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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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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였던 북-중 정상회담

‘전격 중국 방문’ 분석 나오지만 김정은·시진핑 만남은 예상된 수순

셈하기 힘든 한반도 비핵화 ‘제2라운드’ 국면, 한국 역할 중요해져
등록 2018-04-03 17:04 수정 2020-05-03 04:28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2011년 집권한 김 위원장이 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에 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에 끼칠 영항을 분석하고, ‘정상국가’가 되길 희망하는 북한의 의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 귀환하고 있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동향 등을 두루 살폈다. _편집자
중국을 전격 방문한 김정은 조선노동당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중국을 전격 방문한 김정은 조선노동당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중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북-중 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북한 외교일꾼의 말이다. 김일성 주석이 살아생전 했다는 ‘중국을 너무 믿지도 말고 너무 멀리하지도 말라’는 말이 떠오른다. 북-중 관계는 서로 마음으로 느끼는 좋고 싫은 관계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과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관계다.

김정은의 자신감 있는 행보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3월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부인 이설주가 동행했고, 많은 당 중앙위원들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들이 수행했다. 국제사회에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알리고, 김정은 자신도 지극히 정상적인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차별되고 자신감 있는 외교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적잖은 방중단 규모에도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전세계 언론은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을 확신하지 못했다. 이러한 철통 보안이 가능했던 것은, 이번 방중이 중국의 협조 속에 비밀리에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김 위원장은 비공식 방문임에도 특급 의전과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북-중 정상회담도 했고, 리커창 총리와 왕후닝 상무위원도 만났다. 북한은 관영언론을 통해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이 “친선적인 조-중 관계를 보다 새로운 높은 단계로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데서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김 위원장이 “왜 갑자기 중국을 찾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만큼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가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추측만 무성히 내놨던 것에 대한 궁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명한 뒤 김 위원장이 절박한 생각에 중국으로 달려가 구원 요청을 한 것이라거나, 중국이 ‘차이나 패싱’에 몸이 달아 김 위원장을 불러들였다는 분석은 다소 어이없다. 예정에 없었는데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되자 협상을 앞둔 북한이 중국이라는 우군을 확보하고 몸값을 올리려 했다는 추론은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등에 업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큰소리친다는 것을 상상해보면 그 역시 모양이 빠진다.

그동안 시진핑 주석은 북한에 비핵화 의지를 가질 것을 강조해왔다. 중국 스스로 북-중 관계에 족쇄를 채워왔다. 이제는 북한이 남쪽 특별사절단에 비핵화 의지를 언급했고, 3월9일엔 이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그러니 비로소 북-중 정상회담이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그렇다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되지 않았거나 김 위원장이 어떤 경로로든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다면, 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은 없었을까 반문하고 싶다.

북-중 관계 둘러싼 의문들

물론 김 위원장은 3월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연회 연설에서 “이번에 우리의 전격적인 방문 제의를 쾌히 수락”이라고 언급했다. 그렇기에 방중 자체가 급히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라 해도 정상회담은 한쪽이 요구한다고 사전 준비 없이 며칠이나 몇 주 만에 결정·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은 이미 양국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오히려 지난해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을 타진했지만, 북한이 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번 방중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되기 전에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전격적인 방문 제의’란 말은 시기적으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계획표보다 앞서 방중이 이뤄졌음을 뜻하는 게 아닌가 상상해본다.

이번 방중으로 북-중 관계가 복원됐다는 해석도 의문이다. 복원해야 할 만큼 그동안 북-중 관계가 크게 틀어지고 악화됐던 것일까.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친중파로 알려진 장성택이 숙청돼 북-중 관계가 악화됐다고들 한다. 중국에 간 공연단이 공연하지 못하고 평양으로 돌아온 것도 북-중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거기에 최근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더 이상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봤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주장 속에서 북-중 관계 악화설은 사실로 굳어져갔다.

분명, 북-중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고 중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변화를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동안 우리가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였던 ‘북-중 관계 악화설’은 사실이라기보다, 북-중 관계가 악화되길 바랐던 지난 정권의 정치적 의도와 바람으로 과장된 것이다. 중국은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만큼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대북제재에 동참했을 것이고, 북한은 이것에 외형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북-중 갈등이 양국 관계의 전략적 변화를 반영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기에 양국 모두 이번 방중 결과 ‘친선적인 조-중 관계를 보다 새로운 높은 단계’로 만들었다고 평가한 게 아닐까 한다.

김 위원장은 2016년 제7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당국가 체제 정비를 마쳤고, 2017년 말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방중을 요청할 수도, 중국이 이를 허락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해 11월 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도 지난해 제19차 당대회와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1인지배 체제를 완성했다. 지난 3월 중국 전인대로 실질적인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된 뒤 어느 시점에선가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언제, 얼마나 빨리 열리는가였다.

중국 대미 외교 사령탑의 배석

그런 점에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장기 집권을 위한 제도적 틀과 기반을 만든 역내 두 최고지도자가 안정적인 대내외 환경을 만드려는 이해관계가 일치돼 성사된 당연한 결과다. 강성국가를 바라는 김 위원장과 중국몽(中國夢)을 꾸고 있는 시진핑 주석 모두의 향후 중장기 집권계획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되기 앞서 결정됐는지, 나중에 결정됐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이 회담은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과 시간적으로 엮였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애초 의도했다기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중국과 북한은 3월28일 오전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귀국한 시간에 맞춰 정상회담 결과를 동시에 공개했다. 중국은 관영 (CCTV)과 , 북한은 을 통해 관련 소식을 전했다. 내용에 미세한 차이가 관찰된다. 중국 언론은 한반도 비핵화 논의와 관련한 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화 내용을 전달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노력에 화답하고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평화적인 단계를 밟아 평화적으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핵화와 체제 보장에 대해 선후관계가 아니라 ‘상호조율된 단계적 조치’에 의한 ‘동시행동’을 요구했다. 우리 대북 특사단을 통해 밝혔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의 중국 쪽 배석자도 중요 관전 포인트다. 이례적으로 대미 외교 사령탑인 왕치산 국가부주석과 최고 전략통이라는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했다. 중국은 이제 북핵을 단순한 역내 안보 문제가 아니라 미-중 관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체제 구축을 병행해 추진한다는 주장) 제안과 각국의 유익한 건의를 합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 지역 및 세계의 장기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를 원한다”고 밝히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단계별 접근 △행동 대 행동 원칙 △쌍궤병행 이행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 내용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중 정상이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간략히 소개하고, 연회와 오찬 등 의전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공식적으로 내부에 발표하지 않고 비핵화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것은, 미국 트럼프 정부를 여전히 믿지 못하고 비핵화 노선 역시 명확히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제 진행될 ‘2라운드’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과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러시아·일본에 눈길 줄 때

모든 이가 북-중 관계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으로 북핵 문제 해법이 더 복잡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북-중 관계는 갑자기 생긴 변수가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 그럴 ‘상수’다. 우리는 늘 북한을 비정상적으로 보거나 북-중 관계에 우리 희망을 투영해 바라본다. 그로 인해 정확한 현실 인식을 그르치는 오류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두 주변국인 러시아와 일본의 움직임에도 눈길을 줘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정은 방중이 부른 세계의 취재 경쟁


녹색 열차의 주인공은?


김정은 위원장을 태운 북한 특별열차가 3월27일 오후 많은 인파의 환송을 받으며 베이징역을 떠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을 태운 북한 특별열차가 3월27일 오후 많은 인파의 환송을 받으며 베이징역을 떠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북한의 것으로 보이는 열차가 삼엄한 경비 아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하는 모습을 《NNN》(일본 요미우리 계열 뉴스 전문 채널) 카메라가 잡아냈다.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가 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NNN》이 노란 선이 그려진 21량 편성의 녹색 열차가 베이징역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잡아낸 것은 3월26일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이날 오후 이 영상을 공개한 《NNN》 아나운서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이 열차는 2011년 당시 김정일 총서기가 중국을 방문할 때 타고 있던 열차와 매우 닮았고 (역 주변에) 이례적인 경비가 깔려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북한의 고위급 요인이 열차로 베이징에 도착한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25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동정을 처음 명확히 포착한 영상이었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여느 때와 다른 미묘한 움직임이 관찰된 것은 전날인 3월25일부터였다. 중국 소셜네트워크비스(SNS)에선 북한과 중국을 잇는 국경도시 단둥의 주변 경계가 강화됐고, 이후 북한의 특별열차가 단둥역을 통과하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중국인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그와 함께 26일부터 베이징 시내 경비가 강화됐다. 북한의 ‘중요 인물’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보였다. 문제는 그 ‘인물’이 누구냐였다.
3월27일 아침(한국시각)부터 전세계 언론들은 중국을 방문한 인물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인지, 아니면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인지를 예측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 《BBC》 《가디언》 등 영어권 유력 매체들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예고되지 않은 베이징 방문을 한 듯하다(believed to be in Beijing)’라는 유보적인 표현을 써가며 해당 인물이 김정은 위원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북·중 당국의 정보 통제가 워낙 철저한 탓에 그가 누구인지 확정하는 보도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정보가 없기는 한국, 일본 등 주변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오전 “(방중한 북쪽 인사가) 누구인지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고, 비슷한 시각 일본 외무성도 “아직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임을 시인했다.
이런 가운데 는 27일 오후 5시30분께 독자적인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주요 인물’이 김 위원장임을 특정했다. 그러자 일본 이 약 40분 뒤 “한국의 (온라인판)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 이) 보도를 확인하고 있지 않다”고 긴급 타진했다. 도 비슷한 시간 호외를 내 “김정은 위원장이 복수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와 만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27일 밤 늦게까지 정확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던 듯 “중국을 방문한 인물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라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 3면) 정도의 언급에 그쳤다.
북한과 중국의 관영 매체가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공식 확인한 것은, 그를 태운 특별열차가 북-중 국경을 넘은 직후인 3월28일 아침 8시30분이었다. (CCTV)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걷고 있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처음 공개했고, 잠시 뒤 북한 관영 도 김 위원장의 방중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둘러싼 세계 언론의 속보 경쟁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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