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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질긴 악연 민변을 정조준하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 적용받을 수 있는 보수 인사 고영주 변호사는 놔두고 과거사 바로세우기 참여한 민변 변호사들만 법정에 세우는 검찰, 과연 그 속내는?
등록 2015-07-08 07:20 수정 2020-05-02 19:28
‘과거사 바로세우기’에 참여했던 백승헌·김희수·김형태 변호사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조만간 재판에 넘겨질 상황이다. 검찰은 ‘과거사 불법 수임 의혹 사건’이라고 몰아붙이지만 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따져 보면 형평성을 잃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드러난다. 한겨레

‘과거사 바로세우기’에 참여했던 백승헌·김희수·김형태 변호사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조만간 재판에 넘겨질 상황이다. 검찰은 ‘과거사 불법 수임 의혹 사건’이라고 몰아붙이지만 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따져 보면 형평성을 잃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드러난다. 한겨레

‘과거사 바로세우기’에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 검찰은 2008~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에서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뒤 관련 사건을 수임한 혐의로 김준곤(60) 변호사를 6월25일 구속했다. 김형태(59) 변호사는 2000~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경력 탓에 6월30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8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00~2002년 의문사위 비상임위원을 한 백승헌(52) 변호사와 2003~2004년 의문사위 상임위원을 한 김희수(55) 변호사는 검찰의 직접 조사 없이 재판에 조만간 넘겨질 상황이다. 검찰이 ‘과거사 불법 수임 의혹 사건’이라 부르며 한통속으로 몰아붙이지만 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전혀 다르다.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법정에서 유무죄로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따져봤다.

1. 변호사법 위반인가

현행 변호사법 제31조(수임제한) 3항은 “공무원, 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의 수임을 제한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정부위원회 활동을 이유로 검찰이 이 조항과 관련해 변호사를 처벌한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전·현직 위원과 그들이 속한 법무법인(로펌)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교육부와 분쟁 중인 학교를 대리해 사분위 전·현직 위원들이 소송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09년 2월~2011년 2월 사분위원이었던 검찰 출신 고영주(66) 변호사와 법무법인 케이씨엘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이자 사분위원이던 2009~2010년 김포대 임시이사 선임 안건을 다뤘다.

김포대 전 이사장인 전아무개씨가 2013년 4월 김포대 이사로 7명을 선임한 사분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1·2·3심에서 모두 패소했는데 이 사건을 케이씨엘이 맡았다. 특히 상고심에서는 고 변호사가 직접 변호인으로 나섰다. 한때 심판이었던 사분위원이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뛴 셈이다. 논란 당시 고 변호사는 에 “사분위원 때 다룬 사안과 상관이 없고 부자간에서 형제간으로 (소송) 당사자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추천으로 현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 변호사가 사분위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사분위가 심의한 분쟁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사건을 법무법인 케이씨엘이 맡은 사례는 더 있다. 사분위가 2009년 11월 조선대 이사 선임 절차를 밟을 때의 일이다. 조선대 설립자 후손인 박아무개(64) 자양재단 이사장은 대학 운영권을 되찾으려고 불법 로비 활동을 펼쳤다. 결국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의 변호인은 케이씨엘 소속 변호사였다. 성요셉교육재단 분쟁도 그랬다. 2009년 10월 사분위는 이 재단의 분쟁을 심의중이었다. 재단 쪽에서 분쟁이 끝났다고 보고해 교육부가 이사 7명과 감사 2명의 취임을 승인했는데, 과거 재단의 이사가 반발해 2011년 행정소송을 냈다. 그 원고 대리인도 케이씨엘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변호사법 제31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영주 변호사나 케이씨엘 등을 수사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배종혁 부장)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사위에 참여한 민변 변호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김준곤 변호사가 가장 심각한 경우다. 법원은 6월26일 “범죄사실의 주요 부분에 대한 소명이 있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변호사는 2010년 1월까지 과거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관여했던 ‘1978년 납북 어부 간첩사건’ 등에 대한 국가손해배상을 수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김 변호사가 과거사위에서 활동했던 조사관 2명을 고용해 소송 원고를 모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사 불법 수임 의혹 사건’으로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자 김 변호사는 민변을 탈퇴했다. 그는 “과거사위 활동기간이 연장되지 않아 29건의 납북 어부 사건 중 21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하지 못했다. 그 중 8건의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심을 원한다고 도움을 요청해 수임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고 변호사 등과의 형평성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김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여러 면에서 ‘표적 수사’의 의혹이 짙다.

2. 백승헌 변호사, 의문사위 비상임위원
2000년 10월~2002년 10월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1월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사위 위원회에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를 상대로 표적수사 하는 검찰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1월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사위 위원회에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를 상대로 표적수사 하는 검찰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백승헌 변호사는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제1기 의문사위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검찰은 교도소 수감자의 자살·사망 사건을 규명한 5건의 사건을 문제 삼는다. 당시 교도소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항의 단식하다 사망한 변아무개, 김아무개씨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최아무개, 박아무개, 손아무개씨는 사상 전향을 강요받는 과정에서 사망, 자살, 단식투쟁을 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다수의견에 따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5건의 사건과 당사자도 다르고 사건 내용도 다르지만, 백 변호사는 교도소에서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한 비전향 장기수를 변론한 적이 있다. 이들은 의문사위가 아니라 과거사위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는데 1심과 2심에서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파기환송해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검찰은 이들도 사상 전향을 강요받았기에 백 변호사가 과거 의문사위에서 “취급한” 교도소 수감자 사망 사건들과 “동일한 성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민변 회장도 과거사위 ‘불법 수임 의혹 사건’으로 수사받고 있는데 거듭된 소환에 불응한다”고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 변호사는 반박한다. “‘사상 전향 강요’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범주에서 모든 사건이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면 백인이 흑인에게 저지른 모든 불법행위를 다 동일한 사건으로 ‘취급했던 사건’에 해당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불필요한 소환 요구에 응할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은 기소 방침을 세웠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가 나더라도 지난 10여 년간 검찰과 대립각을 세워온 백 변호사를 손봐주겠다는 속셈이 읽힌다. 백 변호사는 2009~2013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달러 수수 사건을 맡아 1·2·3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아냈다. 검찰은 이를 치욕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백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민변 회장을 맡아 촛불집회 사건, 정연주 전 KBS 해임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에 대한 변호를 지휘했다.

3. 김희수 변호사, 의문사위 상임위원
2003년 7월~2004년 8월

김희수 변호사가 2003년 7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제2기 의문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를 맡았다. 이후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사건을 김 변호사가 수임했다며 이것이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검찰은 주장한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진상 규명에 참여한 장준하 의문사 사건과 유가족이 제기한 재심과 형사보상은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의문사위는 2004년 6월 장준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1975년 약사봉을 등산하던 장준하 선생이 단순 실족사인지, 아니면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 개입으로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밝히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 조사를 김 변호사가 맡은 바 있다.

반면 유가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은 장준하 선생이 1974년 유신헌법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다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형을 받은 형사사건이다. 2009년 6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13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형사보상 사건을 법무법인 정평이 같은 해 9월 제기했다.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민변 변호사들이 대거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김 변호사가 속했던 법무법인 창조도 2013년 12월 형식적으로 소송 위임장을 제출했다. 그 결과 김 변호사의 이름도 변호인단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소장을 작성하거나 변론기일에 출석하거나 보수를 받는 등 실질적 변론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게다가 법무법인 창조도 2014년 1월에 김 변호사가 그만뒀다.

김 변호사는 “검찰의 행태는 허위 사실 유포이며 인격 살인”이라면서 “(검찰 출신임에도) 검찰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를 표적수사 한 것이 분명하다”고 반발했다. 장준하 선생 유가족과 장준화기념사업회,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도 검찰의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4. 김형태 변호사, 의문사위 상임위원
2000년 10월~2002년 3월

검찰은 ‘과거사 불법 수임 의혹’ 사건의 수사 배경을 설명하면서 인혁당 사건이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1975년 4월9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인혁당 관련자 8명이 대법원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날을 국제법학자회(ICJ)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2001년 3월 의문사위는 인혁당 사건으로 수감 중 옥사한 장석구 사건을 직권조사했다. 당시 김형태 변호사는 의문사위 상임위원이었지만 2002년 9월 결정문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다. 위원회 내부 갈등으로 2001년 12월 중순부터 김 변호사가 업무를 하지 않았고 2002년 1월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가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맡아 신청한 것은 2002년 12월이다. 그마저도 4년이나 지난 2007년 1월에야 재심 재판이 열렸다.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협의회가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덕분이다. 이후 국가손해배상까지 이어졌다. 김 변호사의 수임료는 1%뿐이었다. 대신 배상금의 10%를 떼어 공익재단 4·9통일평화재단을 만들었다. 김 변호사는 “의문사위에서 장석구 사건을 내가 조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사건은 인혁당 재심이나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검찰은 김 변호사가 소환 통보를 했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며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대면조사가 필요 없다”고 체포영장을 기각했지만 김 변호사는 6월30일 검찰에 출석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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