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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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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은 요술봉이 아니다

최근 다시 수면 위 떠오른 핵추진잠수함 보유론…

필요성·타당성 부족, 비핵화 요구 명분 잃을 우려도
등록 2017-10-14 00:09 수정 2020-05-03 04:28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2016년 2월 부산항에 입항했다. 핵추진잠수함이 특정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매우 큰 전략적 함의를 가진다. 연합뉴스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2016년 2월 부산항에 입항했다. 핵추진잠수함이 특정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매우 큰 전략적 함의를 가진다. 연합뉴스

한반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숨 가쁘게 ‘핵, 핵’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 최종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한국 내부에서는 자체 핵무장과 함께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핵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맞짱’을 뜨자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아래 전술핵을 넘어 자체 핵무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평화가 아니라 상시적 전쟁 위협 속에 살아가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잠항 능력·빠른 속력은 장점, 소음은 치명적 약점

지난해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한 이후부터는 ‘핵추진잠수함’ 보유론이 제기됐다. 이 문제는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최근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핵추진잠수함 보유론에 대해선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더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핵추진잠수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근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핵추진잠수함을 거론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해군 참모총장 출신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어서인지 핵추진잠수함 이야기는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는 듯하다. 지난 8월 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 보유 필요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와 관련해 한-미 물밑 접촉이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핵추진잠수함이 얼마나 필요한가? 또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실제 가능한가? 첫째는 필요성, 둘째는 현실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잠수함은 디젤엔진을 동력원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재래식 잠수함이다. 반면 원자력잠수함이라고 말하는 핵추진잠수함은 핵분열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잠수함을 말한다. 핵추진잠수함이라고 해서 모두 핵무기를 탑재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핵무기라고 해서 반드시 핵추진잠수함에만 탑재하는 것도 아니다. 핵탄두를 결합한 탄두미사일을 재래식 잠수함에 탑재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 김정은이 언급한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이라는 것이 꼭 핵추진잠수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추진잠수함 건조설은 나가도 너무 나간 얘기다.

핵추진잠수함은 디젤(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잠항 능력과 속력이 뛰어나다. 디젤잠수함은 축전지를 충전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반면 핵추진잠수함은 이론적으로는 거의 무제한으로 수중 작전을 펼칠 수 있다. 또한 핵추진잠수함의 속력은 평균 20~25노트(시속 40㎞)로 디젤잠수함의 6~8노트(시속 12㎞)보다 훨씬 빨라 기동성에서도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이 이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북한의 SLBM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속의 잠항 능력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은밀성과 작전지속능력 등 핵잠수함이 가진 탁월한 능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이 디젤잠수함보다 성능이 절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전제 자체는 과장된 것이다. 핵추진잠수함은 핵동력 장치와 터빈의 감속장치에서 발생하는 커다란 소음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디젤잠수함은 여차하면 엔진을 정지할 수 있지만 핵추진잠수함의 원자로는 멈출 수가 없다.

물속에서 잠수함이 다른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은 100% 소리를 통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추진잠수함이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월등한 음파탐지기(음탐기)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덩치가 크고 신형인 핵추진잠수함에 성능이 뛰어난 음탐기가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음탐기의 성능은 추진 동력과 무관하다. 물속에서는 잠수함이 내는 소음 수준에 따라 상대방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도 있고, 먼저 상대를 찾을 수도 있다. 자신이 시끄러우면 상대에게 쉽게 노출된다. 또 자신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크면 상대를 탐지하는 게 어려워진다.

한반도 주변 저속·은밀 작전에 불리할 가능성
북한은 2016년 8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500km 넘게 날려보내 일정 수준의 발사 능력을 확보했음을 증명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2016년 8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500km 넘게 날려보내 일정 수준의 발사 능력을 확보했음을 증명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해 핵추진잠수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잠수함이 북한의 항구에서 출항하는 단계부터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항내에 있는 잠수함을 출항 전부터 면밀히 감시할 수 있는 잠수함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출항한다고 해서 바로 추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추진잠수함이라고 해도 물속에서 소리로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거리는 10km 이내이다. 그 말은 잠수함 기지 앞 10km 이내, 즉 북한 영해(22.2km)에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이 잠복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핵추진잠수함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기 때문에 어설프게 연안에 접근하다간 먼저 당하기 십상이다. 설령 입구에 매복해 나오는 잠수함을 접촉했다고 해도 그 잠수함이 SLBM을 탑재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동일한 크기의 잠수함이 여러 척 나오면 과연 어떤 잠수함을 추적할지도 의문이다. 또 전시가 아닌 이상 어떤 경우를 SLBM 발사의 징후로 판단, 공격할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도 대책 없이 당하고만 있진 않는다. 핵추진잠수함이 디젤잠수함을 마음대로 추적하고 공격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핵잠수함은 넓은 해역에서 고속·무제한 동력으로 장기 작전에 적합한 반면, 디젤잠수함은 제한된 해역에서 저속으로 정숙하고 은밀한 작전이 가능하다. 오히려 소음이 큰 핵잠수함이 좁은 해역에서는 은밀 매복 중인 디젤잠수함에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결국 한반도 주변 해양 환경에서는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가졌다고 해서 디젤잠수함을 마음대로 감시·추적하고 여차하면 공격까지 하기 힘들다. 오히려 핵추진잠수함은 북한의 디젤잠수함을 추적하기에 기동성과 크기, 소음 등 제한점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

정치적 문제를 제외하고 군사적 필요성 차원에서만 놓고 보더라도 한정된 국방예산에서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했을 때 핵추진잠수함을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자칫 전체 국방력에서 ‘균형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또 치밀한 계획 없이 재래식 잠수함을 설계했던 경험만으로 핵잠수함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확보됐다고 주장하며 건조에 나섰다가는 시행착오만 거듭할 수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가 북한 탄도미사일에 대한 만능의 보검이 아닌 것처럼 핵추진잠수함 역시 SLBM 탑재 잠수함을 막는 요술봉이 아니다. 핵추진잠수함 보유는 선택의 하나일 수는 있어도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핵추진잠수함 내부에는 작은 원자력발전소가 들어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핵연료는 자연 상태의 U-235를 20~90%로 농축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운용하는 대부분의 핵추진잠수함은 90% 이상 농축우라늄을 사용하고 있어 퇴역할 때까지 연료를 교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농축 시설이 없는 우리로서는 농축우라늄 확보가 쉽지 않고 교환할 추가 핵연료도 필요하다.

미국 동의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

2015년 4월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제11조는 한국에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지만 ‘한-미 간 서면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13조는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목소리가 크게 작용하는 국제시장에서 군사적 용도의 농축우라늄을 실제 구매할 수 있을지 단정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우리가 20%의 농축우라늄을 핵추진잠수함에 사용하려면 미국의 동의와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이 필요하다.

핵잠수함의 원자로에 쓰이는 농축우라늄 등 핵물질은 원칙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세이프가드) 대상이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 자체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규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점도 역설적으로 걸림돌이다. 국제원자력기구 규정은 이들 핵잠수함 원자로가 ‘금지되지 않은 군사활동용’으로 지정될 경우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 대상에서 제외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도 비록 작지만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라는 점에서 미국의 동의를 거친 뒤 국제원자력기구와 안전조치 협정을 맺어 핵무기 제조 등 군사적 전용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을 받도록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은 미국의 동의가 없는 한 핵추진잠수함을 갖기 어렵다. 또 미국이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갖는 데 동의해준다면, 이를 위해 어떤 조건을 내걸지 ‘비용 대비 손익’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는 군사적 필요성과 기술적 타당성에 대한 근거 제시가 부족하다. 보유 타당성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지한 의견 제시나 잠수함 설계 전문가들의 판단이 결여된 채 전문성이 부족한 언론과 정치인들의 주장으로 국가정책의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 과거 ‘362 사업’(노무현 정권 때 추진된 핵추진잠수함 보유 계획)을 과장하고 미국의 방해로 핵잠수함을 못 가진다는 피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핵추진잠수함만 있으면 북한의 SLBM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몰아가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을 위해 국가적 의지와 역량을 총집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핵잠수함 개발과 북핵 대응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고 왜 우리가 여기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은 없다.

북한 SLBM에 대한 대응책을 성급하게 핵추진잠수함으로 몰아가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정부나 국방부가 북한 SLBM 능력을 과소평가해온 ‘안보적 해이’를 핵잠수함 보유론으로 어물쩍 넘기려 하거나, 해군이 현재 상황을 핵잠수함을 보유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핵잠수함을 SLBM 탑재 잠수함의 위협을 없애기 위한 최선의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SLBM 위험에 직면한 우리의 안보 상황에 정확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득이 되지 않는다. 또 향후 정당한 핵잠수함 보유 논리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핵에 관한 이중 기준으로 비칠 수도

무엇보다 핵추진잠수함 보유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이다. 핵추진잠수함을 가진다는 것은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반핵-탈핵에 대한 이중 기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모순적이기도 하다.

1991년 12월 남북 사이에 체결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제2조는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며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한 마당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무슨 소용이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 있는 근거와 이를 위해 그동안 쌓아온 노력을 한순간에 차버릴 수는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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