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소풍으로 또는 휴일에 놀러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나들이를 마치면 저녁으로 고기 요리를 먹던 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언니가 ‘페스코 채식’(육류는 먹지 않고 유제품과 어패류는 먹는 것)을 시작했다. 언니는 학교에서 동물이 공장식 축산농가에서 길러진 뒤 도살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았다고 했다.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거꾸로 매달린 닭의 목이 기계에 들어가 툭, 툭 잘렸다고 했다.
처음으로 ‘동물권’을 생각해봤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주변에 ‘비건’(고기·우유·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채식주의자)이란 정체성을 말하고 실천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수업 중에도 영상으로 도살장과 동물원에서 동물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봤다. 그럼에도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선뜻 ‘채식하겠다’고 선언하지 못했다. 동물의 비참한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길 일삼아 죄책감이 들었다. 동물 해방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동물+해방+물결이라니.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단체 이름 그대로 그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었다. 고기를 끊을 수 없는 내가 가진 죄책감과 부채감을 통렬하게 끄집어낼 것 같았다. 두려웠다. 그렇지만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그 문제, 동물의 고통을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지난 3월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근처 동물해방물결 사무실에서 이지연(29) 대표를 만났다. 봄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입구에서 나를 맞아준 그를 따라 들어간 사무실에는 온기가 돌았다. 시선을 휘어잡는 건 사무실 한구석에 놓인 쇠창살 우리였다. 얼추 봐도 많은 수의 강아지 인형이 우리 안에 빈틈없이 가득 채워졌다. 그는 이 조형물을 1t 트럭에 실어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악당 트럭’이라고 했다. ‘이 개들은 도살장으로 실려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에 실제 도살장으로 향하는 개들의 사진이 실린 펼침막을 트럭에 내걸었다고 한다. 차에 달린 스피커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도심에 울려퍼지는 장면을 상상해봤다.
그가 공동대표를 맡은 동물해방물결은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종 차별 철폐와 동물 해방을 목표로 삼는 비영리단체다. 2017년 11월 출범한 동물해방물결은 국내 동물권리보호단체 중 급진적인 쪽에 속한다. 국제동물권단체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Last Chance for Animals)과 연대한다. 고통받는 동물의 실상을 조사해 알리고, 동물성 제품을 만들지도 팔지도 사지도 말자는 ‘비거니즘’을 확산하며, 동물을 착취하는 산업과 제도를 없애는 데 앞장선다. 인종·민족·국가·성별·계급 등에 따른 차별에서 인간을 해방해야 하는 것처럼, 동물도 종 차별에서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도 인간처럼 지각력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대표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동물의 숨결을 느껴왔을 터이다. 그건 어떤 느낌일까? 동물과 인간이 정말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머뭇거림 없이 돼지 이야기를 꺼냈다.
“돼지는 청결한 동물이에요. ‘군사’(群飼)라고 한 방에 열 몇 정도의 돼지를 함께 키워요. 그런데 그 돼지들이 똥을 누는 장소가 암묵적인 규칙으로 정해져 있대요. ‘여기다 똥 싸.’ (웃음) 이렇게 서로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되게, 찡한 거예요. 상상하던 돼지 모습과 정말 달랐어요. 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돼지도 똑같구나 생각했어요. 동물이 매 맞고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그런데 그런 느낌을 넘어, ‘얘도 나랑 동등하다’ 그런 걸 경험하는 순간을 많은 분들이 가지면 좋겠어요.”
그동안 동정받아 마땅한 동물을 숱하게 봤으면서도 정작 운 적은 딱 한 번이었는데, 그때도 돼지였다. 어느 날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향하는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점점 멀어지는 돼지를 보며 그는 ‘저 친구가 죽으러 가는구나’ 실감했다고 한다. 무리끼리 규칙을 정해 배변 활동을 하고, 합당치 않은 대우를 받는 데 분노하는 존재, 잘 울지 않는 사람도 울게 하는 존재. 그들이 지닌 동물성과 우리가 지닌 인간성이 뭐가 다르냐고 그는 물었다.
나는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동물을 만난 곳은 대형 놀이공원에서 동물을 방사해 키우는 사파리 형식의 동물원이었다. 안전한 환경에서 동물을 ‘보호’하면 안 되나? 동물원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종 보전 기능, 교육적 효과 등이 있지 않나? 이 대표는 “인공 자연물은 사람들 눈에 좋아 보이는 거지 동물에게 의미가 있지 않다”고 했다. “인공 시설물에서 사는 동물은 야생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을 행동을 해요. ‘동물쇼’는 (사육사가) 먹이를 던져주니까 하는 거죠. 멸종동물 개체수를 확보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종족 보존이라는 목표 때문에 인간이 특정 시설에서 태어나 그 시설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굉장히 불공평한 일 아닐까요?”
그는 예전에 벨루가(흰돌고래)를 보러 전남 여수엑스포를 방문한 기억을 들려줬다. 많은 사람이 벨루가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벨루가를 특히 좋아하는 나도 당시 신문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서 헤엄치는 벨루가 사진을 보면서 ‘직접 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벨루가를 봤지만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벨루가를 보기 위해 기다렸다’는 단편적 상황 기억뿐이라고 했다. 그토록 고대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벨루가를 봤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반면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바다에서 마주한 돌고래떼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동물원에서 만난 동물과의 만남이 허무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물원이 동물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내에서의 번식이 종 보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키워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아니잖아요? 동물원을 없애지 말자는 건 인간의 욕심일 뿐이에요. 동물원은 구조시설, 비영리시설로 거듭나야 해요.”
그가 처음 동물해방물결을 만든 4년 전만 해도 동물권은 좀 낯선 개념이었다. 4년여 동안 수많은 활동가의 노력을 바탕으로, 현재는 ‘고통을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란 문장이 비교적 많이 친숙해졌다. 이 대표와 ‘나리님’ 두 상근자로 굴러가던 동물해방물결은 지금은 상근자 3명, 비상근자 3명이 꾸려간다. 동물해방물결이 조금씩 성장해온 데는 현장 방문과 세밀한 자료 수집, 효과적인 고발 방법 등을 계속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동물해방물결의 첫 번째 사명은 착취받는 동물의 현실을 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공감을 받는 캠페인 방식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식용 개 농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11‘명’의 사체를 가져와서 그냥 광화문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꽃상여에 태워 장례식을 치르는 ‘복날 추모행동’을 했어요(2018년 7월). 국회가 ‘개 도살 금지’ 법안을 상정해주지 않은 것에 항의하느라 국회의사당 돔에 ‘개 도살 금지’라고 조명을 쏘아서 많이 이슈화됐지요(2018년 11월). 동물이 지각 있는 존재라는 것이 당위로 여겨지지 않으니까 현장 자료가 많이 쌓여야 해요. 그래서 요즘은 현장에 많이 치중하면서 어떻게 하면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현장에 많이 치중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동물 학대를 자행하는 불법 업소를 고발하려면 적절한 시기를 맞추려 오랜 시간 끈질기게 기다려야 하고,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 곳을 몸으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 육체적으로도 고된 일이지만 많은 활동가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 들어가면 되도록 빨리 사진과 영상을 찍어야 하기에 동물의 처참한 모습에 충격받고 감정을 곱씹을 겨를이 없는데, 나중에 사무실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충격받게 된다. 잔인한 장면이 낱낱이 기록된 자료는 동물을 사랑하고 고통에 공감하는 활동가들의 가슴을 파고들며 끝끝내 괴롭힌다. 몸이 부서져라 아무리 현장을 누벼도, 이 현장의 수가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것도 절망적이다.
“식용 목적의 개를 파는 경매장의 실태를 세상에 드러냈어요. 이후 김포에 있는 경매장 하나가 없어졌지요.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개 경매장이 있어요. 경매장에 개를 팔러 오는 농장주, 개를 끌고 가는 도살자, 개를 죽이는 도살장… 엄청 많아요. 가고 싶은 현장은 많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요만큼’이라는 걸 견디면서 살아야 해요.”
그는 이 대목에서 잠깐 침묵하다 다시 이어갔다. “그래도 계속하다보면, 할 수 있는 만큼씩. 안주하기보다는 조금씩 움직이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냥 조금씩 움직이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2019년 동물해방물결 창립 3년째 ‘번아웃’을 겪으면서부터다. 열심히 활동해서 이슈를 띄워 제도화로 가는 본궤도에 올린 듯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2018년 국회를 설득해 임의도살금지법이 발의됐지만, 법안 발의자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가 아니라서 그런지 농해수위 소위 통과도 못해보고 그냥 묻혀버렸다. 동물권을 위한 정당 ‘동물당’도 구상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활동 하나하나의 ‘성공’에 비해 동물의 실제 삶이 나아지는 ‘성공’까지 남은 길이 너무 멀었다.
“동물을 위한 일이라지만 나도 한계가 있는데, 내가 너무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만둬야 하나. 그런데 이 이유들이 그만둬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이 대표는 내 마음속에 께름칙하게 남아 있던 문제를 짚어냈다. 동물이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지각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면, 생명의 개별적 권리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나면, 인간의 일상을 향유하기 위해 동물을 착취하는 그 모든 일과 거리를 둬야 한다.
“동물 개체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해요. 비건이 되는 것이죠.” 과연 동물의 피와 살과 가죽과 기름과 내장이 없어도 살 수 있을까? “그런 거 없어도 인간은 살 수 있어요!” 이 대표는 단호했다.
그는 비거니즘의 성공은 신념 있는 사람들의 꾸준한 설득에 달렸다고 봤다. 활동가란 직업은 결국 설득하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이 대표는 인터뷰 전날에도 음성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클럽하우스’에서 비건의 세계로 오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올여름이 오기 전에 비건·동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 계획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동물당을 창당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2021년 예정된 ‘동물권행진’에 나 같은 청소년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와주길 바랐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동물을 ‘마리’로 세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돼지 열 ‘마리’가 아니라 열 ‘명’이었다.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언어도 달리 쓰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왜 굳이 사람과 동물, 구분하냐는 거예요.” 그는 동물 수를 ‘명’으로 세는 것처럼 동물의 죽음도 ‘폐사’ 대신 ‘사망’ 또는 ‘죽음’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동물차별적 언어를 많이 써요. 예를 들어 ‘꿩 먹고 알 먹고’ 이런 거 생각해봐요. 꿩 먹고 알 먹으면 안 되죠. (웃음) 일거양득으로 바꿔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즘에서도 ‘며느리’ ‘집사람’ 이런 말을 쓰지 말자고 하잖아요. 언어가 인식을 규정하니까 그런 언어를 고쳐나가려고 하죠.”
글 신채윤 고2 학생·칼럼 ‘노랑클로버’ 필자,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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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이지연 대표가 동물권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지역의 동물원에서 만난 호랑이였다. 더러운 축사에서 비좁게 살고 있는 토끼·햄스터 같은 작은 동물 우리를 지난 뒤 콘크리트 바닥에 혼자 누워 있는 호랑이를 만났다. “딱 보자마자 호랑이가 불행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 불행이 내 몸에 전해졌어요. 사육사가 생닭을 먹으라고 던져줬는데 호랑이는 아랑곳 않고 사육사만 눈으로 쫓다가, 사육사가 나간 뒤 쇠창살을 1~2분 발로 차면서 울부짖었어요. 한참 동안 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었죠. 그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분노했지만 당장 그가 취할 방법은 없었다. “아마 찜찜한 기분 속에서도 그날 저녁 육식을 했을 거예요.(웃음)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는 점점 변해갔다. 차츰 동물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201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가 ‘동물 카테고리의 정치: 한국 반달가슴곰 사육과 복원을 중심으로’라는 석사 논문을 썼다. 이후 그의 인생은 결정돼버렸다. 생명다양성재단 외부연구원,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그린피스 에너지 캠페이너를 하고 채식을 시작했다. 고민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여러 방법으로 동물을 관리하고 도울 순 있지만, 가장 시급한 건 고통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각각의 동물에게 부여하는 일이다.” 동물해방물결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참 지나서 이 대표는 검색해보고, 그 호랑이(이름은 호순이였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호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호랑이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활동가로 살며 다른 많은 동물원을 답사했지만 그 동물원은 다시 찾지 않았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와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오면서 온갖 생각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2시간 동안 폭포수처럼 많은 설명이 쏟아져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그가 설명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곳,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사실 나도 그 기분을 잘 안다. 희귀병인 다카야스동맥염을 앓으면서 칼럼 ‘노랑클로버’를 연재하는 나는 내가 앓는 병에 대해, 나의 마음과 생각이 머무는 곳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을 꽤 자주 마주하곤 하니까.
그는 많은 이가 낯설어하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을 수없이 거쳐가야 하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에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이들의 해방을 외칠 만큼 강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며 나는 그처럼 강하고 무해한 삶을 사는 일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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