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전설적인 희극배우이자 감독, 제작자인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실제로 영화 제작 과정에서 비극적인 장면을 배우들 가까이서 찍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멀리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4월29일 밤~30일 새벽 국회 여야 4당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희비극이 반복됐다. ‘자유한국당에는 비극, 국민에게는 씁쓸한 희극.’
패스트트랙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소속 장제원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논의하는 회의장에서 정개특위 소속 다른 당 의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발언을 이어가며 ‘원맨쇼’를 벌였다. 흥분한 그는 회의장을 나가려다 문 앞에서 이를 제지하던 애꿎은 국회 직원(질서유지권 발동으로 회의장 출입 통제)에게 “나 밀었어요? 국회의원을 밀어? 사과해!”라고 반말로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같은 당 김재원 의원은 정개특위 투표 과정에서 기표소로 들어가 가만히 서서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투표를 지연시키려 한 것이다. 패스트트랙 논의를 막기 위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데 실패한 자유한국당이 ‘투표소 점거’를 시도한 셈이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개표를 강행하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선언하자 김 의원은 그제야 투표소에서 나왔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 청원’이 170만 명(5월2일 현재)을 넘기자 자유한국당은 ‘북한 배후설’을 제기했고, 5월2일에는 4명의 의원이 좌파독재를 막겠다며 국회에서 삭발했다. 이들은 진지하다. 지금의 상황을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114석의 거대 야당이 국회법에 따라 추진된 패스트트랙를 막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국회 점거 등에 대해 ‘저항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에게 현재 상황은 한편의 부조리극일지도 모른다. 물리적 저지 말고도 법안 논의 과정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강자’가 갑자기 ‘약자’ 흉내를 내는 것에 많은 이가 어리둥절하다.
한편, 희비극을 수시로 오간 이는 국회 밖에도 있었다. 5월1일 대민 봉사를 나갔던 충남 서산 공군부대의 한 이병이 봉사 현장을 이탈해 영화 을 보고 난 뒤 영화관 밖에서 기다리던 헌병대에 체포됐다. 입대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그는 “어벤져스 영화가 보고 싶어 잠시 대기하는 틈을 타 현장을 벗어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3시간1분(영화 상영시간)은 희극이었을까. 누리꾼들은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래도 영화는 다 보고 잡혀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앞으로 군생활 잘하고 무탈하게 전역하시길.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블라블라/ 세종시 시청 표지석 사건
박정희 서체, 하면 된다
박근혜 일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휘호’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 광화문에 한글로 새긴 현판을,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선 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바꾸려 하자 정치적, 문화적 논쟁이 촉발됐다. 유홍준 교수가 2005년 문화재청장이 되기 전 미술평론가로서 지면에서 박정희 글씨체를 두고 이야기한 “사령관의 호령 비슷한 기합… 살기조차 느낀다”(2005년 1월26일치 31면)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일었다. 당시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승자에 의한 역사 파괴는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 소전 손재형 선생에게서 글씨를 배웠다. 글씨 실력이 부쩍 늘어선지, 광화문 현판을 다시 써 교체하기도 했다. 그의 글씨체는 추종자가 ‘박정희 국력체’라며 폰트도 만들었는데 “군인다운 기질이 드러나는 서체”라고 설명해놓았다.
미술평론가가 보기에 박근혜 글씨체는 어떤지 궁금하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1 제자가 그인 것 같다. 박정희 붓글씨는 가로가 두꺼운 특징이 있는데, 박근혜 붓글씨는 두루 얇게 그어졌지만 조형은 거의 비슷하다. 더 닮은 건 광개토대왕비나 진흥왕순수비 등 고대 유물처럼 어디든 자신의 글씨로 표지석을 세우는 정복욕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하면 된다’ ‘새마을운동’ 등 통치이념과 국책사업만이 아니라, ‘통일로, 무악재, 금화터널, 현충사’ 등 전국을 자기 글씨로 ‘표지’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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