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립추모관에 안치된 신원영군의 유골함에 한 조문객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가 죽었다.
7살에 세상을 떠난 아이 원영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화장실에 갇혀 의붓어머니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김아무개(38)씨가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원영의 아버지 신아무개(38)씨는 아이가 학대당하는 동안 귀를 닫고 있었다. 그는 김씨의 폭행을 묵인하고, 아이가 세상을 떠나자 김씨와 함께 주검을 유기한 혐의가 있다.
최근 몇 년 새 비슷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다. 경기도 부천 초등학생 주검 유기 사건, 울산 이서현 사건 등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 학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력해지기 전에 아동학대의 깊고 단단한 뿌리를 탐색하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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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MD(Merchandiser·좋은 책을 골라 출판사로부터 구입하고 온라인 서점에 진열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참고도서들을 추천받았다.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의 인문·사회과학·문학·청소년도서 분야의 담당자들이 각자 추천했다(상자 기사 참조). 이들 가운데 몇 권을 추려 읽었다.
아이 목소리 통해 들은 학대의 잔혹함소설 는 유독 신원영군 사건과 겹쳐 읽힌다. 원영은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행에 시달렸다. 소설에 등장하는 5살 아이 ‘장’은 침대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벽장 속에 갇혔다. 소설은 프랑스의 기자 출신인 심리학자, 오틸리 바이가 1987년 발표했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라고 알려졌다.
1982년 프랑스에서 4살부터 8년 동안 부모에 의해 감금당했던 아이가 발견됐다. 아이는 처음 몇 년간은 욕실 수도관에, 그다음 몇 년 동안은 침대 다리에 묶여 있었다. 발견 직전엔 벽장 속에 갇혀 지냈다. 아이가 당했던 학대는 잔혹했다. 음식 대신 토사물을 먹거나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거나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머리를 처박혔다. 2013년 10월 지속적으로 학대당하다 결국 사망에 이른 ‘이서현 사건’에서 아이가 학대당한 내용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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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쓰인 소설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문제를 호소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성인에 비해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혹은 증언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종종 외면받는다. 아동학대 사건이 살인에 이르는 극단적인 순간에 치닿기까지 구조 신호에 귀기울이지 않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아이의 시선에서 쓴 학대의 경험은 피해 아동의 내면을 이해하고 사건을 방지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아이의 시선으로 쓴 학대의 경험이다. 1961년생 데이브 펠처는 4살부터 12살까지,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그가 성인이 된 뒤에 쓴 이 책에서 유년을 돌이켜본 모든 문장의 결마다 잔혹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데이브에게 한정된 시간에 집안일을 하게 하는 게임을 시키고,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식사를 주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다. 자신이 정한 규칙을 어겼을 때는 암모니아나 주방 세제 따위를 입속으로 밀어넣고, 굶주린 아이 앞에서 음식을 버리고 폭언을 쏟아부었다.
배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고 몸 여기저기 구타의 흔적이 역력했음에도 그가 8년이나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노출됐고 신고의 여지도 있었지만, 데이브는 오히려 교사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집으로 돌아가 더 심한 폭력을 당할까봐 두려워서다. 이는 피해 아동들의 전형적 행동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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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장’ 또한 피해자 아동의 특성을 보인다. 아이에게는 그 상황에서 탈출할 기회가 두 차례 있었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다. 부모의 실수로 자물쇠가 열려 벽장을 탈출한 장은 허기를 채우지도,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 모습이 의붓아버지에게 발각돼 흠씬 두들겨맞고 벽장에 갇힌다. 몇 달째 행방이 묘연한 그를 찾으러 온 할머니가 벽장 바로 앞에서 장의 부모와 논쟁을 하지만, 장은 찍소리도 내지 못한다. 할머니가 방문한 순간, 장의 아버지가 벽장에 대고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탈출 희망 짓누르는 거대한 공포아이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억압하는 아버지에게 감금당했다. 구조의 희망에서 점점 멀어진 아이는 더 이상 벽장 바깥 세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똥오줌이 가득 찬 양동이 옆에 앉아서 어머니가 던져주는 마른 빵 조각을 조금 뜯어먹다가 몇 달째 빨지 않아 냄새가 지독한 이불에 몸을 누이고 잠들었다. 잠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의식은 점점 아련해졌다.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왜 재빨리 붙들지 못했을까. 어떤 공포가 탈출의 희망을 짓눌렀을까. 이런 피해 아동의 심리 상태를 잘 설명하는 책이 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주디스 허먼이 쓴 이 책은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에 주목하고 치유와 회복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1부 5장 ‘아동학대’ 부분에서 허먼은 피해 아동들이 병리적 환경에서 어떻게 성격을 형성하는지 설명한다. 성인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미 형성된 성격 구조가 파괴되고 바뀌지만, 아동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면 새로운 성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아주 끔찍하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피해 아동은 자신을 학대하고 방임하는 이들에게 병리적으로 애착하는 증세를 보이거나, 복종하는 태도를 보인다. 자기 안의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어른이 자신을 제압하고 위협하는 가운데, 세상 밖의 다른 어른들도 자신을 구출해주지 않는 태도를 보일 때 아이는 사회 전체에 배신감을 느낀다. 허먼은 이렇게 요약한다. “아이는 운명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끼며, 어쩌면 학대 자체보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허먼에 따르면, 때때로 피해 아동들은 차라리 자신이 학대받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최면 몰입 상태나 해리 상태는 학령기 아동, 특히 심각하게 학대받은 아동에게서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2차 피해 위험이런 아이들이 생존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어떨까. 피해 아동들은 하루빨리 자유롭고 힘센 어른이 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성장한 생존자는 여전히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버림받고 착취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양육과 보살핌에 대한 간절함은 대인관계를 망쳐버리기 일쑤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에도 과거의 무정한 방임에 의한 상처가 떠올라 불안, 우울, 분노가 유발되기 쉽다. 보살핌에 대한 갈증은 새롭게 애착을 형성한 상대를 이상화한다. 자동적으로 복종 반응이 나오고 상대의 권력과 권위에 취약하게 반응한다. 권위자가 다시금 학대를 도모한다면 여지없이 피해 상황에 빠져들기 쉬운 심리 상태인 것이다. 허먼은 한 생존자의 말을 빌려 “삶 속에서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던 폭력을 바라다본다”라고 썼다.
을 쓴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앨리스 밀러도 아동학대가 피해자의 신체와 정신에 각인돼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과거에 학대를 받았던 아이는 평생 가해자의 ‘좋은 면’들을 정당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하며 기대를 건다”며 모순에 빠지는 상황을 설명했다.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학대의 기억은 정서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육체적 질병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책에 나온 사례자인 파울라는 어린 시절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26살이 된 파울라는 노인이 되어 병에 걸린 삼촌에게 더 이상 분노하지 않고 심지어 사랑의 감정까지 느꼈다. 하지만 삼촌이 죽고 난 다음 어느 날 갑자기 심한 천식 발작이 왔다. 원인 불명 천식의 뿌리를 좇아보니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스스로 가해자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 심리 상태가 원인이었음을 알게 됐다.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의 저자는 아동학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계 사람들의 태도가,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다가 힘에 부친 나머지 저지른 고의 아닌 실수쯤”으로 여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훈육과 학대를 착각하는 사람들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쓴 는 일기장에 쓰인 아이들의 응어리지고 상처 입은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담았다. 저자 이호철은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는 부모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죽을 지경에 가닿아야 학대가 아니다. 글씨가 비뚤다고, 사소한 실수를 했다고, 부모의 기분이 나쁘다고 아이를 몰아세우고 폭력을 가하는 모든 경우가 학대에 포함된다.
를 쓴 허먼은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피해자가 신뢰, 자율성, 주도성, 친밀감 같은 기본 역량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의 밀러는 어릴 적 겪은 폭력의 기억이 몸에 저장돼 있다가 훗날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그 폭력이 자기 자신을 향할 경우 우울증, 마약, 중병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음도 지적했다.
온라인서점 MD들로부터 아동학대 문제와 관련해 읽을 책들을 추천받았다. 본문에 모두 소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소설, 심리학 서적, 청소년문학에 이르기까지 MD들이 모두 다른 책을 추천해왔기 때문이다. 아동학대가 그만큼 방대하고 오래된 문제라는 뜻일 수 있다.
■ 소설
1. 벽장 속의 아이
오틸리 바이 지음, 진민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벽장 속에 갇힌 5살 아이. 1982년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2.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폭력적인 아버지 오영제를 피해 도망가던 세령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며 시작되는 이야기.
3. 엄마를 기다릴게
스와티 아바스티 지음, 신선해 옮김, 작가정신 펴냄
폭력 대물림 현상에 주목한 소설.
4. 너는 착한 아이야
나카와키 하쓰에 지음, 홍성민 옮김,작은씨앗 펴냄
아동학대를 모티브로 한 5편의 연작 소설 모음.
5.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아버지의 거듭되는 폭력, 어머니의 부재. 상처 입은 소녀가 진짜 엄마를 찾으러 떠나 겪는 모진 세상의 풍경들.
6.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펴냄
아동학대와 가족 붕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풀어쓴 미스터리 소설.
7.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어머니의 구타, 무관심한 아버지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란 여장 노숙인의 이야기.
■ 사회과학
1. 괴물이 된 사람들
패멀라 D. 슐츠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이후 펴냄
가해자를 분석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아동 성폭력 가해자 인터뷰.
■ 에세이
1.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박하 펴냄
사형수 마이클 길모어의 친동생이 쓴 불행한 가족사. 폭력과 학대에 끝없이 노출됐던 가정에서 자란 소년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2.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의 당사자 데이브 펠처의 자전적 이야기.
3. 엄마 아빠, 나 정말 상처받았어!
이호철 지음, 보리 펴냄
초등학교 현직 교사가 쓴 아동학대 실상에 대한 보고서.
■ 심리학
1.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양철북 펴냄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등에게서 발견된 가정폭력의 흔적.
2.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지음, 부키 펴냄
가족에게서 받은 깊은 상처가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해 개인의 불행,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도록 한다.
3. 트라우마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열린책들 펴냄
폭력의 잔인성에 대해서 쓴 정신의학서. 정치적 테러든 가정폭력이든 폭력의 메커니즘은 동일하고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4. 개로 길러진 아이
브루스 D. 페리, 마이아 살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민음인 펴냄
아동 트라우마 전문가인 소아정신과 의사가 쓴 아동학대 피해자 치료기.
5. 친밀한 범죄자
웬디 L. 패트릭 지음, 김경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위험한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 심리.
■ 동화
1. 앵그리맨
그로 달레 지음, 황덕령 옮김, 스베인 니후스 그림, 내인생의책 펴냄
아빠 앵그리맨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보이와 엄마가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2. 우주 비행사 동주
김소연 지음, 이경하 그림, 별숲 펴냄
할머니에게 매질과 욕설을 받으며 기죽어 지내는 아이 동주가 그림을 그리며 상처를 다독이는 이야기.
3. 거짓말처럼 거짓말을 끝냈어
진 밴 뤄벤 지음, 길상효 옮김, 씨드북 펴냄
엄마에게 학대받는 소녀 위지가 이웃의 도움을 받아 아빠를 찾아가며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미메시스 펴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소년의 불행한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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