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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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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개혁, 군이 주도해선 안 된다

외교·통일 정책과 시너지 내도록 문민화하고

국민이 국방정책 수혜자 되도록 원칙 세워야
등록 2017-11-03 15:44 수정 2020-05-03 04:28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국방개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5월17일 국방부를 방문한 문 대통령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국방개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5월17일 국방부를 방문한 문 대통령 모습.

20년 군 생활을 하며 두 번 적금을 들었다. 한 번은 결혼하기 전 대위 때고, 또 한 번은 결혼 후 소령 때다. 모두 끝까지 납입 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해지했다. 고속정(연안 경비 임무를 맡은 함정) 정장과 편대장이었으니 모두 지휘관 시절 일이다. 결혼 후인 소령 편대장 때는 적금을 깨고 아내와 말다툼까지 했다.

가난한 현장 지휘관과 풍족한 국방부

늘 부대 운영비가 부족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볼펜 한 자루, A4 인쇄용지 한 장도 귀한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지급되는 이른바 ‘격별비’라는 지휘관 활동비만으로는 부대원들 밥 한 끼씩 사주기도 어려웠다. 아내는 월급 받기를 포기했다. 모두 내가 능력 없는 ‘무능한’ 지휘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휘관 생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지휘관을 마치고 국방부로 입성했다. 현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했다. 더 이상 내 주머니를 털어 A4 용지를 사야 할 일은 없었다. 부족함이 아니라 분배가 문제였다.

정권이 바뀌면 늘 ‘국방개혁’ 구호가 따라다닌다. 1970년대 초 군 전력 현대화 사업인 ‘율곡사업’이 시작된 이후 수차례 국방개혁이 이뤄졌다. 거의 매 정부 국방개혁이 추진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 국방개혁이 논의되고, 무수히 많은 군사안보 정책이 추진되었음에도 대한민국 군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과거 정부들이 추진한 국방개혁의 내용을 보면 잘못되거나 틀린 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부분 훌륭하고 좋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지난 수십 년간 국방개혁의 기치 아래 이야기 안 해 본 것이 과연 무엇일까 싶을 정도다. 정권이 바뀌면 실천적 내용보다 사전을 뒤지며 작명하기 바빴다. 표지와 연도만 바뀔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 형식적인 반복을 거듭할 뿐이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당면한 국방개혁의 문제는 새로움이 아니라 집중과 실천이다. 모든 것을 때려넣은 보기 좋은 국방개혁안을 만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추진된 국방개혁을 보면, 꼭 달성해야 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실천 과제를 제대로 고르지 못했고, 그나마 정한 것들도 이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 국방개혁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개혁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된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무조건 국방개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방개혁이 모든 국방 분야를 망라해서 추진하는 것이라면 국방정책과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개혁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개혁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방개혁은 군사혁신과도 다르다. 개혁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금 추진해야 하는 국방개혁이 정말 국방정책의 전 영역이라면, 국방 전체가 개혁해야 할 만큼 엉망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동안 ‘별’들께선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돈이 없어 좌절된 게 아니다

“국방개혁은, 더는 지체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입니다.” 지난 9월28일 열린 제69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한번 강력한 국방개혁 추진 의지를 나타냈다. ‘국방개혁의 성공을 위해 군 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조치를 다할 것’이라는 말처럼 국방예산도 늘리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GDP(국내총생산) 대비 2.4% 수준의 국방예산을 임기 내에 2.9%까지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압도적인 국방비를 바탕으로 강력한 대북 군사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국방비 증가율은 참여정부 당시 연평균 8.4%이던 것이 이명박 정부에선 6.1%, 박근혜 정부에선 4.6%로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첫해인 올해 9년 만에 6.9% 최대 상승폭이 예상된다. 국방비를 올려준다니 국방부에서야 환영할 일이다.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그동안 그 많은 국방비로 무엇을 했던가. 국방비가 40조원을 넘어 앞으로 50조원, 60조원이 된다고 한들 국방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과 보장은 없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국방개혁은 군의 체질 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돈 쓰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국방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국방개혁은 돈이 없고 국민이 성원하지 않아 실천하지 못하고 좌절된 것이 아니다. 군 통수권자와 정치권, 그리고 군 스스로 진정 개혁을 추진할 의지를 가지지 못했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국방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통령 의 확고한 철학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 문제에 집권자가 깊게 개입할 것인지, 아니면 자율성을 부여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면 추진에 혼선과 공백이 생기게 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프랑스 전시내각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갈파했다. 클레망소는 현대전이 군사 분야를 포함해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통합해 운영해야 하는 국가 총력전임을 오래전에 꿰뚫어본 것이다. 즉, 전쟁을 포함한 국방정책이란 정부가 설정한 국가안보 목표와 안보전략 기조의 틀 속에서 국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책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방 목표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이다. 이를 조금 더 현실적이고 알기 쉽게 설명하면, 북한의 도발과 전쟁의 위험을 막아내고, 한반도 문제 해결과 평화적인 통일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동북아 지역을 넘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국방 문민화가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변 안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외교·통일 정책과 국방 정책은 상호 긍정적인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때도 있지만, 반대로 서로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양자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다. 따라서 국방 정책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 예상되는 위협과 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외교·통일 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종합적인 틀 속에서 마련돼야 한다. 한국이 놓인 외교 안보 여건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국방 문민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합법과 인권의 기준에 맞춰야
귀중한 국민의 자제들이 군에서 받는 비인간적 처우는 하루빨리 극복돼야 한다. 정용일 기자

귀중한 국민의 자제들이 군에서 받는 비인간적 처우는 하루빨리 극복돼야 한다. 정용일 기자

둘째, 개혁이 군의 손 안에 머물러선 안 된다. 2018년 3월까지 국방개혁 2.0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국방개혁추진단이 구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문단 구성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이 넘도록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조차 임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누군가 임시로 하고는 있겠지만 청와대와 국방부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국방개혁은 체질 개선을 해야 하는 군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셋째, 국방개혁의 최종 수혜자는 국민이라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한반도의 고질적인 안보 불안에 더해 이를 막아내야 할 국방이 본연의 몫을 하지 못하니, 국민이 오히려 군을 걱정하고 있다. 군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는 불안감이 커지고, 군에 가는 젊은이들이 갖는 군복무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는 중이다. 국방이 모든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상황에서도 이 분야는 여전히 국민에게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이 점이 큰 문제다. 국민이 국방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고 안심하지도 못하는 상황인 만큼, 국방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근본부터 새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방개혁은 국방이 본연의 목적인 평화 관리를 통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위협을 관리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이 요구하는 ‘합법’과 ‘인권’의 기준에 맞춰 합리적으로 운영해나가야 한다. 기존의 선진국방, 자주국방같이 군이 중심이 되는 딱딱하고 무거운 국방 개념과 달리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 맞추고 국민이 국방 정책의 수혜자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방개혁을 구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잘못된 관행으로 가장 시급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군내 인권 경시 풍조다. 오랫동안 군은 글자 그대로 특수집단이었고 군인은 특수한 존재로 간주돼왔다. 군 간부는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과 무관하게 그냥 상급자였고, 국민개병제에 의해 군에 징집되는 병사들은 소모품이다. 아직도 군에선 인권 문제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귀중한 국민의 자제들이 군에서 받는 비인간적 처우는 하루빨리 극복되어야 한다.

넷째, 국방 부문 운영 혁신으로 효율성·투명성 강화도 중요하다. ‘국방개혁 2.0’을 통해 비밀주의·축소·묵인 등 나쁜 관행을 철저히 타파하고 국방 운영 전반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 국방 의사결정 과정의 복잡성과 형식주의를 없애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 진단과 아울러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 군사비밀 보호를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과도한 통제를 줄이기 위해 국방부와 군 정보·기무부대에 대한 민간 영역의 감시·자문 등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방 비밀보호 체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과도한 비밀보호를 지양함과 아울러 비밀보호 전담조직의 운영 개선 등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방위사업 비리 근절·차단과 청렴한 업무 환경 정착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국민 눈높이에 맞춘 국방개혁에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실천하려는 의지가 필요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정부의 새로운 국방개혁은 군이 주도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정부 차원의 개혁안을 마련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 정부와 군, 민간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초기 1~2년 안에 후속 개혁의 큰 틀을 확정하고 추진하는 신속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 여기엔 국회, 국방부, 군 현역 대표와 일부 예비역, 분야별 민간 전문가, 예산 당국자 등이 참여할 수 있다.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 제시된 대로 3군의 균형발전을 바탕으로 상부 지휘 구조와 인력 구조, 획득체계, 무기체계, 사기·복지, 국방운영제도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 핵심 과제를 선별하고, 진정으로 필요한 과제를 다시 뽑아 실천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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