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사 출신 고영주(66) 변호사는 일반인에게 낯선 인물이다.
최근 그가 정치권 안팎에서 관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가 대통령 선거 직후인 2013년 1월 보수단체들의 신년회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라고 한 발언이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제기로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그는 당시 축사에서 “여러분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주신 것은 대한민국이 적화(공산화)되는 걸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며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적화될 것이 시간문제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 나오자마자 법 적용했어야”그는 자신이 수사한 1981년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었음을 확신한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이 사건을 변론한 문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단정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1981년 당시엔 사건을 변론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부림사건 관련자들에게 33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의 영장 없는 체포, 불법 감금, 고문 등으로 거짓 자백을 이끌어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부림사건은 사회과학 책을 읽던 부산의 학생, 교사, 회사원을 무더기로 구속한 공안사건이다.
문 대표는 고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다. 새정치연합이 즉각 대응에 나선 것은 고 변호사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의 인식이 위험하다는 판단이 작용해서다.
고 변호사는 지난 8월21일 MBC의 대주주이자 감독·관리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이사장에 선출됐다. 방문진 감사·이사를 거쳐 MBC 사장 임면권을 가진 이 기구의 이사장이 됐다. 그는 새누리당이 추천해 들어간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비상임위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공영방송(방문진 이사장)과 진실규명(특조위)의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한 자리에 그의 이름이 모두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보수 진영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법리적 이론가로 통하지만 진보 진영에선 ‘극우 편향주의자’란 시선을 받는다. 최민희 의원은 그를 “냉전시대 인물”이라고 평한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그가 1976년 사법고시(18회)에 합격한 뒤 주로 공안검사로 활약하며 굳어진 시각에서 기인한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된 1989년부터 “전교조의 목적은 초·중·고등학생들의 좌경의식화를 통해 민중민주혁명 역량을 키우는 데 있다”고 검찰 내부에서 주장해왔다. 그는 검찰에서 나온 이후인 2008년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의 상임위원을 맡아 전교조를 이적단체로 규정해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빨치산 등을 소재로 삼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인 1990년대 중반 “소설이 나오자마자 (이적성에 대한) 법 적용을 했어야 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기회를 놓쳤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당시 그를 만난 검찰 출입 기자들은 회고한다.
그는 1990년대 학생운동 조직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해 세력을 약화시킨 검찰 내부의 핵심 인물이지만, 그가 관여한 공안수사 가운데는 무죄로 판결나거나 사회적 논란을 부른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게 부림사건이다.
그는 지난해 부산지방법원과 대법원이 1980년대 부림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64년 김일성이 남조선에서 똘똘한 사람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 공부를 시켜서 사법부에 침투시키라는 교시를 내렸다. 북한의 사법부 침투 전술이 상당히 성공했다고 본다”는 생각을 지난 5월 인터넷방송 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1997년 검찰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인 신경림·고은 등 일부 문인의 글을 빼야 한다고 교육부에 요청했을 때 이를 주도한 인물도 고영주 검사였다. 유신 시절 정부에 저항했던 이 문인들의 성향이 “체제 부정적”이란 것이 검찰이 내세운 주요 이유였다.
초등학생용 통일교육 교재 를 써서 199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장희 당시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2003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보여주는 예로 꼽힌다. 기소할 때 이 책의 이적성을 감정한 이가 고영주 검사였다는 것이 당시 언론의 보도다.
수사기관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든 대표적 사건으로 거론되는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가 1998년 부장검사로서 지휘하던 서울지검 형사2부는 번데기·골뱅이 등 통조림 제품을 만들면서 포르말린을 방부제로 쓴 혐의로 업체 관계자들을 구속 기소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해당 업체는 긴 소송 끝에 결국 무죄를 받았으나, 부도가 나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뒤였다.
그는 2006년 1월 서울남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퇴직했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부터 공안 분야를 담당한 이력 때문에 참여정부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는 2013년 1월 보수단체 신년회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5년간 핍박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에서 나온 뒤 그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좌파 정권 종식 투쟁”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엔 “종북·좌파 세력 척결”에 앞장섰다. 그는 “좌파 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국가 정체성이 훼손됐다”며 2008년 설립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국가정상화추진위는 2010년 박원순 당시 변호사, 권영길·노회찬 전 의원 등을 ‘친북·반국가 행위자 100명’에 포함시킨 명단을 발표했다. 이후 통합진보당 해산 청원서 작성과 제출을 주도해 지난해 진보당의 해산을 이끌었다.
박원순을 친북·반국가 100명에 포함시켜그의 행보는 보수 정권의 코드와 대체로 일치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사학분쟁조정위원회(상자 기사 참조)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선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특조위에 들어갔다. 그는 특조위에서 유가족을 “떼를 쓰는” 이들로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정치권과 언론계가 주목하는 것은 방문진 이사장이란 최근 그의 직함이다. 그는 방문진 내부의 여당 성향 감사와 이사를 거쳐 총선을 8개월여 앞두고 MBC를 감독하는 방문진의 수장이 됐다. 공영방송을 관장하는 기구의 핵심은 공정성인데 방문진 이사장의 인식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의견과 관련해 “종북·좌파 세력과 북한 공산집단이 날 음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이들에게서 비난을 받는 것은 (내가) 애국활동을 했다는 징표”( 정은주 기자 고소장)란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을 ‘애국 인사’로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아는 법조계 인사는 “고영주 이사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그는 반공산주의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핵심으로 여긴다. 진보적 생각이나 정부 정책에 반하는 생각을 반체제의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고 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인사는 “보수계 인사가 방문진 이사장 등을 맡을 순 있다. 하지만 언론(방송) 관련 책임자라면 다양한 생각과 사상을 존중해야 하는데 자신과 다른 생각을 틀리다고 여기는 그의 인식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9월10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적화를 막았다” 등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과 인식에 대한 검증을 포함한 10대 과제를 국회의 언론 분야 국정감사 항목으로 제안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지난 7월 나는 ‘검찰, 질긴 인연 민변을 정조준하다’(제1069호 이슈추적)를 썼다. 검찰이 ‘과거사 바로 세우기’에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수임제한)로 수사 중인데 ‘표적 수사’ 의혹이 짙다고 비판했다.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짚었다.
그 기사에서 고영주 변호사와 그의 법무법인 케이씨엘이 맡았던 ‘김포대 분쟁사건’을 언급했다.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전·현직 위원과 그들이 속한 법무법인(로펌)이 분쟁 사학을 대리했다는 점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고 썼다. 검찰은 이에 대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지 않았다.
이런 내용의 보도를 이유로 고 변호사는 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그는 고소장에서 “애국단체 활동을 활발히 하다보니 국내 종북내지 좌파세력과 북한 공산집단은 (나를) 음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일부 사실과 허구를 섞어 모함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고소의 이유를 밝혔다.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사분위 회의록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김포대 분쟁사건은 200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립자 전신용과 그 아들 전홍건 학장(총장)의 대립이 극에 달해 김포대는 임시이사 체제로 전환된다. 2008년 아버지와 아들은 화해할 뜻을 밝히며 사분위에 김포대 정상화를 요구했다.
사분위는 2008년 6~7월 이사 7명 가운데 아버지 쪽 이사 2명(전운학·함영민), 아들 쪽 이사 1명(이춘재), 교육부 쪽 이사 2명(이제용·이정원) 등 정이사 5명을 정상화를 위한 이사회에 선임했다. 나머지 2명은 개방이사로 김포대 이사회가 직접 뽑도록 했다. 그러나 대립이 계속되어 2009년까지 개방이사를 선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사장과 총장도 공석으로 남았다.
2009년 8~9월 사분위는 김포대 사건을 다시 안건으로 다뤘다. 난상토론 끝에 김포대 개방이사(2명)를 사분위가 임시이사로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사분위 회의(제42차·제43차)에 고영주 당시 사분위원이 참석했다. 부자간 싸움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다가 2011년 3~4월에야 이사장과 총장이 선임된다. 두 사람 다 아버지 쪽 인사였다.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 새로 뽑힌 임청 총장의 석사 학위 논문(한양대)이 표절로 드러난 것이다. 사임하라는 압력이 쏟아졌지만 임 총장은 버텼다. 2012년 1월 사분위는 다시 임시이사 7명을 파견해 총장을 해임한다. 그리고 그해 5월 설립자 전신용이 사망했다. 김포대 분쟁은 셋째아들 쪽(전홍건)으로 균형추가 급격히 기운다.
그때 아버지의 유서를 공개하며 둘째아들 전홍덕씨가 ‘후계자’로 나선다. 특히 2008년 6월부터 아버지를 지지하던 전운학씨가 둘째아들도 지지했다. 하지만 사분위는 “설립자 유서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며 2013년 2월 셋째아들의 손을 들어준다.
이에 반발한 전운학씨가 교육부를 상대로 이사선임처분 취소소송을 냈고 그 사건을 법무법인 케이씨엘이 맡았다. 1·2·3심 모두 패소했는데 상고심(2014년)에서는 고영주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분위원으로 다룬 김포대 사건의 연장전을 맡은 것이다. 따라서 ‘검찰, 질긴 인연 민변을 정조준하다’에 언급한 내용은 사실 그대로이다.
나는 9월14일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해 기사를 쓰게 된 이유를 밝히기로 했다. 다음주(제1080호)에는 검찰 조사 후기를 쓰겠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이재명 ‘위증교사’ 무죄…법원 “통상적 요청과 다르지 않아”
이재명 ‘위증교사’ 선고 앞둔 서초동…“검찰 탄핵” vs “법정 구속”
친자 인정한 정우성…29일 청룡영화제 예정대로 참석
[단독] 김건희 초대장 700명…정권 출범부터 잠복한 문제의 ‘여사 라인’
[속보] ‘위증교사 무죄’ 이재명 “죽이는 정치보다 공존하는 정치 하자”
유승민 “일본에 사도광산 뒤통수…윤, 사과·외교장관 문책해야”
‘겨울이 한꺼번에’…수요일 수도권 첫눈 예보, 기온도 뚝
[단독] 북파공작에 납치돼 남한서 간첩활동…법원 “국가가 18억 배상”
[사설] 의혹만 더 키운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해명
한동훈, 동덕여대에 누워 발 뻗기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