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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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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되고 한국은 왜 안 되나요?”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법제화 진행 중인 대만의 인권 현실

대만 성소수자 핫라인 협회 ‘퉁즈’ 두쓰청과 펑즈류 인터뷰
등록 2017-01-17 21:13 수정 2020-05-03 04:28
대만 성소수자 단체 ‘퉁즈’ 활동가 펑즈류(영어 이름 레오·왼쪽), 두쓰청을 1월9일 서울 종로구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12년을 함께한 파트너다. 정용일 기자

대만 성소수자 단체 ‘퉁즈’ 활동가 펑즈류(영어 이름 레오·왼쪽), 두쓰청을 1월9일 서울 종로구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12년을 함께한 파트너다. 정용일 기자

“대만이 LGBT(Lesbian·Gay·Bisexual·Transgender)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로 부각하며 각 업계가 이들의 높은 소비력에 주목하고 있다. 새해 연휴 동안 아시아의 수많은 LGBT들이 타이베이를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꼽으며, 각종 행사 예매표도 이미 수일 전에 동났다고 한다.”

해외 성소수자 소식을 전하는 한국 블로그 미트르(mitr.tistory.com)가 지난 1월1일에 전한 뉴스다. 아시아의 성소수자들이 대만을 가고 싶어 하는 결정적 이유는 지금 대만에서 동성결혼(결혼평등·Marriage Equality) 법제화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최초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못하는 한국 같은 아시아 국가가 절대다수라 대만의 변화는 기적에 가깝다.

그런 대만에서 ‘동지’(同志)가 왔다. 중화권에서 동성애자를 ‘퉁즈’(同志)라고 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단체의 이름도 ‘퉁즈’다. 1998년 설립된 퉁즈는 대만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성소수자 단체다. 긴급 전화상담으로 출발해 지금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조직,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지원 운동, 성소수자 부모 모임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퉁즈의 정책실장 두쓰청(杜思誠)은 상근자 9명을 두고 여러 운동을 포괄하는 퉁즈를 “잡화점”이라며 웃었다. 그의 파트너이자 퉁즈 사무총장인 펑즈류(彭治류)도 함께왔다.

“동성혼은 쌍방의 당사자가 결정한다”

지난해 12월26일, 대만 입법원에서 민법 수정안이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한국으로 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넘겨진 것이다. 민진당 의원이 발의한 이 안은 “동성혼은 쌍방의 당사자가 결정한다”를 핵심으로 한다. 2015년 말 선거에서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은 선거 전 “결혼평등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결혼 법제화가 다가오자 대만의 개신교 일부도 반대에 나섰다. 입법원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한국과 같지만 다른 대만의 상황을 물었다.

대만의 결혼평등(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2016년 12월10일 대규모 행진을 했다. 대만 입법원이 결혼평등 법안을 심의한다고 알려지자 반대세력이 입법원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다. EPA 연합뉴스

대만의 결혼평등(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2016년 12월10일 대규모 행진을 했다. 대만 입법원이 결혼평등 법안을 심의한다고 알려지자 반대세력이 입법원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다. EPA 연합뉴스

흔히 동성결혼이라 부르는 결혼평등(Marriage Equality) 법안 발의 과정이 궁금하다.

두쓰청 원안은 민법의 ‘남녀’를 ‘배우자’(Spouse)로 바꾸고 ‘어머니, 아버지’를 ‘부모’로 바꾸는 것이었다. 성중립적 단어로 바꾸면 성소수자 권리도 자연스레 보장된다. 그렇게 하려면 300개 이상 법조항을 바꿔야 해서 하나의 특별 조항을 삽입하는 형태로 발의됐다. “동성결혼은 쌍방의 당사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 ‘부모1, 부모2’로 부르게 된다는 정보를 반대세력이 퍼뜨리고 있다.

대만에서도 일부 개신교의 반대가 극렬하다고 들었다.

펑즈류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의 반동성애 세력이 퀴어 퍼레이드를 가로막고 차량 아래로 눕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대만은 그만큼 극렬하진 않다. 대만에서 개신교 인구 비율은 5% 정도다. 불교와 도교 신자들은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는다. 종교적 이유로 동성결혼을 두려워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가 젊은이들의 인권의식을 자극했다. 2016년 말 뮤지컬을 함께한 성소수자 행사에 20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수였다.

한국의 지역구 의원들은 교회의 압력에 시달린다. 의원실에 전화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라, 동성애를 조장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펑즈류 대만도 그렇다. 그들은 어디서나 시간이 많은가보다. (웃음) 반대집회에서 목사가 전화를 독려한다. 하지만 압력이 일방적이진 않다. 결혼평등법을 지지하는 이들도 “고맙다”고 전화한다. 대만에선 10년마다 대규모 인구조사가 있는데, 2014년 조사에서 50% 이상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층의 지지율이 높다. 30대 이하에서 80%가 동성결혼을 지지했다. 직전 조사인 2004년에 비해 매우 높아진 수치다. 대만에선 2004∼2014년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04년 성평등 교육 법안이 도입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성평등은 물론 성소수자 인권교육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교안을 제공하고 강의를 나가서 정확한 정보를 알렸다.

타이베이·가오슝 등 동성 파트너 등록증 발급

변화는 공짜가 아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변화의 동력이 됐다. 지난해 자크 피쿠 대만 국립대 교수가 자살했다. 프랑스인인 그는 대만인 동성 파트너와 35년을 동거했다. 그렇게 오래 함께 대만에서 살았지만 파트너가 죽자 그는 단지 외국인일 뿐이었다. 혼자 남은 그는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었다. 파트너의 암 치료법에 대한 결정도 하지 못했고, 함께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대만인 파트너의 가족이 모든 권리를 독점했다.

그의 투신은 동성결혼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동성결혼 법제화가 진행 중이지만, 타이베이·가오슝·타이중 등 주요 시정부는 이미 동성 파트너 등록증을 발급하고 있다. 여기에 등록하면, 파트너가 사고를 당하거나 아플 때 배우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2004년 성평등 교육법 제정도 공짜가 아니었다. 당시 “여자 같다”고 놀림을 받던 한 남학생이 중학교 화장실에서 숨졌다. 머리 뒤 상처 외에는 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잘못 미끄러져서 숨졌다면 있어야 할 흔적이 몸에 없었다. 그 학생은 반친구들의 놀림을 당한 뒤 화장실에 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운동과 함께 성소수자 단체가 성평등 교육 법제화를 주장했다. 두쓰청은 “2004∼2014년 변화의 가장 결정적 이유는 성평등 교육 시행”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국민당의 성평등 교육 도입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에 따라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동성결혼 법안에 국민당의 일부 젊은 의원들은 찬성한다고 한다. 국민당은 민진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당이다.

대만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견줘 더 가시적이고 조직적이다. 펑즈류(왼쪽), 두쓰청은 “대만에서 동성결혼은 평등과 인권의 문제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정용일 기자

대만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견줘 더 가시적이고 조직적이다. 펑즈류(왼쪽), 두쓰청은 “대만에서 동성결혼은 평등과 인권의 문제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정용일 기자

한국, 일본과 달리 대만에서 성소수자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뭘까.

두쓰청 민주화 과정에 있기 때문일까. 2014년 해바라기운동과 입법원 점거운동 이후 청년 세대의 정치의식이 많이 변했다. 정치가 얼마나 삶에 중요한지 알게 됐고, 공공 의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두 운동의 결과로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도 교체됐다.

펑즈류 많은 대만인들이 동성결혼을 인권과 평등의 문제로 생각한다. 10년 전 중학교에 강연을 가서 ‘알고 지내는 성소수자가 있느냐’고 물으면 3명 중 1명 정도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90% 이상이 ‘있다’고 답한다.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성소수자 친구를 만나는데, ‘왜 내 친구들은 나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나?’ 고민하게 됐다. 10여 년 성평등 교육의 효과다.

동성결혼 법안이 입법원을 통과할 거라고 생각하나.

두쓰청 50 대 50이다. 많은 이들이 4월 입법원 본회의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일 통과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대단한 성과다. 이전까지 성소수자 인권은 대만의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 입법이 추진된 지난 3개월 동안 폭풍 같은 변화가 있었다. 성소수자 혐오가 등장하자 오히려 더 많은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동참했다. 연예인을 비롯해 많은 유명인들이 동성결혼 지지를 표명했다.

뒷걸음질하는 인권 수준의 상징

한국은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모범 국가였다. 펑즈류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지 않느냐”고 자꾸 물었다. 1990년대 후반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2000년대 초반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자 아시아의 인권운동은 한국을 부러워했다. 한국은 경제개발과 민주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나라로 인식됐다. 지난 10년은 진정 ‘잃어버린 10년’이 됐다. 그사이 강력해진 동성애 혐오 세력은 뒷걸음질하는 인권 수준의 상징이었다.

‘도대체 대만은 되고, 한국은 안 되는 이유’를 자꾸 캐묻자 두쓰청은 “한국이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한국은 앞서가던 시절이 있었다. 2008년 당선된 마잉주 국민당 총통의 공약은 이명박의 ‘747공약’을 벤치마킹한 ‘633플랜’(성장률 6%, 1인당 소득 3만달러, 실업률 3%)이었다. 한국처럼 10여 년의 후퇴를 겪은 대만은 평등과 인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성소수자 인권은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갈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열쇠는 대만의 민진당과 비슷한 정책, 역사를 가진 한국의 민주당, 지금의 야당에 투표하는 시민이 쥐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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