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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엘리트

등록 2017-10-17 20:36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1968년 육군사관학교 입교, 1972년 육사 28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1999년 제35사단 사단장, 2002년 제2군단장, 2006년 합참의장, 2010년 국방부 장관, 2014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이라는 인물이 걸어온 내력이다. 대한민국 군의 최고 엘리트의 길이라 불러도 좋을 화려한 경력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의 속사정은 군부 최고 엘리트의 행로와는 사뭇 다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록히드마틴사와 김관진 </font></font>

국방부 장관 시절인 2012년 그는 생산된 지 45년이 되어 미국에서는 용도 폐기된 상태의 CH-47D 치누크 헬기 4대를 1500억원 들여 구입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2014년 실제 국내 도입됐다. 하지만 헬기는 최근 국방과학연구원 타당성조사 결과 기체 노후화로 성능 개량을 해도 소용없어 그대로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그는 2013년 차기 전투기 사업(F-X)에서 거의 도입이 결정된 F-15SE 기종 대신 갑자기 F-35A기로 기종을 바꾸도록 결정했다. 그 이유는 F-35A 도입 때 관련 기술 이전과 통신위성 제공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F-35A 제작사는 기종 결정 뒤 약속을 어기고 기술 이전은 물론 통신위성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2017년 대통령 국가안보실장으로서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돼 집무 정지된 ‘식물 상태’의 청와대에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 즉 사드(THAAD)의 국내 배치를 결정하고 도입해 일부 설치까지 마쳐 순발력 있는 ‘동물적 활약’을 감행했다. 하지만 사드가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가졌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의 강력한 경제 보복과 외교 마찰을 불러와 천문학적 손실을 일으키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알고 보니 이 세 사건에 관계된 치누크 헬기, F-35A 전투기, 사드는 모두 미국의 특정 기업 록히드마틴의 제품이었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우리는 흔히 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다른 기업의 비밀을 훔쳐내는 일 등을 하여 그 기업에 큰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산업스파이’라고 부른다. 아직 문제의 록히드마틴사와 김관진이라는 인물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결과적으로 록히드마틴이라는 미국의 일개 군수산업체를 위해 여러 차례 엄청난 국고와 국익을 축낸 인물이다. 나는 그런 인물이라면 스파이, 즉 다른 말로 간첩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두어도 그리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댓글 조작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돼 출국 금지를 당하고 머잖아 검찰 수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엄중한 범죄행위이지만, 그가 앞서 벌인 무기체계 도입과 관련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범죄행위와 비교하면 명령체계의 연결고리로서 불가피성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그 무게가 가볍다는 생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다</font></font>

오랜 냉전적 반공국가 체제에서 평생 군문에 속해 있던 인물이 보수우익적 사고를 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안보나 국방에서 미국 우선의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도 어렵지만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생 군인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그 경력의 최종 지점에서 미국의 일개 군수기업의 앞잡이가 되어 그가 지켜야 할 나라를 위난에 빠뜨리는 ‘간첩질’에 준하는 행동을 하는 것까지는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다. 더욱 참담한 것은, 우리의 군 장성 출신 중 이런 인물이 김관진 한 사람만이 아니었고, 앞으로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보장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이 나라에 언필칭 엘리트가 도둑이나 간첩이 되는 곳이 어찌 군대뿐이겠는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계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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