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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의 덕

썰렁썰렁/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
등록 2019-05-11 12:46 수정 2020-05-03 04:2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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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은 지주의 재산을 단 한 푼이라도 축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하루아침에 마름의 지위를 잃게 된다. 지주는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름을 원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수사를 지켜본 한 금융 당국 고위 간부의 촌평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담당한 측근들을, 지주를 대리해 소작권을 관리하는 ‘마름’에 견줘보면, 미래가 탄탄한 삼바가 왜 부실 기업이나 하는 분식회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바의 분식회계는 오로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는 게 검찰과 앞서 삼바를 감리했던 금융 당국의 시각이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단단하게 다지려면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늘리는 게 필수다. 그 일환으로 삼성은 2015년 5월에 삼성전자 지분(4.6%)을 가진 삼성물산과,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보다 훨씬 덩치가 큰 회사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합병 비율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몸값’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바의 장부상 가치를 부풀렸다는 게 검찰과 금융 당국의 시각이다.

오너의 재산을 축내지 않고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려다보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2015년 이전까지 적자를 냈던 삼바가 합병을 앞두고 흑자 회사로 둔갑하면서 꼬리가 밟혔다. 무리수는 또 무리수를 낳는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5월 특별감리에 들어갈 무렵 삼성은 대대적인 증거인멸에 나섰다. 삼바 직원들은 공장 바닥을 뜯은 뒤 회계 문건 등 관련 자료가 담긴 노트북과 컴퓨터 서버를 세 군데에 나눠서 파묻은 뒤 덮어버렸다. 이 대담한 증거인멸이 최근 검찰에 의해 들통났고 이를 주도한 실무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마름의 충성은 삼성에서 낯선 게 아니다. 20여 년 전 이 부회장이 단돈 48억원으로 수백조원에 이르는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삼성의 용의주도함을 과시한 예다. 우여곡절 끝에 기소된 이건희 회장과 그의 ‘마름’들은 대법원에서 단 ‘한 표’ 차이로 면죄부를 받았다. 마름들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활약이 효과를 본 것이다.

이 부회장도 아버지처럼 마름 덕을 볼 수 있을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 부회장을 뇌물 혐의로 기소한 박영수 특검팀에서 활약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3차장이 지금 삼바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삼바 수사 결과는 이 부회장의 국정 농단 상고심과 파기환송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블라블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당선


‘이변’ 기사가 이변


공동취재사진

공동취재사진

2013년부터 나는 국회를 들락거렸다. 그동안 제1야당은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치부 기자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선거 전망이다. 이슈나 구도가 명확하지 않을수록 예측은 조심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야당 원내대표 선거는 습관처럼 ‘이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출입하면서 취재한 원내대표가 박기춘(박지원계), 전병헌(정세균계), 박영선(비문), 김영록(박지원계), 우윤근(범친문), 이종걸(비주류 쇄신그룹) 등이다. 면면에서 보듯 당내 주류 계파가 당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내 역학 구도가 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의원들은 1년에 한 번 치르는 원내대표 선거를 반장선거에 빗댔다. 지역구 관리에 유리한 상임위(국토위, 교육위 등)로 사보임(교체)을 제안하면서 물밑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기본, 서울에서 몇 시간을 차로 달려야 하는 지역구로 예고 없이 해당 의원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거나, 손편지 이벤트를 벌이고, 국회 내 목욕탕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평소에 밥을 얼마나 같이 먹었는지, 의원 행사에는 얼마나 얼굴을 내비쳤는지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심지어 “삼수했다”는 것도 호소력을 얻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인영 의원 쪽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우세해졌다. 그는 민주당 내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대표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처음 나섰던 2012년 당시 선거대책위 상임선거대책본부장으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 참석한 핵심 인사였다. 이번 선거에 친문 실세가 도왔다는 얘기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 의원 개인적으로는 이미 두 번의 당대표 선거 경험이 있다. 스스로도 “체급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표차(76 대 49)로 당선됐다. 그런데 이른바 주류 언론은 이번에도 ‘이변’이라는 평가 일색이다. 출입기자들은 이 의원의 당선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무엇일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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