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는 전수영 선생님의 부모님과 취재기자가 나누는 대화를 듣지 못했다. 고인의 빈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허락과 그것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로 인해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그 사연을 들었다면 내가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있었을까? 좀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중략)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정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면을 받아놓은 기자는 짐승이 되기도 한다.”
지난 4월19일 박승화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고 전수영 선생님의 어머니가 쓴 책 발간 소식을 듣고 올린 글이다. 전수영 선생님은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제자들을 구하다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국어교사다.
2014년 6월, 박 기자는 전수영 선생님의 ‘빈방’을 촬영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해도 되는 일인가?’라는 질문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희생자의 방을 찍게 될 터였다. 사진 찍는 기자로서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방에 들어갔을 땐, 최대한 서둘러 빨리 찍고 나왔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진가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의 빈방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 2014년 벌인 <font color="#C21A1A">‘기억0416’</font> 캠페인으로 시작된 ‘4·16 기억저장소’와 함께 희생자들의 빈방을 기록한다. 유족에게도, 사진가에게도 힘든 작업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왜 빈방을 찍어야 하죠?” </font></font>언젠가는 한 어머니가 서랍을 열고 옷장을 보여주며 설명하는데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어머니가 내내 울먹이며 말했기 때문이다. 왜 빈방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연수생들이 물었다. 박 기자는 “사회적인 큰 비극을 맞으면 유족들은 그 비극을 잊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는 그 비극을 잊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아무리 큰 비극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히곤 한다. 빈방은 그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이자, 그 사람이 존재했어야만 하는 장소다. 사진으로나마 ‘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이유다.
지난해 세월호 1주기 때는 작업 결과물을 모아 서울 통의동 사진 갤러리 ‘류가헌’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아직 못 담은 방이 많기에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함께하는 사진가들은 2009년 서울 용산 참사를 기록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다. 모임 이름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경남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의 현장 사진을 담아 해마다 ‘달력’도 만들어왔다. 달력을 판 돈은 후원금으로 쓰인다.
그는 전수영 선생님의 방을 촬영할 때의 자신을 ‘짐승’이라고 표현한다. ‘찍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와 ‘찍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결국 셔터를 누르는 것을 선택한 자신에 대한 비웃음이다.
사진기자들은 때론 ‘짐승’이 되어야 한다. 보도사진 역사상 가장 ‘짐승’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진은 무엇일까? 굶주려 숨이 끊어져가는 소녀와 그 아이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한 죄로 비난받은 케빈 카터의 사진이 아닐까. 이 사진 한 장으로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박 기자는 이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는 사진기자이고, 셔터를 누르고 나서야 사람으로 돌아온다.” 박 기자가 말하는 ‘사진기자’다.
박 기자는 1991년 처음으로 ‘짐승’ 같은 경험을 했다. 당시 명지대 1학년 강경대군이 시위 도중 사복경찰 체포조인 백골단에게 맞아 숨졌다. 강경대군의 노제 도중 서울 신촌 연세대 앞 굴다리 위에서 39살 여성이 분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장에 있던 박 기자는 셔터를 눌렀다. 몇몇 사람이 불을 껐고, 기자들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홍콩의 한 일간지는 “여인의 몸이 불타고 있는데도 불을 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라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아직도 박 기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불을 끄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사진을 찍었을까?”
올해 퓰리처상을 받은 시리아 난민 사진들은 너무 드라마틱하게 현장을 담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진 작가나 기자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시리아 난민 문제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됐던 알란 쿠르디의 사진도 그랬다. 해변에 아이가 숨져 있는데 사진을 찍고 지면에 싣는 행위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진기자의 숙명 </font></font>“그런 정도의 자극적인 사진이 나와야만 난민 문제에 주목하는 사람들 또한 비난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왜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상황이 벌어졌으니 내가 이 현장에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이 상황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그는 생각한다.
사진가들끼리도 사석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곤 한다. 여전히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카메라는 죽음을 좇지만, 죽음은 카메라를 찾아온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짐승’의 변명이 아닌 ‘사진기자’의 숙명이다.
하나의 장면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찍을 수 있는지 교육연수생이 묻자, 박 기자가 말했다. “어떤 현장이든지 처음에는 ‘모두 찍어야 한다’. 전체가 보이는 사진, 그다음에는 여러 부분들을 찍는다. 그러나 지면에는 한 장만 나간다. 수백 장 가운데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장만 선택된다. 결국 사진은 뺄셈이다. 그림은 캔버스 위에 무엇을 더하느냐의 문제지만, 사진은 프레임 안에서 무엇을 빼느냐의 문제다. 사진을 고를 때도 같다. 수백, 수천 장을 찍어두고 몇 장을 골라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찍은 사진을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빠지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더 적합한 사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정보가 담겼을 수도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 장의 진실</font></font>박 기자가 올해 엮어 펴낸 사진집 에도 그런 사진이 있다. 은 민족사진연구회가 1980~90년대 아스팔트 위 싸움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그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학생들이 빼곡하게 모여 을 부르는 사진이 있다. 당시엔 그저 학생 수백 명이 모여 있는 평범한 사진에 불과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르고 난 뒤 그는 그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이날 이곳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학생들은 대체 지금 다 어디로 갔나?”
박 기자는 “사진 한 장이 절대 진실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많은 문장으로 이뤄진 글에서 한 문장만 떼내어 전체를 볼 수 없듯이, 사진도 한순간만 뚝 떼낸다고 사건의 모두를 보여줄 수는 없다. 물론 모든 사진은 사실이다.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추모집회 때 태극기를 불태운 20대 청년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박 기자는 그 장면을 찍었다. 하지만 그때 찍은 사진들을 지면에 싣지는 않았다. 사진 속 청년은 뚜렷한 의도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충동적으로 보였다.
지면에 나가는 보도사진은 오히려 ‘평범한’ 사진일 때가 많다.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성의 없이 찍어서가 아니다. 진실을 훼손할 위험이 가장 적은 사진이 선택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든 이의 주관이 지나치게 이입되는 순간, 보도사진은 위험한 사진이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의 동시대를 찍고 싶다 </font></font>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묻자, 박 기자는 “좋은 사진? 멋진 사진?”이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시대를 찍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 위해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시절은 이런 시절이었구나’ 떠올릴 수 있도록.”
이채연 교육연수생 chloette020@naver.com※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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