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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걸려 마침표

헌재 낙태죄 위헌 판단
등록 2019-04-14 10:53 수정 2020-05-02 19:29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 박종식 기자

낙태죄도 간통죄의 운명을 따랐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4월11일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낙태하는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한 ‘낙태죄’ 조항(형법 제269·270조)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헌법불합치)했다. 2012년 재판관 4 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낙태죄 조항은 법 개정 이전까지만 적용된다.

재판관별로 헌법불합치(4명), 단순위헌(3명), 합헌(2명)으로 의견이 갈렸다. 법정 의견은 청구인에게 유리한 의견 가운데 재판관 6명 이상 동의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청구인에게 가장 유리한 단순위헌이 3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다음으로 유리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법정 의견이 됐다(단순위헌을 포함해 7명이 동의한 것으로 간주됨).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 헌재소장과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라며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임신 14주 무렵까지는 어떠한 사유도 요구하지 말고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한발 더 나아갔다. 반면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은 “태아 생명 보호는 매우 중대하고 절실한 공익”이라며 낙태죄 합헌 의견을 냈다.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은 1953년 법이 제정된 이래 66년 동안 이어져왔다. 낙태죄 위헌 판단이 내려지는 과정은 간통죄와 비슷하다. 간통죄도 1953년 제정 때부터 논쟁이 벌어졌다. 1990년·1993년·2001년·2008년 총 네 차례 위헌법률심판에 올랐다가 2015년 2월26일 재판관 7 대 2로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간통죄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4월18일 퇴임하는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이번 결정이 마지막 재판이었다. 주심을 맡은 조 재판관이 일찌감치 합헌을 주장한 것과 달리 서 재판관은 마지막 평의 직전에야 자신의 의견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사석에서 “낙태를 엄하게 처벌해 낙태를 근절할 수 있다면 합헌 결정을 하겠다. 하지만 낙태죄가 있어도 낙태하는 여성이 많지 않나. 더욱이 음성적으로 낙태가 이뤄져 여성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고려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낙태죄 위헌소송은 지난해 8월 이진성 소장이 퇴임하기 전에 결론을 내리려고 했지만 서 재판관이 결정을 내리지 못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 재판관이 ‘결자해지’한 셈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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