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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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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광화문 ‘브금’은요

‘순실의 시대’에 분노하는 다양한 음악들 만드는 사람, 퍼지는 방식, 즐기는 맥락도 변해
등록 2016-11-25 17:01 수정 2020-05-03 04:28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언제나 광장에는 노래가 있다. 1980년 5월 광주도청 앞 광장에서는 와 이 울려퍼졌고, 1987년 6월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과 이 간절한 민주화의 염원을 대신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때 시청광장에서는 늘 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100만 명 이상 운집한 2016년 11월의 광장에는 어떤 노래가 함께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100만 명 이상의 촛불집회 시민과 노동자, 여성, 학생, 청소년 등을 하나로 묶는 노래는 아직 없다. 지난 10월29일 토요일부터 주말마다 서울에서는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비롯한 집회가 계속 열렸다. 그때마다 스카웨이커스, 우리나라, 이승환, 정태춘, 제리케이, 크라잉넛을 비롯한 많은 뮤지션이 무대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는 윤민석의 창작곡 를 함께 부르자고 미리 안내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무대 위 노래를 듣고 환호하며 따라 부르기는 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 똑같은 노래를 합창하지는 않았다. 행진하면서도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그나마 함께 부르는 노래가 이 전부였다.

광장에서는 노래가 멈추지 않는데 왜 지금 우리에게 광장을 대표하는 노래가 없을까?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이들의 세대, 계급, 지역, 젠더, 취향이 다양해서 하나로 묶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과거의 투쟁가를 부르며 팔을 흔들고 싶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 노래는 너무 고리타분하고 무섭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이승환의 사랑 노래와 DJ트럭의 일렉트로닉 음악이 뜨거운 응원가가 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노래를 조금 생뚱맞은 대중가수의 노래로 여긴다.

촛불이 타오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노래가 만들어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노래는 마음이 움직여져야 만들 수 있다. 정서적 충격을 받고 화가 났다고 해서 그 감정이 바로 좋은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고 분노하는 노래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 그리고너악단의 와 , 조약골의 , 만수의 , 김호철의 , 윤민석의 , 이승환·이효리·전인권의 , 모세의 SS, 베스퍼의 Goal Cafe, 연영석의 개사곡 ,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 바닥소리의 , 디템포의 , 제리케이의 HA-YA-HEY 등이 지난 3주 동안 만들어졌고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다. 대부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노래다.

2300여 명 음악인 시국선언
지난 11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음악인들이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11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음악인들이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처럼 많은 노래가 빠르게 쏟아진 이유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해 근사한 녹음실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쉽게 녹음할 수 있고, 굳이 모든 악기를 실제 연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음반으로 만들지 않아도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발표하고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비주류 뮤지션들도 빠르게 음악으로 말하고 있다. 특히 힙합 장르 노래가 좀더 많다. 힙합이 비판적 성향을 가져서가 아니다. 힙합은 비트만 있으면 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대중의 공분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폭발적 반응을 낳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강력한 음악언어로 분노를 잘 담아낸 곡이 아직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노래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1980~90년대에 현실 비판적 음악은 민중가요 진영이나 신해철을 비롯한 극히 일부 뮤지션만의 몫이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음악인들의 사회참여는 서서히 늘어났다. 절차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시위 방식이 거리투쟁에서 촛불집회나 문화제로 바뀐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일어난 2008년 촛불집회는 투표나 소셜미디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외에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던 많은 사람을 거리로 불러냈다.

많은 음악인도 촛불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리에 나왔고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노래에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사랑노래도 촛불집회나 용산 참사 현장 같은 곳에서는 평소와 다른 메타포를 얻게 되었다. 노래가 어떤 현장에서 불리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2009년부터 진행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두리반 철거반대 투쟁은 시위나 집회보다 공연, 영화 상영 같은 방식의 예술행동을 전면화함으로써 많은 예술인과 젊은 세대를 끌어모았다. 두리반 철거반대 투쟁은 많은 뮤지션이 사회적 의제를 담은 현장에 참여하게 만들었고 이후 독립음악인들의 조합인 자립음악생산조합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두리반, 세월호의 음악이 있었다
가수 이승환씨가 11월1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서 노래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가수 이승환씨가 11월1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서 노래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이러한 변화를 거치며 지금 저항의 노래, 저항음악은 곳곳에 퍼져 있다. 장르와 젠더, 세대의 차이도 무관하다. 거의 모든 장르에서 저항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11월8일 음악인 시국선언에 참여한 음악인이 2300명을 넘어선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MC메타, 브로콜리너마저, 신대철, 신사동호랭이, 옥상달빛, 윤일상, 정원영, 차승우 등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음악인 외에 수많은 음악인이 평소 거의 참여한 적 없는 시국선언에 기꺼이 동참한 것은 단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만이 아니다. 음악인이자 시민으로, 시민이자 음악인으로서 발언하고 노래하는 일의 부담감이 확연하게 줄어들고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달라진 것이 음악인들의 생각만은 아니다. 저항음악의 지도 역시 예전과 달라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저항음악을 선도한 민중가요 진영의 뮤지션들은 수와 영향력이 확연하게 줄었다. 노래하는 나들, 꽃다지, 박준, 손병휘, 연영석, 우리나라, 지민주 등의 민중음악인이 꾸준히 활동하지만 이들은 조직된 진보진영 단체나 노동운동 진영 혹은 운동 경험자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민중가요는 사실 음악적 완성도만으로 영향력을 구축했다기보다 조직된 운동집단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하위문화에 가깝다. 민중가요의 쇠퇴는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다. 이는 학생회나 노조를 비롯한 운동집단의 쇠퇴와 무관하지 않으며, 일상적으로 일반 음악팬과 만날 수 있는 장을 확보하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언어를 갱신하거나 확장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민중가요를 대신하는 이들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을 기반으로 한 인디뮤지션들이다. 개인으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들과 뮤지션유니온, 자립음악생산조합 등의 모임에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들은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각종 사회적 현안에 자유롭지만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어지간한 집회와 문화제에는 이들의 음악이 있다. 세월호 참사 뒤 2014년 5월 뮤지션 사이와 정민아는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을 제안했다. 홍익대 인근 ‘걷고 싶은 길’에서부터 주차장 골목까지 어딘가에서 1인시위나 버스킹을 하자는 거였다. 결국 음악인 86명이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뮤지션유니온은 자체적으로 세월호 1주기 기억 음반 를 제작해 내놓았다. 사이와 정민아를 중심으로 한 뮤지션들은 세월호 2주기 추모 음반 을 내놓기도 했다.

인디음악인들의 노래는 세월호 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희정, 요조, 송은지를 비롯한 일군의 여성 뮤지션은 일본군 ‘위안부’ 추모 음반을 2장이나 만들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강제로 쫓겨나야 하는 재난의 현장에 늘 달려갔다. 서울 중구 명동 카페 마리, 용산구 이태원동 복합문화공간 겸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강남구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에서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음악가들이 노래하고 밤을 새웠으며 철거용역에 맞서 몸으로 싸웠다. 그리고 그 현장 기록을 음반에 담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철거반대 투쟁에서는 <take out drawing>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고, 그 뒤에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다. 인디신에서 널리 알려진 김해원, 있다, 황푸하 등의 음악인들이 참여한 음반은 소중한 삶의 터전에서 내쫓겨야 하는 이들의 고난과 사회적 폭력이 만연한 체제의 비정함을 완성도 높은 음악언어로 풍부하게 담아냈다. 록, 블루스, 일렉트로닉, 포크를 비롯한 장르의 다채로움과 고른 음악적 완성도는 과거 민중음악이 주로 담당한 역할이 이제 인디신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음악이 시대를 변화시킬 차례
서정가요와 록, 포크에 기반한 민중가요가 대체로 강한 어조로 사회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선언과 선동, 혹은 권유를 담당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인디신 음악은 관찰과 고백에 더 가까워 듣는 이들이 음악으로만 들을 수 있고, 음악적으로도 더 트렌디하고 다양하다. 이것은 운동이 하나의 의무이자 필연이던 세대와 운동 또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고 믿는 세대의 차이일 수 있고, 조직적인 대중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과 열린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차이일 수 있다.
가령 씨없는수박김대중이 부른 이나 김해원의 , 김목인의 는 어법과 스타일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 저항음악이 얼마나 다채로워지고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시대는 음악마저 변화시킨다. 이제는 음악이 시대를 변화시킬 차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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