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 두 명의 경찰이 서 있었다.
최용구(56·남·가명)의 심장이 뛰었다. 동자동(서울시 용산구) 9-20에서 강제퇴거돼 지난 5월 이사(용산구 밖)한 뒤 현관 초인종이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생에서 초인종 달린 문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문에 초인종이 달린다고 방이 나아지거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깨닫고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에 자동차 버렸어요?”
경찰이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최용구에겐 버릴 차가 없었다. 그는 운전면허증도 따지 못했다.
“그런 적 없는데요.”
본래 말을 더듬는 최용구에게 경찰은 경고했다.
“8월14일까지 용산구청에 가서 소명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도 있어요.”
‘경기50다4078’ 때문일 수도 있다고 최용구는 생각했다. 그 차의 자동차세 체납 통지서와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고지서가 동자동 한 뼘 방으로 셀 수 없이 날아왔었다.
방구석에 놓아둔 작은 배낭을 열고 종이더미를 뒤적였다. 온갖 우편물들이 가방 안에서 뒤섞여 쓰레기처럼 썩어갔다. 우편물에 눌려 배가 터진 바퀴벌레의 내장이 영수증마다 불쾌한 흔적을 남겼다. 2012년 5월 용산구에서 보낸 공문(‘자동차방치행위 피의자(참고인) 출석요구’)이 있었다. 출석 기한은 그해 5월24일이었다. 그의 것이 아닌 것을 그의 것이라고 규정한 국가기관·금융회사 등으로부터 14년간 추궁을 받아왔다. 아니라고 말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왜 아닌지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아저씨 취직시켜줄게.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2001년이었다. 서울역에서 노숙 중이던 그에게 “양복쟁이 남자들”이 접근했다. 노숙인 동료 한 명과 함께 남자들을 따라갔다. 식당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남자들은 두 사람을 그들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취직에 필요한 서류라며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 등을 떼달라고 했다. 최용구 이름으로 통장도 만들었다. 남자들은 고시원(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 방도 얻어줬다(최용구 명의로 경기50다4078을 뽑은 지 3일 뒤인 2001년 8월31일). 양복쟁이 한 명이 고시원에서 동거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증명서를 떼게 했고 서류에 이름을 쓰게 했다. 명의 제공자를 고시원에 붙잡아두고 동선을 확보하는 일은 명의도용(대여) 집단의 고유한 수법이다. 써먹을 수 있는 서류와 서명을 모두 확보하면 그들은 잠적한다. 최용구는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가끔 5만원씩 용돈도 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6개월째 되던 달 그들은 연락을 끊었다. 최용구가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누군가의 신분증을 위조하던 흔적들이 사무실 바닥에 널려 있었다.
고시원에서 쫓겨난 그는 다시 거리에 누웠다. 주소가 말소(2002년 1월5일)돼 기초생활수급도 끊겼다. 고시원에 같이 들어갔던 동료는 사기 공범으로 몰려 징역을 산 뒤 거리에서 죽었다. 2004년 7월 최용구는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주민등록을 살렸다. 한 달 뒤 그는 동자동 9-20의 주민이 됐다. 새 주소가 나온 직후였다. 세상의 모든 불법이 그의 탓이라고 말하듯 셀 수 없는 양의 증명서들이 배달됐다. 같은 날 서로 다른 기관이 서로 다른 과태료를 독촉하며 한꺼번에 발송한 것들도 있었다.
10여년 전 남이 한 대출로 현재 삶이 ‘벼랑 끝’지난 8월21일 과 최용구는 명의도용자들의 정체를 찾아나섰다. 나이스평가정보(서울시 영등포구)를 방문해 그의 대출 연체 기록부터 확인했다. 나이스평가정보는 개인의 비금융권 대출 연체 기록을 발생일로부터 7년 동안 보관한다. 7년이 지나 연체 기록이 해제되면 5년 동안 해제 상태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최용구는 연체 기록도 해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최소 12년 전에 이뤄진 대출이란 뜻이다. 명의도용자들이 어떤 업체를 통해 얼마를 대출받았는지 일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기록은 사라져도 채무는 남았다. 2003년 이전에 이뤄진 명의도용 대출이 2015년까지 (가)압류와 추심으로 그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청에선 최용구의 차량방치행위 처리 경과를 살폈다. 최용구는 8월14일 구청을 방문해 구리시 왕숙천 길가에 방치된 차와 자신이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구청 담당자는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로 보여 무혐의로 검찰에 지휘보고를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구제 조처는 기관별 장벽에 갇혀 있었다. 검찰이 무혐의를 인정해도 차량방치행위에 한해 적용된다. 경기50다4078의 소유주가 아님을 확증해도 최용구가 차주란 사실을 전제로 부과된 132건의 압류는 해제되지 않는다.
송파구엔 최용구의 이름으로 신고(2001년 12월20일)된 통신판매업체 ㅋ사가 있다. 송파구는 ㅋ사의 등록면허세 체납액 고지서를 매달 수년치씩 최용구에게 보내고 있다. 구청에서 ㅋ사의 신고대장을 확인했다. 입력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란 음성이 돌아왔다. 사업자번호엔 999-99-99999라고 적혀 있었다. 임의 입력이다. 전자상거래 업체로 신고를 받았지만 인터넷 도메인 주소도 기입돼 있지 않았다.
“2001년 신고 당시(구청이 아니라 서울시가 행정처리)엔 통신판매업 관련 법률이 허술했다. 사업자등록증을 첨부하지 않아도 ‘30일 이내 보완’을 약속받고 처리해줬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경우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구청 담당자)
잠실세무서는 “ㅋ사는 처음부터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이 업체는 현재 ‘청산종결’ 상태여서 직권말소를 추진하겠다”고 구청 담당자가 말했다. ㅋ사의 사업신고가 말소돼도 최용구의 이름으로 부과된 등록면허세는 취소되지 않는다. ‘일방적 명의도용’인지 ‘협조적 명의대여’인지 수사기관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찰은 도용과 대여의 경계 확인이 어려워 수사 착수가 힘들다고 했다. 명의대여일 경우 사기죄의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고, 명의도용일 경우 대여가 아님을 피해 당사자가 입증해야 한다.
최용구는 없었다. 최용구에게 책임 변제를 요구해온 기관엔 명의도용자들이 창조한 최용구(들)만 존재했다. 도용자들의 정체에 다가갈 수 있는 정보도 잡히지 않았다. 최용구(들)와의 관계를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상황이 최용구에게 계속되고 있었다.
도용·대여 확인 어려워 경찰 수사도 ‘난감’최용구는 최용구(들) 때문에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차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수급이 끊길 뻔했다. 추심업체가 통장을 압류해 장애수당(지체장애 6급)이 입금돼도 찾을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 최용구가 이렇게 막 팔려가지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그는 목에 칼을 갖다대거나 뛰어내리려고 건물 옥상에 오른다.
“죽으면 끝날까 싶어서.”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 채권자가 포기하지 않는 한 죽음도 그의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