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설렁썰렁/ 강제징용 소송 재판 거래와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 사건
등록 2019-06-01 04:23 수정 2020-05-02 19:29
연합뉴스

연합뉴스

“외교부는 ‘적폐’ 무풍지대다!” 사법 농단 재판을 방청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양승태 사법부’의 강제징용 소송 재판 거래에 관여했던 외교부 관료들이 이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다. 이들의 진술은 국적을 의심케 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관련 개인청구권도 해결됐다는 게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강제징용 배상을 선고한) 2012년 5월 대법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틀린 판결이다.” 이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이 대법원에 재상고된 강제징용 소송을 파기환송하거나 지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들은 “대법 판결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외교부 관료의 법정 증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움직이기 위해 각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부터 주무 부서의 말단 직원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삼권분립’이나 ‘재판독립’은 이들의 안중에 없었다.

당시 상황을 당당하게 진술하던 전직 외교부 관료는 사법 농단 재판을 지휘하는 재판부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증인에게 재판장은 언성을 높여 다음과 같이 물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을 만나 재판 관련 얘기를 하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가.” 한 재외공관 책임자는 검사의 질문을 요리조리 피하다가 재판부의 눈총을 받았다. 이들은 지금 외교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상처를 덧나게 한 이들이지만, ‘외교 전문가’라는 이유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 일부에서는 ‘적폐’를 넘어 다른 꿈을 꾸는 걸까. 최근 주미대사관 직원이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사진 왼쪽)에게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한 사건은 ‘강제징용 소송 재판 거래’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행위를 정파적 이해에 따라 버젓이 저지를 수 있는 ‘외교 관리’들에게 국가 중대사를 맡겨도 되는지 묻게 한다. 외교부는 5월30일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유출한 주미대사관 소속 참사관 ㄱ씨를 파면했다. ㄱ씨가 한-미 정상 통화 요록을 볼 수 있게끔 내용을 출력한 다른 주미대사관 직원에게는 3개월 감봉 처분을 내렸다.

앞서 ㄱ씨는 3급 비밀에 해당하는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혐의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ㄱ씨가 유출한 것으로 의심받는 기밀은 이뿐만 아니다.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려 했으나 볼턴 보좌관의 거부로 무산됐다는 언론 보도도 그의 유출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개로 외교부는 5월28일 ㄱ씨와 강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ㄱ씨와 이 사건에 연루된 외교부 공무원들은 검찰 수사가 끝난 뒤 재판받게 될 것이다. 이들은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까. 이들의 재판은 ‘외교 관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블라블라/ 인류세의 배설물


난지도의 추억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겨레 김봉규 기자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사진)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운동 코스다. 두 공원은 높이 98m, 100m의 인공 산이다. 산은 서울 시민이 버린 9700만t의 쓰레기가 묻힌 쓰레기산이다. 이전에 ‘난지도’라 일렀던 섬이다. 어지럽고 지저분한 ‘쓰레기가 모인 섬’의 대명사 같은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많은 섬이라는 뜻이다.
1960~70년대에는 데이트 코스로도 사랑받았다. 1978년 서울시에서 난지도를 쓰레기 투하 장소로 결정함으로써 난초와 지초는 젊은 시절의 데이트처럼 아련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1993년까지 불과 15년 만에 이곳에는 이집트 피라미드 33배 분량의 쓰레기가 모였다. 커지는 서울을 감당할 수도, 늘어나는 서울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도 없었던 때, 이곳은 덮여서 경기장과 산이 되었다.
한국에서 ‘르포라이터’라는 이름으로 처음 활동한 유재순(61)씨의 논픽션 당선작이 ‘난지도를 찾아서’다. 1981년 일이다. 그는 이곳으로 이주해 난지도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해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이곳에는 800여 가구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생계 부양자는 넝마주이였다. ‘쓰레기를 주워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매립지는 구별로 나뉘었고, 부자 구에서 오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의 이권은 상당했다. 앞벌이와 뒤벌이로 먼저 줍는 사람과 나중에 줍는 사람으로 나뉘었는데 이 또한 이권이 개입했다.
개발하면서 쓰레기산은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침출수 방지) 시멘트로 감쌌다. 지금도 산에 뚫은 관에서 가스가 나온다. 차로 부근 강변북로를 지날 때는 ‘실내 공기 순환’ 버튼으로 전환한다. 쓰레기산은 옮겨졌을 뿐이다. 김포시와 인천시 경계에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쓰레기가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매립지가 있다. 초기 매립 지역은 골프경기장·승마장·수영장이 되었다. 매립 지역은 발전했다. 난지도의 교훈을 살려 침출수를 정화하는 장치를 심었고 매립장에서 나오는 가스는 모아서 하루 120만㎾의 전기를 생산한다. 인류세 뒤 지구에 오는 생물들은 쓰레기산을 보며 인간의 배설물에 놀랄 것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