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 당일, 여당은 비교적 조용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이 칼잡이의 귀환을 환영한다는 둥 호의적인 논평을 내고 보수언론이 1면에 이 소식을 전하며 환호하자 기류가 바뀌었다. 당대표 후보인 박주민 의원을 시작으로 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반격에 나섰다. 대개의 문제를 엄중히 보는 일에 몰두하는 이낙연 의원도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묶어 “좀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른바 친낙계 인사로 지도부에서 ‘윤석열 사퇴론’을 전담하는 듯 보이는 설훈 최고위원은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했고, ‘대권 잠룡’ 김두관 의원은 검찰총장이 대통령을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비판했다며 해임안 제출을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문제의 연설에서 ‘독재’와 ‘전체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우리 헌법 가치를 독재의 그것과 구분하는 핵심은 법치(rule of law)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이란 표현은 독재국가들도 대개는 민주주의의 외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가리킨 걸로 보인다. 가령 북한의 국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진보’들은 자유민주주의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민주주의라고만 표현해도 충분한데 굳이 ‘자유’를 붙인 것은 평등이나 인권 같은 다른 가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윤석열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를 의식한 걸로 보인다.
과연 이걸 정권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적 주장으로 볼 수 있을까? 해석은 자유라지만 그렇게 주장하긴 아무래도 쉽지 않다. 윤석열 총장은 취임사를 포함해 과거에도 수차례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했다. 그런 사실로 미뤄보면 신임 검사들에게 검찰의 지위와 임무에 대한 설명을 본인 철학을 동원해 한 거라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정권 비난의 뜻을 암호처럼 숨겨놓은 메시지를 내놔야 할 이유가 없다. 미래통합당과 코드를 맞추려는 시도라거나 대선을 향한 본격적 정치 행보를 예고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으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은 것에서 보듯 개인의 이념 지향이 보수에 가깝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윤석열 총장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그전부터도 ‘보수 대권주자’로 거명되고 있다. 지금 뭘 더 하겠는가?
무슨 뒷말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때린 다음 맞을 걱정 하는 심리와 미워하다보니 꼬투리를 잡고 싶은 인지상정에 전당대회 국면이라는 정치적 이유가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의심대로 이 일의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 여당의 행태는 오히려 윤석열 총장을 도와주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검찰총장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검찰’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여당이나 보수야당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남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치인데 대중적 차원에선 이게 ‘모두가 도둑놈’이란 세계관의 근거다. 이 속에서 ‘정치인’이란 개념은 순교자 또는 사기꾼이라는 이분법으로 대체된다. 그러니 ‘정치적 자해’라는 평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민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