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불을 밝힌 이발소 안.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정리된 도구들. 목에 타월을 두른 손님 하나가 이발 의자에 앉아 있다. 오래 입어 낡긴 했지만 역시 잘 손질된 흰 가운을 입고, 손에 든 빗과 가위가 작게만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이발사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다. “고개를 약간 숙이시겠어요? 감사합니다.” 한참 골똘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던 손님이 이발사의 조심스러운 손짓에 얌전히 고개를 숙인다. “어떤 힘이 인간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이렇게 모든 걸 다 하라고 하는 것일까?” 이발사는 다시금 치켜드는 손님의 머리를 따뜻한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신중하게 살핀다.
어느 불 켜진 이발소의 소극“땅을 갈고, 소젖을 짜고, 자동차를 고치고, 계약서에 공동으로 서명하고, 천연가스와 석유를 저장하고! 이 모든 걸 왜 하는 거지? 어쨌든 질문이야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천연가스와 석유를 저장하다니!” 하지만 이발사는 손님의 이야기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손님의 모습과 목덜미를 번갈아 주시하며 머리카락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할지에 골몰해 있을 뿐이다. “양념을 하고, 뭘 붙이고, 니스를 칠하고, 페달을 밟고, 참, 페달을 밟는다? 페달을 밟는 게 자네한테는 당연해 보이나?” 하지만 손님 역시 이야기를 멈출 기미는 없어 보인다. “어떤 지역에 전기를 가설하고, 이런 것 저런 것에 대해 토론하고, 말 종자를 개량하고…. 이렇게 하는 게 다 당연해 보이나?”
이것은 장 미셸 리브의 희곡 의 시작 부분이다. 이라는 표제 아래 여덟 편의 소극이 이어지는데 그중 이발소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짧은 시간을 들여다보는 이 작품은 단숨에 나를 여느 불 켜진 이발소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러고 보면 한두 번쯤 인간이 바퀴라는 것을 만들고 페달을 연결해 간단히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도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 같다.
하물며 장거리 비행을 할 때는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가도 문득 깨어나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공중에 떠 있지 궁금해했던 적도 있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란 말이지. 이게 땅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 목적지에 착륙할 거라 생각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단 말이지. 그러다 옆자리에 졸고 있는 사람을 보며 하릴없는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 사람이 아니고 나인 걸까? 어제도 나이고 지금도 나이고 내일도 나인 채로 살게 되는 걸까? “글쎄요….” 추임새를 넣듯 맞장구를 치면서도 적당히 말끝을 흐리며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대답을 피하던 이발사에게 손님은 묻는다. “무엇이 자네를 이발사가 되게 했나?”
그러니까 말이다. 무엇이 나를 지금의 내가 되게 했지? 무엇이 나를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살게 했지? 언제부터 그랬지? 높은 파도를 가르며 먼바다를 항해하는 대신에, 연구소에 앉아 어제 얻은 수치와 방금 나온 수치를 비교해보는 대신에, 헬멧을 쓰고 전신주에 오르는 대신에, 우편 가방을 들고 낯선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에. 어떤 힘이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이 모든 것을 하게 했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작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불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새처럼 날고 싶었던 이발사이발사는 세 번인가 네 번쯤 조용히 날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집 부근에서, 플라타너스들이 있는 장 물랭 대로에서, 너무 빨리도 너무 높지도 않게, 제비처럼 말고, 아주 희고 조용한 갈매기가 나는 것처럼. 어떤 힘이 나를 작가로 살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모습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통과하고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무엇인지, 여럿일 수도 하나일 수도 있는 그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그게 무엇인지 꼭 남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윽고 혼자 남은 이발사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칼을 모은다. 문득 비질을 멈춘 그가 긴 허리를 구부리더니 바닥에서 흰 깃털을 주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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