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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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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점짜리 ‘핵무력 성적표’

기술적 완결보다 정치적 선언에 무게

일본열도 넘어 정상 발사 땐 100점짜리
등록 2017-12-14 03:02 수정 2020-05-03 04:28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형’ 발사 장면을 지난 11월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형’ 발사 장면을 지난 11월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1월29일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을 시험발사했다. 고각 발사로 최대 고도 4475km에 950km 거리를 53분간 비행했다. 정상 각도로 발사했다면 예상되는 비행거리는 1만2천km 이상으로 미국 본토 어디든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통일부도 여전히 미완성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갖추어야 할 필수 기술인 대기권 재진입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발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북 ‘핵무력 완성’ 진위 논란

북한은 우리가 미완성품이라고 평가하는 화성 15형을 쏘고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핵무력 완성’이란 핵무기를 가지려는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저리도 핵을 가지려 몸부림치는 것은 자신이 안고 자폭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분명 전달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미국이다. 결국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것은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미사일에 실어 미국에 투사할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북한이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 14형이었다. 7월에만 두 차례 모두 고각 발사했다. 정상 발사시 8천~1만km 날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거리만 놓고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과 뉴욕이 있는 동부 지역까지 이르기엔 부족했다. 특히 화성 14형은 유일하게 일본열도를 넘어 두 차례 정상 발사를 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 12형을 2단으로 개량한 미사일이란 점에서 충분한 무게의 탄두를 탑재하는 것이 어려울 거란 의혹을 받아왔다. 화성 12형과 14형의 1단 엔진은 한 개뿐이다.

반면 화성 15형의 1단은 엔진이 2개다. 그만큼 추진력이 배로 늘어났다. 외형만 봐도 화성 14형과는 비교된다. 같은 2단이지만 전체 길이가 2m가량 길어졌다. 무엇보다 직경이 커졌다. 1·2단 모두 2m 정도로 화성 14형보다 하부 1단은 0.6m, 상부 2단은 0.8m 정도 늘어났다. 자체 생산했다는 바퀴 축이 9개인 이동발사차량은 덩치가 커진 화성 15형의 이동과 발사가 용이하도록 설계됐다. 2단의 내부 체적이 3배 이상 늘어나 그만큼 연료량이 많아져 사거리가 더욱 연장됐을 것이다.

단, 대기권 재진입 뒤 핵탄두(기폭 장치)가 정상적으로 폭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일부에선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해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북한이 아직 한 번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 각도로 발사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와 동일한 대기권 재진입 환경에서 실험해본 적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고각 발사와 정상 발사를 비교할 때 정상 발사를 할 때의 대기권 재진입 환경이 더 열악하고 어렵다는 얘기다.

고각 발사 땐 탄두 더 큰 위험 노출

그러나 양쪽의 대기권 진입 속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정상 각도로 발사했을 때가 조금 빠르지만 모두 마하 20 이상이다.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고각 발사보다 비스듬히 진입하는 정상 발사를 할 때 마찰 면적이 더 넓어져 열에 취약할 거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기와 접촉하는 부분은 탄두의 앞부분인 첨두다. 이번 화성 15형의 탄두 끝부분이 뾰족하지 않고 둥글다. 이는 첨두가 마찰하면서 열을 바깥쪽으로 분산시켜 탄두 외부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설계다. 우주로 나갔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귀환우주선이 대기권을 진입할 때 수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진입 각도를 유지한다. 오히려 수직으로 떨어질 때 열뿐 아니라 압력과 진동 등 더 많은 외부적 충격에 노출된다. 이렇게 보면 고각 발사를 할 때 탄두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북한은 이미 수차례 고도 1천km 이상 고각 발사를 했다. 속도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관련된 유의미한 데이터와 기술을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상당한 기술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짧은 시간에 여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하나씩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기권 재진입 기술 역시 해결해두고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전히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 주장하는 화성 14형과 15형을 정상 발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기술적 진전이 있음에도 기술적 완성 평가는 유보적이다. 그렇다고 핵무력 완성 선포 자체를 조급함이나 단순한 엄포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90점부터 100점까지 성적표에 A를 줄 수 있다면 북한은 기술적으로 완결된 100점은 아닐지언정 완성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90점으로 A라는 핵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북한에 핵이 생존 자체를 위한 목적이든 현실 타파를 위한 수단이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을 향한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화성 15형 발사가 미국에 이를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을 압박해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화성 15형 발사 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방북 중인 러시아 하원단에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을 승인한 것은 향후 국면 전환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의도다. 그러나 지금 당장 미국과 대화로 국면 전환을 기대하고 압박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100점짜리 핵무력 완성 위해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참가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김연아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대사가 지난 11월1일 성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참가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김연아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대사가 지난 11월1일 성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이번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포로 미국이 굴복하고 나올 가능성은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역시 이를 기대할 만큼 상황 판단이 어리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역시 북한을 압박해 굴복시키려는 의도로 보기 어렵다. 북한이든 미국이든 상대가 그렇게 나와주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그만인 ‘꽃놀이패’이다. 화성 15형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진전이 확인되었음에도 ‘핵무력 완성 선포’가 기술적 완결보다 정치적 선언에 무게를 둔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2016년을 평가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마감 단계에 진입했다고 언급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발사는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끝냈다는 대내적 선언의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화성 15형 발사 뒤 이를 ‘민족의 대경사’로 치켜세우며 연일 대대적 선전전과 행사를 벌이는 점에서 북한 내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역대 최강의 제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핵무력 완성을 통한 독자적 체제 보위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 정권의 정당성과 안정성 확보에 더 매진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북한은 2018년 신년사에서 2017년을 핵무력을 완성한 해로 평가할 것이다. 공화국 창건 7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에는 핵무력 완성을 강성국가 건설 완성으로 이어나가자는 투쟁 구호를 제시하고, 핵무력 완성이라는 자신감을 내세워 1년간 수행할 분야별 주요 과제를 제시할 것이다. 특히 대외적으로 핵무력을 내세워 평화 공세로 나올 가능성도 높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해서 미사일 추가 발사를 중단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더 이상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음에도 자위적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명분으로 핵무력 완성의 기술적 완결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전력화, 대량생산, 실전 배치, 숙달 훈련 등의 단계로 세분화해 추가 발사를 정당화하고 이를 통해 기술적으로 미비점을 보완해나갈 것이다. 100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기술적 완결을 위해서는 화성 14형과 15형을 일본열도를 넘어 정상 발사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유엔 총회에 참여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이야기한 것처럼 6천~7천km를 비행해 대기권에 정상적으로 재진입한 뒤 태평양상에서 탄두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에 실패할 경우 ‘핵무력 완성 선언’이 무의미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18년 신년사 이전에 이런 실험을 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추가 제재와 압박에 굴하지 않고 기싸움이 필요할 경우 ‘핵무력 완성 선언’의 흠집을 최소화하는 기존 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 3형과 같이 다른 계열의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할까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평창 겨울올림픽까지 참가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될지 모른다. 북한 처지에서 보면 최고의 시나리오다. 우리 입장에선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고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는 시나리오가 최상이었다. 그러나 미사일은 이미 발사됐다. 2월부터 3월까지는 평창 겨울올림픽이라는 기회 요인과 한-미 연합훈련이라는 위기 요인이 겹치는 시기다. 이때엔 상대에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 서로 자존심을 앞세우기보다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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