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1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침몰을 처음 인지한 시각이다. 이후 9시20분32초부터 청와대와 해경의 핫라인이 작동했다. 청와대의 첫 질문은 “그 여객선 조난 신고가 들어왔습니까”였다. 그러고는 “카메라 나온 게 있나요?”라고 물었다. 2분 뒤 청와대는 다시 전화를 걸어 “심각한 상태는 아닌가요?”라고 확인했다. 해경은 “침수되고 기울었다고 하니 일단 현장에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9분간 연락하지 않았다. 9시24분부터 31분까지다. 그 중요한 시각, 청와대가 왜 9분간이나 침묵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대통령 보고를 준비했던 것이다. 첫 보고는 10시가 아니었다. 9시30분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30분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 출석했던 해경 본청 경비안전국장은 “9시30분 이전에 갑판에 나와서 대기했으면 구조 세력이 도착했을 때 바로 구조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첫 보고를 받은 그 시각, 승객들의 대피 상황을 점검하고 구조 계획을 확인하고 매뉴얼대로 지시만 했더라면, 123정은 훨씬 더 많은 승객을 구조했을 것이다.
이후 청와대와 해경은 오전 9시42분과 54분 다시 통화했다. 10시가 되기 전 청와대는 이미 배가 “60도 기울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때부터 청와대는 계속 ‘구조자 인원수 확인’과 ‘사고 영상’만 요구한다. 보고 때문이었다. 부재한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를 올려야 했기 때문에 ‘페이퍼워크’(paperwork)에 넣을 숫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내려진 10시30분까지 청와대와 해경은 총 10차례 통화하는데 ‘영상이 아직도 안 구해졌느냐’를 직접 확인하는 통화가 네 번, 또 다른 세 번은 사고 지역 수심, 암초 여부, 구명조끼 착용 상태 등 사고 현장을 묘사하기 위한 질문만 던진다.
그리고 6시간45분 만에 나타난 대통령은 ‘이노센트 와이’(innocent why·순수한 궁금증)가 담긴 질문을 던진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등장한 시간은 오후 5시15분이었다. 온 국민이 완전히 침몰한 세월호를 목격했는데, 대통령은 뜬금없이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오전 10시30분과 똑같은 지시 “가능한 인력과 장비를 모두 동원해서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그리고 이후 48시간 동안 대통령은 딱 한 번 진도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내고 또 사라졌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그 48시간 동안 대통령이 내린 지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종에게 ‘체육 개혁을 하라’는 것이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더 이상, 말을 말자.
‘30분’ 전에 ‘특공대’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천 일이 지난 시점에 청와대는 당일 오후 12시54분 ‘해군 및 해경 특공대 선체 투입하여 생존자 여부를 확인 중’이라는 사실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때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이 보고는 박 전 대통령의 ‘이노센트 와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맥락을 만들어내기 위한 페이퍼워크일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참사 조작 의혹에 대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청와대는 마치 전임 정권 뒤나 캐고 다니는 흥신소 정권 같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6개월 내내 “쓰레기통만 뒤진다”고도 했다. 그래도 쓰레기가 뭔지는 아는 모양이다.
오전 10시 첫 보고가 이뤄졌다는 지금까지의 설명은 조작이었다. 오전 10시15분 첫 지시는 사실일까.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때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첫 지시를 내렸다고 헌법재판소에 밝혔다. 그러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2014년 국회에 출석해 “10시에 서면 보고를 드리고, 10시15분에 유선 보고를 드렸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출석한 김장수 전 안보실장 역시 오전 10시15분에 ‘보고를 했다’고 진술했다. 엇갈린다. 10시에 서면 보고를 올렸는데 아무런 지시가 없자, 재차 10시15분 유선 보고를 올렸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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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온 국민이 절망에 빠지는 데 충분했던 시간. 침몰하는 배에서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 허망이 날려보낸 이유조차 밝혀지지 않은 시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황을 보고받은 시간이 오전 10시가 아니라 오전 9시30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부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정부 공식 문서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10월12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안보실의 공유폴더 파일을 근거로 “위기관리센터는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서를 오전 9시30분에 보고한 것으로 돼 있는데, 6개월 뒤인 10월23일 작성된 수정 보고서엔 최초 보고 시점이 오전 10시로 작성돼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에 사고 내용을 최초로 보고받고 10시15분에 사고 수습 관련 첫 지시를 했다’고 줄곧 발표해왔다. 이런 해명은 사고 보고 시점과 대통령 지시 사이 시간 간격을 좁혀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실제 9시30분에 보고를 받았다면 지시까지 45분이나 차이가 있다. 군대와 경찰 등 국가자원을 총동원할 수 있었던 시간에 그는 뭘 하고 있었을까. 그 시간은 어디로 간 걸까.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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