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목소리 전쟁이 벌어진다. 총성은 2013년에 울렸다. 그해 5월, 손석희 당시 성신여대 교수가 MBC 라디오 을 떠났다. 주요 방송국에서 진행되는 아침 시사프로만 예닐곱 개다. ‘절대강자’였던 에 균열이 생기면서 라디오 시사프로의 전국시대가 열렸다.
‘포스트 손석희 시대’에 단연 돋보인 것은 CBS 라디오 (서울 표준FM 98.1MHz, 월~금 아침 7시30분~9시)다. 그해 여름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의 청취율 조사 결과를 보면, 청취율은 28.4% 감소했고 청취율은 무려 71.4% 증가했다. 2013년 는 포털 사이트 다음이 발표한 종합검색어 순위에서 라디오 부문 5위를 차지했다. 시사프로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포함됐다. 이듬해엔 ‘제26회 한국 PD 대상’을 받았다. 텔레비전이 아닌 라디오 프로가 이 상을 받은 건 역대 두 번째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탄핵심판사건 법률대리인단 서석구 변호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발언을 끌어내거나, 광고회사 포레카 강탈 과정에서 최순실 쪽이 특정인을 “묻어버리라”고 협박한 녹취파일을 ‘단독 보도’했다.
‘포스트 손석희 시대’ 최강자
2008년 첫 방송부터 10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김현정 PD. 차분하고 따뜻한 말투, 약자 편에서 강단 있게 맞서 싸우는 그에게 청취자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 PD를 1월19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에 엄청나게 많은 ‘마이크’가 존재하지만 대개는 힘있고 유명하고 돈 많은 자에게 돌아간다. 힘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 돈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마이크를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김 PD는 ‘라디오 키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선물받은 라디오에선 (KBS)가 흘러나왔다. 그는 “라디오를 듣노라면 마치 DJ와 마주 앉아 일대일로 얘기하는 것 같았다. 라디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통과 교감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다”고 했다. 라디오가 좋아서 PD를 꿈꿨다.
2000년 수습기자로 입사했지만 1년 뒤 CBS 라디오 PD에 합격했다. 음악방송을 제작하는 신입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꿈은 현실이 됐다. 그러나 삶은 우연한 계기로 다른 궤도를 탔다. 또 다른 시사프로 앵커가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로 투입됐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2008년 가 만들어지면서 오디션에 참가했고 마이크를 쥐었다. 그렇게 “삶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님을 깨달으며 상상하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30살, 여성, 프로듀서 출신 앵커…. 회사는 그를 믿고 발탁했지만 닳고 닳은 정치인을 주로 상대하는 아침 시사프로 진행자의 고충은 여전했다. ‘어딘가 결핍됐을 것’이란 주류 사회의 편견은 주변의 믿음만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궤도에 오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방송을 준비했다. 이른 아침 방송하고 오후 ‘강제 퇴근’을 권고받았지만, 해가 저물어도 늘 준비 시간이 모자랐다.
“실제 방송에서 10분 동안 모든 것을 끌어내려면 인터뷰 상대보다 제가 더 많이 알아야 해요. 하루가 36시간이라도 부족하죠.” 육아휴직과 재충전을 위해 시사프로를 떠났던 2년을 빼면 를 담당한 내내 그야말로 ‘방송 수도승’처럼 살았다. 수년간 개인적인 저녁 약속도 잡지 않았다. 행여 무너질까 싶어서다. 인터뷰하던 날도 김 PD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발부를 확인하기 위해 새벽까지 인터넷을 검색했다.
“하루가 36시간이라도 모자라요”
“30살에 를 했는데 인터뷰 상대 가운데 70대 정치인들은 아마 저를 목소리 맑은 50대 부장급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라디오여서 얼굴 보고 ‘깔고’ 들어가지 않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듯해요.”
성과는 뚜렷했다. 는 보통 시사프로처럼 이미 터진 이슈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단독 인터뷰’를 쏟아냈다. 2008년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무장경찰 파견을 논의하던 과정에서 무장단체 탈레반 대변인 칼리 유수프 아마디와 단독 인터뷰했다. 당시 아마디 대변인은 “한국인들이 아프간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 한국이 경찰을 아프간에 파견할 경우 카불에 있는 한국 민간 시설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PD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지구 끝까지 가서 찾아오자는 얘기가 실현된 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다 내쳐진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퇴임 뒤 첫 인터뷰, ‘박원순·안철수 후보 단일화 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첫 인터뷰 같은 굵직한 사건도 많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선언 당시 막 떠나려는 박 후보 차량 트렁크에 아예 올라타서 ‘저 김현정인데 인터뷰 요청 전화 꼭 받아주세요’라고 했어요. 박 후보한테 연락이 왔고 결국 단일화 뒤 첫 인터뷰를 따냈죠.” 이 내용을 제도권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서너 명이 뚝딱뚝딱 만들던 프로그램도 덩치가 커졌다. 손근필 책임PD를 중심으로 박철·유창수·문효선·민경남 PD와 권민철 기자, 이선주·정다솜 작가 등 베테랑들이 막강 진용을 꾸렸다. 최대 20년 안팎 경력의 기자와 PD, 작가로 잔뼈 굵은 이들의 합작품은 무서운 결과를 냈다.
김 PD는 “ 제작의 8할이 팀워크다. 개인의 역량 차이는 문제 되지 않는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열정에 자부심을 더한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짜리 호흡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탈레반과 단독 인터뷰하기도
2014년 그가 재충전을 위해 음악프로 PD로 자리를 옮기면서 “10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한 건 너스레가 아니다. 에서 이제껏 만난 인물이 무려 1만3천여 명이다. 휴식기를 빼더라도 김 PD는 최소 1만 명 이상 인터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1년 노우빈 훈련병 사망사건이었다. 노씨는 훈련 도중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급성 호흡곤란으로 숨졌다. 군의관 대신 의무병이 해열제 두 알을 처방한 부실 의료체계가 문제였는데 군은 책임지지 않았다. “인터뷰한다고 아들이 살아나냐”는 아버지 노동준씨에게 “하실 말씀 있을 때 꼭 연락 달라”고 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방송을 탄 사연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군 의료체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당시 노동준씨는 “인터뷰 요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는 전화를 매일같이 해왔다.
사연 깊은 얘기도 많지만 시사프로 특성상 정치인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최근 김 PD는 ‘정치인이 가장 선호하는 진행자’로 유명하다. “제가 인터뷰를 잘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웃음) 누구보다 ‘이슈를 먹고 사는 것’에 예민한 사람이 정치인이잖아요. 의 경우 답변하기 어렵거나 공격적인 질문을 많이 합니다. 솔직한 질문과 답변이 청취자를 끌어들이고 그게 결국 정치인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를 찾는 거예요.”
아직 인연을 맺지 못한 인물 가운데 가장 탐나는 인터뷰이는 ‘대통령 박근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원체 인터뷰를 하지 않았어요. 사람을 평가하고 가려낼 근거를 주지 않은 거죠.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대통령’ 자격으로 인터뷰가 성사되기 전에 물러날 것 같아 아쉬워요.” (웃음)
김 PD는 ‘사람들이 가려운 곳이 코인데 볼을 긁어주면 안 된다’는 게 인터뷰 원칙이라고 했다. “청취자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그러면서도 쉽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앵커로서 80점, 노력한 것만 따지면 9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선 ‘스스로 열정만 평가한다면’을 전제로 100점으로 점수를 올렸다. 그는 “정말 더는 못할 것같이 열심히 하고 있다. 방송은 내 것이 아니라 공공재이고 청취자 대신 마이크를 빌려 쓴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도록 애쓴다”고 말했다.
“정확하고 정직하고 쉽게 물어야”
인터뷰 말미 ‘라디오’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충분히 즐겁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엔 ‘숨’이 없잖아요. 인간미, 교감, 소통 같은 것이죠. 한밤중에 3번 국도를 달리면서 라디오를 들으면 진행자와 내 숨소리가 같이 들리잖아요. ‘혼자 차를 탔는데 조금 외롭네요’라고 라디오에 문자를 보내보세요. 신청곡이 곧바로 나올 수도 있어요. 라디오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울러 김 PD는 라디오가 자신에게 ‘호흡’ 같다고 했다.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라디오만 듣는 것 같아요. 그게 끊어지면 못 살 것 같은 존재인 거죠. 정말 라디오가 좋아요.”
글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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