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153편대장 소령 김동엽은 ○○년 ○월○일부터 동년 ○월○일까지 전방 출동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해군 함정을 지휘하는 함정장들은 작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항하기 전 함대사령부를 방문한다.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 상황도 듣고 필요한 지시 사항도 받는다. 또 함대사령관은 ‘출동 신고’라는 것을 하게 돼 있다.
불과 1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첫 출동 신고는 군생활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앞에 서 있는 함대사령관의 소장 계급장에 있는 두 개의 별보다 나를 쳐다보는 사령관의 두 눈이 가슴을 더 설레게 했다.
“첫 출동이라고? 그래도 이곳 동해에서 함정 경험이 많으니.”
“예, 고속정 정장도 동해에서.”
“겨울이라고 위쪽 안심하면 안 돼.”
“예, 한 치라도 넘보면 초전 박살내버리겠습니다.”
젊은 지휘관의 패기에 ‘허허’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때 함대사령관이 던진 한마디가 내 군생활에 큰 화두로 남았다.
“지휘관은 용기만큼이나 냉철함도 중요해. 국익을 생각하게.”
11월13일, 북한군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해왔다. 북한군 귀순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2007년 9월 이후 10년 만의 JSA를 통한 귀순이었다. 또 1984년 이후 33년 만에 판문점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이라는 점에서 특별했다.
33년 만의 판문점 총격전지금까지 알려진 귀순 과정만 보더라도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귀순한 북한 병사는 직접 차를 몰고 남북 경계선을 넘으려 했던 것 같다. 차량 바퀴가 수로에 빠지자, 차문을 열어 남쪽으로 내달렸다. 북한군이 추격하며 40여 발의 총격을 가해왔다. 우리 군은 준비 태세에 돌입했지만 즉각적인 대응사격은 없었다.
귀순 병사는 여러 발의 총상을 입고도 다행히 경계선을 넘어 남쪽 50m 지점에서 쓰러졌다. 병사를 구하기 위해 우리 쪽 지휘관이 나섰다. 낮은 포복으로 접근해 총상을 입고 쓰러진 북한군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현재 수술을 마친 귀순 병사의 건강을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병사의 고통은 우리가 놓인 분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JSA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과 분단의 현장이다. 한때 JSA 내에선 군사분계선(MDL) 없이 남북한과 유엔군이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6년 8월18일 터진 ‘도끼 만행 사건’ 이후 JSA 내에 MDL이 그어졌다.
JSA는 유엔사가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2004년부터 한국군으로 경비 책임 임무가 이관됐지만 무력 사용에 대해서는 유엔사 승인을 거치도록 돼 있다. JSA 내에서 대응사격을 하려면 유엔사 교전 수칙을 따라야 한다.
자유한국당 등 일부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을 문제 삼고 있다. 우리 군이 북한군의 총격에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의 재료가 되고 있다. 북한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이 남쪽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추격해온 북한군이 MDL을 넘어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JSA에서 우리 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 또한 분단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군의 불편한 진실이다.
그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보자. JSA에서 총성이 들렸다. 북한군 한 명이 남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몇 명의 북한군이 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이 북한 쪽에 즉각 대응사격을 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실제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에 이에 대한 상상과 평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단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우리 군이 비정상적이었다거나 북한 병사의 부상이 덜했으리라는 것을 따지는 건 적절치 않다. 오히려 대응사격을 했다면 우리 병사를 포함해 더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을 수도 있다.
부하 대신 사지 뛰어든 지휘관교전 수칙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 만들어진다. 첫째는 우리 병사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 둘째는 확전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에서도 “우리 초병이 직접적인 위해를 당하지 않았고, 위기도 추가로 고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몇 초 안되는 순간 응사할지 말지 판단하고 상황을 최소화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처를 잘했다”며 적절한 대응이었음을 강조했다.
이번 JSA 북한군 귀순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와는 별도로 귀순 병사를 향해 직접 총격을 가하는 북한군의 행위 자체는 분명 반인륜적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정전협정 위반 사실이 있다면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당연히 우리 쪽의 대응에도 부족하고 수정해야 할 점이 있을 것이다. 교전 수칙 준수 여부도 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무조건 적절한 대응이었으며 모든 것을 잘 처리했다고 칭찬해주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현장 지휘관인 JSA 한국군 경비대대장 권영환 중령(육사 54기)의 정확한 판단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굳이 교전 수칙을 따져묻지 않더라도 “부상 입은 귀순병을 구하기 위해 부하를 보내지 않고 왜 직접 들어갔냐”는 질문에 “차마 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는 대답만으로도 현장 지휘관인 권 중령의 판단이 옳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해항을 출발한 고속정 편대는 4시간 남짓을 달려 최전방인 거진항에 도착했다. 편대장으로 부임한 뒤 처음 맞는 출동을 동해의 거친 파도가 아는 듯 쉽지 않은 항해였다. 앞서 출동 나온 선배 편대장과 점심을 먹으며 짧은 시간 동안 인계를 받았다. 선배의 편대를 보내고 대원들을 집합시키고 앞에 섰다. 첫 출동을 나온 편대장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병기장, 지금 바로 앞에 북한 함정이 우리 쪽으로 포를 돌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대원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대답을 못했다.
“정장, 북한 함정이 포에 장전을 하고 당신 고속정으로 향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예, 상황을 주시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우발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쏴라.”
“예?”
“네 부하와 고속정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쏴라.”
모든 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난 군인이다. 내게 국익은 부하의 생명이고 내게 주어진 세 척의 고속정이다. 그게 내게 편대장이란 지휘관의 직책을 준 이유이다.”
그리고 나는 편대장 첫 출동 연설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나는 부하를 잃고 훈장을 받느니 너희를 구하고 군사재판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상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부하의 생명군인은 정치가가 아니다. 생사의 기로에 선 현장 지휘관이 정치를 생각할 수는 없다. 그저 본능대로 군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서 판단하고 그것을 근거로 행동하면 된다.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부하의 생명이다. 나에게도 한때 군복을 입고 부하들과 함께했던 가슴 떨리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부하의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찰나에 내려지는 지휘관의 판단은 대응사격을 했느냐 안 했느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생명이 위험하게 느껴지면 쏘라”고 했던 나나, 대응사격을 하지 않고 직접 JSA 귀순 병사를 구출한 권 중령의 마음은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JSA는 물론 비무장지대(DMZ·육상에서 남북을 나눈다)와 북방한계선(NLL·해상에서 남북을 나눈다)에서는 남북 병사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예기치 않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지금 남북 군사 당국 사이에는 모든 통신망이 끊어진 상황이다. 그동안 남북 군사대화를 통해 합의한 남북 간 군사적 완충장치도 제거됐다. 현재는 JSA에서조차 남북 접촉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회의는 물론 비서장·경비장교·일직장교 회의 등도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군이 귀순할 때 발생한 이번 총격에 대한 유엔사 항의문도 앞에 서서 확성기로 통보했다고 한다.
오인 또는 우발 상황이 발생하면 병사들의 생명이 어느 때보다 위태로우며, 확전의 위험도 매우 커진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력이 더욱 중요한 때다.
무책임한 정치가 군인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남북 군사대화의 통로을 열고 기존 남북 합의를 복원하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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