사회의 속도는 굉장히 빨라서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뒤처져요. 사회는 이들을 ‘루저’라 하고 그냥 쳐내고 가죠. 이런 사회는 개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해요. 결국 이 속도대로 살아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환경운동은 결국 그런 속도를 거스르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10년 전에 이미 관련 행동을 했다. 고금숙과 10여 명의 시민은 2011년 서울 상암동 홈플러스에 파자마 차림으로 들어가 바닥에 드러눕는 플래시몹을 했다. 당시 24시간 운영하는 대형마트에서 야간 노동자의 수명 단축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24시간 속도 사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이듬해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돼 대형마트는 밤에 문을 닫게 됐고, 의무휴업일도 지정되는 등 변화가 따라왔다.
다음 변화는 다양한 인프라 모델 개발“문제는 (탄소 제로 경제에 필요한 스마트 그린) 인프라야, 바보야!”(<글로벌 그린 뉴딜>, 민음사, 2020)
고금숙은 글을 쓰는 활동가다. 고금숙은 자신의 환경운동과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망원동 에코 하우스>(2015),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2019) 등 2권의 책을 썼다. 2021년 2월에는 코로나19가 던진 과제에 대해 여러 저자와 함께 쓴 책(<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도 나왔다. 20년 전 대학생 때는 <한겨레신문>의 ‘하니 리포터’로 연속 기고도 했다. 그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활동하는 사람은 자기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글쓰기 작업을 환경운동 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고금숙은 알맹상점 공동대표 2명과 함께 2021년 하반기에 한 권의 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환경 이슈를 업으로 삼아 생계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공감대를 확장한 내용을 책에 담으려고 해요. 그런 모델을 우리가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셀프 그린 뉴딜’이라 부르죠. 하하.”
고금숙 등이 출연하는 <쓰레기덕후 소셜클럽>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2021년 하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알맹상점 사무실을 나눠 쓰는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유혜민씨가 촬영 중이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변화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만들어냈고, 지금도 변화의 선두에 서 있는 고금숙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체인저로서 무엇을 바꾸고 싶나?’ 그는 말한다. “일회용 사회를 대체할 ‘재사용 인프라’를 까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일회용이 디폴트값이라 그걸 거스르는 사람이 요구하고 미안해하는 상황이에요. 텀블러 등 재사용 용품을 손쉽게 대여받을 수 있고, 또 빨대 등 일회용품을 함부로 제공하면 벌금을 물게 하는 등 다양한 인프라 모델을 개발하고 싶어요. 그래서 재사용 문화가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글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사람
고금숙은 자신이 환경운동가로 활동을 지속할 수 있고, 혁신가로 여겨지게 된 배경을 ‘사람’에게서 찾았다. “제가 환경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주변에서 같이하는 사람들(시민단체 활동가들, 알짜들 등)의 지지와 응원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사람들과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는 작은 승리로 이어졌고요. 이런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운동의 가장 큰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것이 감동으로 남아 계속 환경운동가로 남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현재 알맹상점을 공동 운영하는 양래교, 이주은씨도 ‘알짜 2기’로 만난 이들로 ‘덕업일치’에 의기투합해 알맹상점을 함께 오픈했다. 고금숙은 알짜 1기이자 알짜모임 운영 주체이고, 현재 3기가 운영되고 있다.
‘환경 더듬이’ ‘쓰레기 민감성’ 등이 남다르게 발달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고금숙은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한다. 10대 시절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고, “환경문제나 시민운동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여성주의 교지 만들기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에코페미니즘을 접했다. 거기서 “멋있고, 있어 보이는 말과 행동을 하는 여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달라졌던 것 같다”고 했다. 29살에 여성환경연대 활동가가 되면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8시간씩 꼬박 11년을 환경운동으로 먹고살다보니 환경 이슈 관련 근육이 발달하고 그 감각이 뾰족하게 벼려진 것 같아요.” 고금숙을 바꾼 것은 시종일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고금숙은 경쾌했다. 목소리 톤은 높았다. 말은 다소 빠른 편이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손짓과 목소리엔 활력이 담겼다. 그를 만나기 전 유튜브에서 그의 인터뷰와 강연 영상들을 챙겨봤다. 유쾌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싶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그대로였다. 인터뷰 시간은 예정된 2시간을 갑절 가까이 훌쩍 넘겼다. 충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 분주한 고금숙의 스케줄을 고려할 때 휴일에 인터뷰하길 잘했다 싶었다. 알맹상점 운영과 망원시장에서의 ‘용기내 캠페인’ 활동 등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지면 제약으로 다 담지 못해 아쉽다.
고금숙은 다음 ‘덕업일치’ 아이템으로 ‘제로 웨이스트 식품관’을 만들려고 “알짜들과 작당 모의 중”이다. 알맹상점의 식품 버전이다. 고금숙은 “통 없이 소스류, 마요네즈, 발사믹 등 알맹이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샐러리처럼 손질된 채소류, 포장을 최소화한 밀키트 등 채식 지향의 식품 제로 웨이스트숍을 고민한다”고 했다. 일을 잘 벌이고, 과정은 유쾌하게, 결말은 야무지게 꼭지를 따는 모습을 보여준 그의 다음 ‘작품’도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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