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으로 고소하시죠.”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제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1월의 일이다. 이른 아침 걱정하며 연락한 지인의 전화를 그렇게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손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 1년 전 벗은 군복을 꺼내 다시 입어보았다. 그대로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따로 검색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마우스로 클릭했다. “딸각.”
해군 정복을 입은 한 장교가 ‘빔프로젝터’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동영상이 나온다. 한 토론자가 그 해군 장교를 지목하며 바로 노무현 정부가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 증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미 NLL을 포기하기로 북한과 합의하고 그 내용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장교에게 가리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딸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내 20년 군 생활의 최고 순간에 나는 ‘종북 빨갱이’ 해군 장교가 되어버렸다.
남과 북은 2007년 12월12일부터 12월14일까지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제7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었다. (역사적인 2000년 6·15 공동선언에 이은)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인 2007년 10·4 회담 이후 열린 국방부 장관회담의 후속 조치를 위해 개최된 군사회담이었다. 나는 이 회담에 대표단 보좌 및 남북 간 연락장교로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첫날에 남북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지역의 교류·협력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남북관리구역의 3통(통행·통신·통관) 관련 군사보장 합의서를 채택했다. 12월13일 오전 10시부터 ‘공동어로구역 설치와 평화수역 설정’에 대한 이틀째 회의가 계획돼 있었다. 당시 기억을 되돌려본다.
판문점 회담장에 갑자기 등장한 물건오전 09:00. 우리 대표단을 태운 버스는 아침 9시께 판문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육군 후배 장교와 함께 서둘러 북쪽 대표단을 인솔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으로 나갔다. 통상 통신장비 등을 실은 선발대 차량이 먼저 넘어왔다. 북한 평화자동차의 스포츠실용차(SUV)인 ‘뻐꾸기’에서 이것저것 내려놓았다.
오전 09:30. 잠시 뒤 군복을 입은 북쪽 대표단은 도보로 분계선을 넘어왔다. 분계선이라고 해야 벽돌 한 장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전부이건만 느껴지는 높이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 앞쪽에서 육군 후배 장교가 인솔하고 나는 맨 뒤에서 따라갔다.
회담장인 평화의집까지 불과 200여m를 걸어가면서 몇 번 만난 연락장교에게 인사말을 건네보았다.
“아침 식사는 했습니까?”
북한 연락장교는 슬쩍 곁눈질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전날과 달리 긴장한 눈빛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평화의집 입구에서 양쪽 대표단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대기실로 향했다.
오전 09:40. 회담 시작까지 20여 분 남았다. 북한 수행원들이 노트북과 빔프로젝터, 그리고 스크린 삼각대를 들고 2층 회담장에 들어왔다. 회담할 때 필요하다며 무작정 설치하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돌발행동이었다. 회담 때 별도의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사전에 통보하고 상호 합의에 따르는 것이 기본적 절차이고 예의이다. 일단 설치 중단을 요구한 뒤 보고했다.
오전 10:00. 모두발언 취재와 촬영을 위해 회담 시작 전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 기자단이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 통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군사회담은 10여 분만 회담장을 공개해왔다.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빔프로젝터를 중심으로 남북한 수행원들이 둘러싸고 대치 중이었다. 북한은 우리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미리 설치해 초점을 맞춰놓아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작동시키는 상황이었다.
잠시 뒤 북한의 빔프로젝터 설치 및 사용에 대한 상부 지침이 내려왔다. 북한이 회담 때 사용토록 하되, 기자들이 들어온 상황에선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받고서야 빔프로젝터를 둘러싼 수행원들의 대치 상황이 마무리됐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노트북 전원을 끄도록 요구했다. 북한은 순순히 노트북 전원을 끄고 화면도 접었다. 빔프로젝터의 빛도 사라졌다. 기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남북 수행원들도 모두 벽 쪽으로 물러났다. 나 역시 내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전원 콘센트를 뽑을걸…’ 하는 불안한 생각이 순간 지나갔다.
오전 10:30. 남북 대표단이 동시에 입장해 자리에 앉았다. 먼저 전날 합의한 3통 관련 군사보장 합의서에 서명한 것을 교환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모든 시선이 회담 테이블에 집중돼 있었다. 그 와중에 내 시선은 덮인 노트북과 꺼진 빔프로젝터를 향해 있었다. 어느덧 귀신에 홀린 것처럼 조금씩 그쪽으로 다가가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남남 갈등’ 일으키려는 작전오전 10:35. 회담 시작 지연을 두고 양쪽 대표들 사이에 설전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내 몸의 절반은 이미 회담 메인 테이블의 북쪽에 넘어가 있었다.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수행원 선배가 놀라 나오라고 눈짓을 보냈다. 모르는 척하고 눈을 빔프로젝터 쪽으로 돌렸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빔프로젝터가 저절로 켜진 것이다.
“어, 저거!”
북한이 일방적으로 주장해온 서해 NLL의 공동어로구역 도면이었다. 반사적으로 빔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북쪽 수행원 2명도 뛰어들었다.
“탁, 우당탕!”
덩치 큰 중좌(북한군 계급은 한국과 달리 소중상대 4개로 나뉜다. 따라서 중좌는 한국군 소령과 중령의 중간 정도 계급에 해당한다) 한 명이 빔을 가리고 있는 나를 세게 밀쳤다. 난 두 번 휘청했다. 회담장이 소란해지고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같이 밀치며 몸싸움을 할 것이냐, 아니면 버틸 것이냐의 선택이 스쳐 지나갔다.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내가 북한군 장교와 엉켜서 몸싸움을 하면 빔을 가릴 수 없다는 거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공동어로구역의 그림이 남한 언론에 나오면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도 스쳐 지나갔다.
“그 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남쪽 여론이 그렇게 무섭소?”
북쪽 대표가 태연한 척 발언했다. 그러나 북한의 분명한 의도는 영상 노출로 발생할 수 있는 ‘남남 갈등’이었다. 빔프로젝터가 꺼지고 기자들도 퇴장했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하루 더 14일까지 이어진 회담은 더 이상의 합의나 진전 없이 종료됐다.
영해 지키려 팽팽한 샅바싸움공동어로구역은 서해에서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고 서해의 평화적 이용과 제3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방지하기 위해 구상됐다. 2007년 ‘10·4 남북 정상 선언’을 통해 서해에서 남북이 우발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양쪽 견해차가 큰 탓에 애당초 합의가 어려웠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남한은 NLL을 기준으로 남북이 같은 면적을 공동어로구역으로 먼저 설정하고 이를 평화수역으로 지정, 확대해나갈 것을 주장했다. 반면 북한은 NLL과 자신들이 주장하는 계선 사이를 평화수역으로 우선 설정하고 그 안에 공동어로구역을 지정하자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을 따르면 공동어로수역은 NLL 남쪽에 만들어진다.
남한 안은 분명했고, 북한 역시 자기 안을 고집했다. NLL 포기는 없었고 사전에 합의된 것도 없었다. 오히려 북한을 설득하고 양보시키려 했다. 내가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키려는 NLL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NLL은 지금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몸싸움 사진이 신문 메인을 장식했다. 몸싸움 동영상은 당시 인기를 끌던 YTN ‘돌발영상’(https://youtu.be/514AbfTMAu0)에 며칠 계속 나왔다. 난생처음 댓글이란 것을 많이 읽어보았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 북한군에 밀리고 가만있는 모습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나보다. 당시 북한군과 몸싸움 끝에 넘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머리가 허옇게 센 나를 밀친 북한군 장교에 대해 ‘동방예의지국 운운’한 댓글에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실 나보다 계급도 높고 나이도 많았다.
“해군 장교는 땅에서도 NLL을 지킨다”라는 해군 제독 선배의 긴 글이 기억에 남는다. 반면 ‘잘나가던 남북관계를 훼방놓은 꼴통보수’라는 가슴 아픈 댓글도 적지 않았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 동영상으로 난 한순간에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2012년 11월 논객 2명이 인터넷방송에서 NLL에 대해 ‘끝장토론’을 벌였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토론으로 ‘단두대 매치’를 벌인다는 콘셉트의 방송 1회였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살얼음판 같은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던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국회의원 한 명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진위 여부를 차치해두고 지난 대선 기간에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결국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며 대선판을 뒤흔든 역대급 북풍 네거티브 공작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고 말았다.
NLL 둘러싼 거짓말 멈춰야2007년 평양에서 예정된 국방부 장관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하기 전 NLL에 대한 보고를 마친 국방부 장관에게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들었다.
“빈손으로 오셔도 좋습니다. 장관 의지대로 하세요.”
당시 이 이야기는 나만 전해들은 게 아니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은 회담 준비를 하는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격려이자 당부였다. 덕분에 당시 국방부 장관은 평양에 가서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NLL은 그동안 보수가 지켜온 것도 아니고 진보가 한순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NLL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통해 지킬 수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실을 가리는 의도적인 침묵과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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