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태초에 얼토당토않게 들리던 말이 있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대한민국 권력 1순위는 최순실, 2순위는 정윤회, 3순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7년과 추징금 4340만원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다가, 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 받아 지난 4월 출소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02 시작은 얼토당토않은 사건이었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마카오 해외 원정 도박을 주선한 혐의로 범서방파 계열 광주송정리파 행동대장 이아무개(40)씨와 자칭 김태촌의 양아들이라던 김아무개(42)씨를 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두 달 뒤 이들이 운영했던 ‘정킷방’(카지도에서 빌린 불법 도박장)에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가 드나들었단 사실이 밝혀졌다. 정 대표의 도박 규모는 100억원대였다.
03 사건이 점점 더 얼토당토않아지기 시작했다. 정운호 대표는 유능한 변호사를 찾았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수임료 50억원에 낙점됐다. 그런데 징역형이 나왔다. 정 대표는 착수금을 돌려달라고 실랑이하다 최 변호사를 폭행했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고소했다. 검찰은 수사를 벌이다 정 대표가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를 통해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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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 무렵 얼토당토않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우 수석이 정식 수임계를 내지 않고 정운호 대표를 변론했다는 것이다. 홍만표 변호사와 우 수석이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쓰던 절친한 사이였단 것도 확인됐다. 우 수석은 “완전한 허구”라고 반발했다.
05 같은 날(7월18일) 얼토당토않게 가 참전한다. 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시세보다 높은 1300억원대에 사들였다고 폭로한다. 이 과정에 서울대 법대 2년 터울 선후배 사이인 현직 검사장 진경준이 개입했단 의혹 제기였다. 당시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민정수석 내사에 착수했다. 는 한발 더 나아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재단 자금 모금에 관련됐다고 보도한다.
06 청와대가 얼토당토않다며 극렬 반발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행위는 ‘국기 문란’이고 를 향해서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MBC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언론에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고 거든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송희영 편집인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 접대를 받았단 사실을 귀신같은 정보력으로 폭로한다. 송희영 편집인은 사퇴하고 TV조선은 안종범·우병우 수석 관련 보도를 중단한다.
07 두 달 뒤 9월20일 가 꺼진 불을 살리면서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전격적으로 앞에 세운다. 최순실의 등장이다. K스포츠재단 이사장에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센터 사장이 임명됐단 보도였다. 이후 는 한 달여간 24개의 1면 헤드라인 기사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열고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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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이 얼토당토않은 과정을 통해서였다는 것이 확인되며 최경희 총장이 사퇴한다. 그뿐만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까지 딴 정유라의 삶 자체가 통째로 특혜와 비리 속에서 얼토당토않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다. 청와대는 최순실과의 연관성을 계속 부인한다.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까지 고쳤단 의혹에 대해서 이원종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09 JTBC가 최순실씨의 태블릿PC를 입수해 대통령 연설문 작성 개입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한다. 얼토당토않게 순수한 민간인 최순실씨는 대통령의 휴가, 연설, 일정 등을 비롯해 국가 기밀까지 관장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는 대답밖에 못 내놓다가 JTBC 보도 뒤 20여 시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통해 관련 내용을 시인했다. 이후 TV조선이 다시 보도에 가세했다. 는 청와대가 직접 기업 모금에 관여했음을 연달아 보도한다.
10 포털 주요 검색어에 ‘하야’ ‘탄핵’ ‘퇴진’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왜 이렇게 됐는지 국민들은 영 알 수 없는데, 정두언 전 국회의원은 이 모든 게 “ㅇㅇㅇ의 복수극”이라고 말한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은 ‘얼’이 빠졌고, 권력이 왜 이렇게 작동됐는지 생각해보면 ‘토’가 나올 지경이다. 더 심란한 것은 이 ‘얼토’ 정권의 바닥이 어디인지 아직도 진행형이란 점이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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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과 모택동의 ‘국공합작’에 버금가는… 보수지와 진보지의 ‘좌우합작’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동단결!’”(@dogsul) 쏟아지는 ‘최순실 게이트’ 보도 와중에 ‘좌우합작’이라는 반응이 뜨겁다. 축구로 치면 TV조선()과 가 공을 주고받으며 골을 넣는다는 식. JTBC 역시 훌륭한 플레이어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묘한 경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국공합작은 8년(1937~45)이었다.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던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에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5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2분도 안 걸린 녹화방송. “저로서는 좀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시기는 취임 전후부터 청와대 보좌체계 완비 때까지로, 내용은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로 제한해버린 사과.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 발언과 반대되는 폭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월 넷쨋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17%로 곤두박질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매주 내놓는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10월25~27일 전국 성인 1033명 조사). 취임 뒤 처음으로 20% 벽이 허물어졌다. 일주일 전보다 8%포인트 더 추락. 한국갤럽이 매주 대통령 지지도 결과를 내놓기 시작한 2012년 1월 이후 최저치. 2012년 8월 첫쨋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도 최저치 17%와 동률. 기록 경신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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