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서울 용산구) 9-20 쪽방.
지하 1층과 지상 4층으로 쌓은 5층짜리 건물. 제2종 일반주거지역. 주 용도는 영업·주택. 건축면적은 86.31m². 연면적은 400.59m². 지하와 1층 면적 83.54m². 2층과 3층은 86.31m². 4층 60.89m². 전체 48개 방. 각 층(지하 1층~지상 3층)에 11개 방. 4층(꼭대기층)에는 4개 방이 있으며, 방 이외의 공간은 옥상. 층마다 공용 세면장 겸 취사장이 1개씩. 층과 층 사이에 공용 화장실이 2개씩. 48개 방 가운데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공간은 3개 방. 지하에 창고가하나. 4층에 관리인(현재 그만둠) 방 하나. 그리고 1층에는 교회가 쓰는 방. 현재 거주 중이거나 퇴거 사태 전후까지 거주한 주민의 방
은 모두 45개. 45명의 세입자(40~41쪽 ‘동자동 9-20 쪽방 주민 분류’ 인포그래픽 참조) 중 41명이 남자. 다수가 고령층. 80대(최고령자는 84살 남성)가 3명. 70대 이상은 최소(확인 안 된 경우가 있음) 12명(26.6%). 60대 이상으로 넓히면 최소 32명(71.1%). 장기 거주자가 많음. 최장기는 18년(2명). 16년 이상 산 사람은 최소 3명(6.6%). 11년 이상 거주자는 최소 9명(20%). 6년 이상 머문 주민들을 다 합하면 최소 20명(44.4%). 수급자는 최소 33명(73.3%)이며, 최소 31명(68.8%)이 노숙 경험. 종합하면 이렇다. 9-20 쪽방 주민들은 모두 극빈하다. 3분의 2가 거리를 거쳐 쪽방에 이르렀다. 한번 입주하면 오래 머무르며 작은 방 안에서 늙어간다. 나아질 것 없는 삶이 별일 없고 반전 없이 계속된다.
9-20 내부는 좁고 어둡다. 복도마다 먼지가 쌓여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다. 시건장치가 없어 방문마다 각양각색의 자물쇠가 주렁주렁하다. 방문 개폐는 부실하다. 문고리에 묶은 끈을 문틀 못에 둘둘 말아 열림을 막는다. 난방이 고장 났거나 방수가 불량하다. 냉골이거나 벽이 썩은 방이 많다. 방마다 소방기관이 제공한 화재경보기가 달려 있다.
4월10일 9-20 앞에선 고성이 오갔다. 누군가의 이사를 두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211호 주민 ㄱ(53·남)씨가 이웃 남자에게 따졌다. “‘그 사람’ 이사를 도와주면 ‘이 상황’에서 우리더러 다 나가란 소리냐.” 이웃 남자의 욕설 섞인 목소리가 쪽방 골목을 쩌렁하게 울렸다. “내가 그 사람 친구다. 내 친구 이사 도운 게 욕먹을 일이냐.”
‘그 사람’은 309호 주민 ㅇ씨다. ‘이 상황’은 2월 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강제퇴거 사태’다. 이날 오전 ㅇ씨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방을 뺐다. 쪽방 주민들의 이삿짐은 많지 않다. 값싼 중고 제품이나 ‘쓸 만한 고물들’이다. 이사 인력을 부르면 중고제품과 고물을 살 때 든 돈보다 이사비가 더 나올 수도 있다. 동네 주민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손을 빌리거나 아예 짐을 버리고 간다. ㅇ씨는 건물주가 퇴거를 요구한 이래 두 번째 이사한 사람이 됐다. 그의 이사를 도운 이웃 남자도 한때 9-20에서 살았다. ㅇ씨는 지방을 다니며 건설노동(비수급)을 했다. “집을 비운 사이 강제로 짐을 들어내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며 그는 방을 나갔다.
9-20 주민들은 건물 앞 소파에 앉아 날마다 ‘경계근무’를 선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햇볕을 쪼이며 낯선 이를 경계하고, 젊고 덩치 좋은 211호는 막대기를 들고 건물 앞을 지킨다.
지난 2월4일, 9-20은 ‘동자동의 경계구역’이 됐다. 건물주가 관리인을 시켜 방마다 퇴거 딱지를 붙였다.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보수공사가 필요하다며 3월15일까지 나갈 것을 통보했다. 주민들은 의아했다. 안전을 위해서든 편의를 고려해서든 건물주가 시설을 손봐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오랜 세월 방치하다 리모델링을 내세워 집단 퇴거를 강요하자 주민들은 황망했다.
누군가는 “노숙이라도 하란 말이냐”(201호 ㅂ씨)며 분노했다. 누군가는 “여기서 나가면 갈 데가 없다”(지하 7호 ㅇ씨)고 항변했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잠을 설친다”(204호 ㅇ씨)고도 했다. 1차 퇴거 시한 다음날(3월16일) 새벽 공사 업체가 건물에 비계 설치를 시도했다. “0.5 대가리”(야간수당)라도 더 받으려고 야간 노동일을 나간 303호 ㅂ씨가 ‘데마찌’(하는 일 없이 공치는 것)당한 뒤 잠을 설치다 공사 차량을 목격했다. 새벽잠 없는 201호 ㅂ씨도 공사 인력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픈 사람들까지 건물 밖으로 나와 공사를 막았다. 업체는 계획을 접고 돌아갔다. 그날부터 건물 앞엔 ‘경비용’ 낡은 소파가 들어섰다.
쪽방 주 골목에서도 가장 싼 건물
9-20 쪽방은 1968년에 사용 승인이 났다. 현재 건물주의 친정 부모가 1971년 12월 매입해 1993년 상속했다. 동자동에서도 월세가 가장 싸다. 보증금(과거 쪽방은 보증금이 없었으나 점차 보증금 받는 방 증가 추세) 없이 지하는 14만원, 1~3층은 15만원, 4층은 16만원(404호는 18만원)이다. 수도세·전기세도 방세에 포함된다.
대신 주거환경은 열악하다. 생활 불편이 심각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참고 살거나 일부는 직접 고쳐 사용한다. 공용 세탁기도 주민들이 돈을 모아 샀다. 2층의 경우 201호 ㅂ씨가 중고 세탁기를 10만원에 산 뒤 1만원의 사용료를 낸 주민들과 함께 쓰고 있다. 주거환경이 극악해도 이들은 동자동 다른 지역에서조차 방을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동자동 쪽방촌의 주 골목에 위치한 9-17과 9-19의 월세는 17만원이다. 다른 곳의 쪽방 가운데는 20만원을 넘어선 경우가 많다. ‘여인숙 골목’의 경우 25만~27만원 선을 형성한다. 주민들이 9-20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이유다.
퇴거 사태 이후 주민들은 서울시와 용산구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4월6일엔 주민 대표와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이사장 등이 박원순 시장을 만나 해결을 호소했다. 자치단체의 입장은 건물주 사유재산이어서 개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주민들 거주 보장과 임대료 현행 유지’를 조건으로 리모델링해줄 수 있다는 서울시 제안도 건물주는 거부했다.
건물주는 ‘퇴거 불응 때 명도소송과 단전·단수’ 방침을 내용증명으로 보내고 있다. 2차 공사 예고 시점은 4월10일이었다. 건물주는 공사 차량을 보내는 대신 서울역쪽방상담소장을 통해 ‘계속 거주를 위한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앞으로는 보증금을 받겠다. 월세를 지역 평균가인 21만4천원으로 받겠다. 이주비 성격으로 면제했던 두 달치 월세(주민들은 건물주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월세를 걷어 동자동사랑방에 맡겨둔 상태)를 다시 받겠다.
주민들은 거부했다. 보증금을 낼 순 없다. 월세는 올려줄 수 있다. 퇴거 논란으로 고통을 줬으므로 두 달치 월세는 줄 수 없다.
2차 퇴거 시한인 4월20일도 공사 없이 지나갔다. 건물주는 이날 에 “할 만큼 했으므로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고 했다. “내 재산을 내가 수리하는데 무슨 근거가 필요한가. 두 차례 이상 내용증명을 보냈으므로 단전·단수도 가능하다. 보수공사 하고 화재보험도 들어서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고 싶다.” 그는 “공사를 포기하면 공사업체에 준 계약금(공사비의 30%)을 날린다”며 “4월 안엔 일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벌써 2명의 퇴거자가 발생했다. 309호 ㅇ씨가 이사한 방은 9-20에서 맞은편 대각선으로 50여m 거리에 있는 7-2 쪽방 203호다. 앞서 2월에 방을 뺀 첫 퇴거자는 105호 ㅁ씨였다. 그는 관리인의 종용으로 골목 아래 9-15 쪽방으로 옮겼다. 그들의 이동은 50m 안에서 이뤄졌다. 빈곤의 길은 그렇게 짧았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