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화 기자
2012년 한국에 이어 2016년 미국에서 다시 한번 믿고 싶지 않은 선거 결과가 나타났다. 여성, 유색인,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향한 혐오와 막말을 쏟아내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당장 그날 밤 KKK(Ku Klux Klan·백인우월주의 사상을 지닌 극단적 인종차별 집단)는 거리행진을 하며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남성은 “벌써부터 백인이 위협한다”고 트윗을 올렸다. 한 여성은 트럼프 지지자인 직장 상사가 차에 탄 채 총을 겨누는 트럼프 위에 “Get it, Pussy. We’re making America great again!”(차에 타, ××야.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중이야)라는 문구가 쓰인 사진을 자신에게 1시간에 한 번꼴로 보낸다고 했다. 어느 흑인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오늘부터 널 ‘니그로’(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라고 불러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공동정범’이 가장 원하는 것지금 미국 곳곳에서 트럼프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벌어지는 상황은 그를 당선시킨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마치 지금까지 어두운 구석에 꾹꾹 눌려 있다가 새삼스럽게 터져나온 듯, 트럼프의 막말을 ‘솔직하고 시원한’ 발언으로 환영했던 이들이 이제 마음 놓고 활개 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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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면에 여성, 유색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깊은 원망과 혐오가 자리한다. 그들이 오랜 시간 싸우며 권리와 평등을 획득해온 지난 시간을 ‘특혜’로, ‘백인 미국인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해온 시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를 지지한 가장 큰 집단이 백인 중산층 이하 남성이었다는 사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로널드 레이건 시절부터 공화당의 오랜 파트너인 우파 복음주의 기독교 집단은 버락 오바마 정부 기간에 공들여 이 혐오를 부추겨왔다.
지난 몇 년을 거치며 이 혐오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게이트’를 이유로 자칫 ‘여성혐오’는 더 자양분을 얻을 모양새다. 미 대선 투표 전후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미국인들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 아니냐” “누가 여성 대통령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한국을 보게 하라” 같은 문구가 쏟아져나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순실씨에 대해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라고 표현했다가 비판받고 사과했으며, 언론은 연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정유라 모녀에 대해 자극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기 바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거나 무당에게 홀렸다는 이야기도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그 원인을 개인의 가족사나 그로 인한 정신적·영적 문제로 해석해보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로 인해 지난 4년 동안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국민 모두가 어떤 욕을 해도 시원찮은 마음일 테다.
하지만 그것을 ‘여성 대통령’의 문제, ‘저잣거리 아녀자’의 문제로 환원해버리거나, 정신병·무당 같은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은 정작 중요한 문제를 가리고 특정 집단 혐오만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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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는 현재의 사태를 야기한 수많은 ‘공동정범’이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심의 초점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정유라 등 주변 인물들의 개인적 관계나 비리, 특히 ‘여성’ 문제로 맞춰질수록, 심지어 그 문제들조차 개인의 사생활이나 정신적·영적 문제로 환원될수록 그들을 향한 관심은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구체적으로 따져물어야 한다. 이것이 왜 ‘여성 대통령’의 실패가 아니며 정신병이나 무당의 문제가 아닌지 말이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은 “페미니스트들은 박근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자니까 여자 후보 지지할 거냐” 같은 거였다. 남성 유권자는 어느 누구도 이런 질문을 듣지 않는다. 남성은 당연히 정치적 주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성 정치인이 대표자가 되는 것은 치열한 정치적 투쟁과 인정의 결과이지만, 여성 정치인이 대표자가 되는 것은 ‘이변’이다. 또한 남성 정치인은 정치적 행보로 평가받지만, 여성 정치인은 언제나 정치에 앞서 ‘여성’으로서 평가된다. 하기에 아무리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남성 대표자의 실패는 남성의 실패로 환원되지 않지만, 여성 대표자의 실패는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로 환원돼버린다.
‘여성 대통령의 실패’가 아니다‘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은 퇴진 운동 중에 나타나기 쉬운 여성 비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박하여행이 만든 여성 비하 반대 홍보물. 박하여행 페이스북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따져보자. 박근혜 정부의 파탄은 과연 ‘여성 대통령’의 실패인가? 이미 선거 당시부터 박근혜는 그 자신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박정희와 1970년대의 유령을 안고 있었고, 그 유령을 부활시키고자 오랫동안 견고히 구축돼온 정치적 카르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박근혜는 한 명의 여성이기 이전에 이미 그 카르텔의 핵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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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근혜는 비혼이고 부모도 자녀도 없는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에 불리한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마 같은 조건의 다른 여성이었다면 당선은커녕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도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여러 논란 속에서도 후보가 되었고 결국 당선됐다. 이는 무엇보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박정희의 표상은 다른 무엇보다 ‘아버지’이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그를 통해 박정희의 부활을 기대했고 바로 그 때문에 다른 여성 후보라면 불리한 조건이었을 ‘비혼에 아이도 없는’ 상태조차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다. 박근혜 지지자에게 이는 아버지의 못다 한 뜻을 이루기 위해 국가를 가정으로 삼은 ‘자기희생적 가장’의 모습으로 인정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징 구도 속에 박근혜는 ‘여성’이라기보다 이미 ‘아버지 박정희’였고 ‘가난에서 구해줄 가장’이었다. 박근혜가 ‘여성’이란 사실은 오직 한 집단, 평생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양보와 희생을 숙명으로 체득해야 했던 50대 이상 여성에게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분들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이룰 수 없었던 꿈을 박근혜가 실현해주기 바랐다.
박근혜의 카르텔은 이런 정서와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힘으로 국정 지지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304명이 누구 하나 구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경찰의 물대포에 69살 농민이 맞아 사망하는데도 지지율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카르텔이 깨지자 국면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박근혜는 그의 비선 실세였다는 최순실과 함께 갑자기 ‘한낱 여자’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본질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박근혜의 지지 기반을 유지하며 이 정도 수준으로까지 파탄으로 이끌어온 것은 박근혜가 ‘여자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박정희의 유령을 통해 박근혜 카르텔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모든 사태를 ‘여자들의 문제’로 몰아버리고 꼬리를 자르려는 이 카르텔의 진짜 실세가 누구인지에 대해.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의 파탄은 ‘여자 대통령’의 실패가 아니라, 이 카르텔의 실패다.
정계·재계·언론계의 묵인지금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할 것은 박근혜의 심리 상태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이 사태의 실체인 ‘박근혜 카르텔’이다. 이 카르텔의 주요 세력 중 무당이나 이른바 ‘사이비 종교’만 있는 게 아니라 보수 기독교계 역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보수 기독교는 교회와 거리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기반을 마련해주고, 혐오 선동에 나서며, 정권을 비호하여 이익을 챙겨온 대표적 집단이었다. 그러나 ‘사이비’ ‘무당’ 얘기가 많이 나올수록 이들에겐 그만큼 빠져나갈 명분이 생긴다. 의 10월30일치 기사에 의하면, 전광훈 목사는 최근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전국에서 수천 통의 전화가 왔다. ‘박근혜 찍으라는 말 듣고 (그렇게) 했는데, 목사님 때문에 망했다’고 하더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 최순실과 최태민이 뒤에 있었다. 사이비 종교다. 그런데 대통령이 됐으면 쳐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심리적 공백 상태에 빠졌을 때, “최태민이라는 악령이 깃들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박근혜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연일 우리는 이들의 카르텔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되고 얼마나 많은 권력이 개입해왔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에게 500만원을 주고 무마하려 했던 삼성이 정유라씨에게는 수백억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이나,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황, 그리고 언론·문화·교육·종교계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비리의 네트워크는 우리가 살아온 시공간이 오히려 허구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충격을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정황이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포착됐고 주변 인물들은 물론 정계·재계·언론계까지 그들의 관계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종종 우려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중 일부 정황은 선거 때마다 대중에게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오래된 신문 기사가 새로운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정도의 상황이 될 때까지 그들의 카르텔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박근혜 이후’를 생각한다면그것은 한국 사회가 이들의 ‘가부장적 카르텔’을 알게 모르게 승인해왔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쥔 자가 세상을 움직이고, 나머지는 그들을 위한 ‘자원’이 되거나 종속되는 것을 질서로 여기는 카르텔, 민중은 그저 자신들이 주는 밥이나 먹고 일이나 하는 개돼지에 불과하다고 여겨온 카르텔,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상과 비정상의 자격을 가르며 서로를 향한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의 카르텔 말이다.
‘저잣거리 아녀자’를 비하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한, 이 카르텔의 자양분은 끊어지지 않는다. 또한 대통령에게 나라를 이끌어줄 ‘아버지’ 역할을 기대하는 이상 이 카르텔은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 이후가 되더라도 언제든 현재 미국의 현실이 한국의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기회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거리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 이 카르텔의 정체를 깨달은 우리가 정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정 ‘박근혜 이후’를 원한다면 그 ‘우리’ 안에 있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노인, 이주민을 확인하면서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가자. ‘다른 세상’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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