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몇 년 전 일이다.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출발하려는 엘리베이터를 간신히 잡아서 탔는데, 먼저 타 있던 여학생이 나를 힐끔 보더니 내려버렸다. 어딜 봐도 위협적으로 생기지 않았다고 자부(?)하는데다, 딱히 상대방이 공포를 느낄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한 듯해 한동안 기분이 찜찜했다.
얼마 뒤 첫째 딸아이가 물어왔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탔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같이 타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당연히 내려야 한다고 아내와 동시에 대답했다. 내가 당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딸한테는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아차 싶었다. 나와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있던 여학생이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열 번, 스무 번이라도 받아도 기분 나쁠 일이 전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는 여학생이 내리기 전에 내가 먼저 내려 맘 편히 올라가도록 하는 게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두 딸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할수록 걱정이 늘어난다. 어릴 때는 항상 옆에 둘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 기사를 볼 때도, 예전에는 내가 그런 남자가 아니면 그만인 문제였지만, 딸들이 당사자라는 생각이 드니 아예 다른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리 아이들이 저런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생각이 들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둘러보니 그런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택시를 혼자 타는 일이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딸아이를 혼자 태워 보내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만원 지하철을 타는 것이 나에게는 그저 불편한 문제일 뿐이지만, 딸아이에게는 공포일 수도 있었다.
미투 운동 이후 남자들을 싸잡아서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것 같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나도 한동안 그런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어머니를 통해서도, 여동생을 통해서도, 아내를 통해서도 알지 못했던 세상이 보였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하고 불공정한지 조금씩 보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해자가 비난받지 않고 피해자가 비난받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사실이, 피해자임을 밝히는 일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얼마나 세상을 편하게, 그리고 유리하게 살아왔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언론에서 2018년 올해의 인물로 꼽은 서지현 검사라는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를 따라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무엇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대로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보호되고, 그렇게 정의가 이길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적용되도록 하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져서 피해자가 큰 용기를 굳이 내지 않고도 자유롭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평생 쓸 용기를 끌어모아 나서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힘내십시오. 기회가 된다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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