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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신이 아니다

설렁썰렁/ 한빛 1호기 사고와 원자력학회의 소신
등록 2019-05-25 14:15 수정 2020-05-15 20:2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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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반복되는 과정이 있다. 원전 운영기관은 전문가의 견해를 내세워 “원전은 안전하다”고 발표한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면 “위험을 과장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지 말라”고 대응한다. 여기에는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원전 안전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태도가 담겼다. 이번에도 이런 과정이 반복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5월20일 전남 영광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한빛 1호기에서 벌어진 ‘열출력 폭등 사고’(5월10일 발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자로 출력을 조절하는 제어봉 인출 과정에서 열출력이 운영기술지침서상 제한치인 5%를 넘겨 18%까지 폭등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들의 계산 실수, 무자격자의 원자로 운전 등 사람의 실수가 원인이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였다. 이에 대한 한수원의 반응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자칫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처럼 원전로 폭주까지 갈 뻔한 사고”라고 지적하자 한수원은 “한빛 1호기는 안전설비가 정상 상태였고, 원자로 출력이 25%가 되면 자동 정지된다. 출력 폭주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의 설명대로 한빛 1호기와 체르노빌은 다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수원 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달린 “잘못된 소스를 제공하는 교수들과 인사들도 문제로군요”라는 누군가의 댓글에 “그중 몇 명은 왜곡 내용이 심해서 저희도 강도 높은 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달았다. 사고 원인을 엄정히 조사하고 재발 대책을 세우는 것과 사고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대응하는 것 중 무엇이 먼저일까? 이번 사고도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들 때문에 터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급기야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8개현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조처에 대해 반대 주장까지 내놓았다. 한국원자력학회는 5월21일 ‘극초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이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을 폈다. 하야노 류고 도쿄대 물리학과 명예교수까지 초청해 “후쿠시마 농수산물은 안전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학회는 환경단체로부터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집단인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계속되자 학회는 5월22일 “본의 아니게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켰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게 느낀다”고 고개를 숙였다. 학회는 방사선에 대한 과다한 공포를 지적하려 한 듯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모르거나 무시했다.

원자력학회는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원자력 관계자들에게 책 한 구절을 권한다. 사람은 신이 아니고 전문가 역시 신이 아니다. “원전은 기계입니다. 기계는 때때로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때때로 잘못을 저지릅니다.”(<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2012)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블라블라/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장자연 사건’ 조사 발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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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을 다시 맡게 됐다. 10년여 만이다.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은 다시 읽어도 가슴이 저몄다. 함께 일하는 정치팀 이승준 기자는 당시 수습이었고, 나는 문화부 기자였다. 2009년 초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취재 현장에서 악역을 맡은 장자연씨를 스치듯 봤다. 그때를 떠올리고 있을 찰나, 이 기자가 10년 전 취재 메모를 모으다가 발견한 보고 한 대목을 메신저로 보냈다.
“전** 피디 010-3***-3****(부탁받아 올리긴 합니다만. 조심스럽습니다. 감안하시길)”
얼핏 봐도 취재에 탐탁지 않은 비협조적인 태도가 묻어났다.
“이거 누가 올린 건지 아세요?”
‘누군지 몰라도 참, 상황 파악도 못하고 개념도 없다’고 하며 보고자 이름을 보니 ‘하어영’이다. 당혹스러웠다. 장자연 사건인데, 그럴 수 있는가. 다시 봐도 내가 올린 보고다. 숨고 싶었다. 부끄러움도 잠시, 10년 전의 무기력이 되살아났다. 분당경찰서를 찾은 날, 담배를 피우던 형사가 “그만해라. 나올 것도 없다”며 혀를 찼다. 10년 전 그 말에 아무 답을 못했다. 버럭 소리라도 한바탕 질러야 했는데. 올려놓은 메모로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라고 시작되는 꾹꾹 눌러 쓴 문건을 보고도 왜 나는 침묵을 지켰던 것일까. 지금 와서 후회한들 소용없다. 5월20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거쳐 보도자료를 냈다. 장씨를 둘러싸고 흡혈하듯 살아가던 인간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일 없는 듯 잘살고 있다. 발표대로라면 앞으로도 잘살 듯하다. 하지만 보도자료만으로도 당시 수사는 엉망진창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압수수색은 부실했고, 주요 인물 수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증거 자료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사라졌다. 장자연 사건은 끝났는가. 그럴 수 없다. 여전히 진실이 저 너머에 있는 한 끝나지 않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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