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0일, 14개 언론 분야와 7개 비언론 분야의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그 가운데 피처라이팅 부문 수상작은 (이하 <la>)의 다이애나 마컴 기자가 쓴 ‘캘리포니아의 모래 지대’(California’s Dust Bowl)였다.
2014년 봄, 캘리포니아 일대에 가뭄이 몰아닥쳤다. 마컴 기자는 캘리포니아 내륙 지역인 센트럴밸리의 시골 마을을 찾아다녔다. 7개월에 걸쳐 6개 마을을 방문해 가뭄과 싸우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이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가 70여 년 만에 재림한 형국이다. <la> 편집장이 적은 추천사에도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캘리포니아의 모래 지대’ 기사에서 존 스타인벡은 좋은 친구가 됐다.” 왜 존 스타인벡인가.
존 스타인벡은 기자이자 소설가다. 그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40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 수상작이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다. 1939년 발표된 이 소설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 오클라호마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 가난한 농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학 저널리즘’의 전통
<la>의 올해 퓰리처상 피처라이팅 부문 수상작 ‘캘리포니아의 모래 지대’는 이 소설에 대한 오마주로 평가할 수 있다. ‘모래 지대’(Dust Bowl)는 가 배경으로 삼은 1930년대 대공황기를 일컫는 단어이자, 대가뭄에 고통받는 농민을 다룬 일련의 기사 또는 소설을 통칭하는 단어다. 는 르포 기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설 집필 이전, 스타인벡은 대공황기 이주농민을 취재해 ‘추수하는 집시들’이라는 제목으로 에 르포를 연재했다.
원래 영미 언론과 영미 문학의 경계는 희미했다. 19세기 영미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찰스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은 기자였다. 그들의 소설은 당대의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후에도 잭 런던, 조지 오웰 등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고, 이를 숭앙한 후대의 기자들이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벡이다. 그들은 르포르타주 기사의 작법을 가미한 사실주의 소설을 집필했다. 예컨대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해 기사를 송고한 뒤, 이를 바탕으로 를 썼다.
‘피처 기사’의 어머니
다만 이때까지도 기자들은 기사부터 쓰고 소설은 나중에 썼다. 그 방식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에서도 여러 차례 ‘언론의 위기’가 횡행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1970년 무렵, 언론의 미래를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찾자는 ‘뉴저널리즘’ 운동이 시작됐다.
당시의 뉴저널리즘은 ‘문학 저널리즘’, 즉 디킨스·트웨인·헤밍웨이·스타인벡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기치였다. 대신 그들 선배와 달리, 기사와 소설을 구분하지 말고 문학적 구성을 차용하는 기사 또는 사실만 담은 르포 문학을 구현하자고 주창했다. 그런데 르포건 문학이건 장문의 기사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소설처럼 긴 기사를 어느 신문에 싣는단 말인가.
1970~80년대의 그 둥지는 주간지 였다. 이 매체는 르포도 싣고 소설도 실었는데, 이 매체의 단골 필자들은 르포를 쓰고 소설도 썼다. 소설과 기사는 서로 스미고 경쟁하며 살을 찌웠고, 미국 기자들은 를 통해 뉴저널리즘의 영역을 확대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미국 언론의 주류는 여전히 였다. 이 신문은 권력 고발을 중심으로 하는 ‘명명백백한 사실 중심 보도’의 진앙지였다. 오늘날 미국 언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 라고 나는 생각한다. 는 사실 보도의 전통, 는 대중 교감의 전통을 오늘의 기자들에게 물려주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가 1979년 ‘피처라이팅 부문’을 신설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는 오직 사실을 다루는 기사에만 상을 주었지만, 문학 저널리즘이 표방하는, 당대의 일상에 대한 생생한 고발의 정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피처라이팅 부문’은 미국 언론의 DNA에 깊이 각인돼, 1990년대 이후 미 주류 언론이 문학적 언어 전략을 구사하며 진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오늘날 미 주류 언론이 디지털 친화적 혁신을 거듭하는 바탕에는 ‘피처라이팅’의 누적된 성취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잠깐. 피처 기사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 기자들도 아주 오랫동안 피처 기사를 써오지 않았던가.
한국 언론계에서 피처 기사는 일종의 ‘최루성 미담 기사’다. 한국 기자들이 공유하는 피처 기사에 대한 관념은, 누군가를 한두 시간 인터뷰해 그 생애를 소략하면서 평소에 쓰지 않는 미사여구를 적절히 동원해 감동을 일으키는, 가급적이면 독자를 눈물짓게 만드는 기사다(그 결과 피처 기사의 이름을 내걸고 ‘감성팔이’의 싸구려 기사만 양산하고 있다).
미국 언론, 특히 퓰리처상 심사위원회가 생각하는 피처 기사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영어 단어 그대로 피처(Feature)는 사안의 특징 또는 특색, 나아가 본질을 잡아채는 기사다. 미국 언론의 피처 기사는 일련의 특집 기사이자 심층 보도다. 예컨대 발생 사건은 속보로 전하고, 이후 자세한 내용, 특히 사건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피처로 다룬다. 한국의 피처 기사는 말랑말랑한 최루성 인터뷰 기사지만, 미국의 피처 기사는 중대한 사안의 심층을 관련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종의 탐사보도인 것이다. 한국의 피처 기사는 일종의 곁가지 또는 양념인 데 비해, 미국의 피처 기사는 언론의 주류 또는 본류다.
그런데 퓰리처상 언론 분야의 14개 부문 가운데는 이미 ‘탐사보도 부문’이 따로 있다. 피처 기사가 심층 탐사의 성격을 지닌다면, 왜 굳이 따로 떼어 시상하는 것일까.
글의 품격 따지는 퓰리처 ‘피처’
퓰리처상 언론 분야에는 모두 14개의 하위 부문이 있다. 그 대부분에는 ‘보도’(Report)라는 명칭이 따라붙는다. 속보(Breaking News Reporting),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 해설보도(Explanatory Reporting), 국제보도(International Reporting) 등이다. 딱 2개 부문에만 ‘쓰기’(Writing)라는 단어가 붙는데, ‘피처라이팅’(Feature Writing)과 ‘사설라이팅’(Editorial Writing)이다.
사설과 피처 부문은 ‘글쓰기의 완성도’를 평가해 시상한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가 밝힌 피처라이팅 부문 심사 기준에도 “글쓰기의 품질과 독창성, 그리고 간결함을 주로 고려한다”고 나와 있다. 올해 수상작인 ‘캘리포니아의 모래 지대’에 대해선 “캘리포니아주의 가뭄에 영향을 받은 여러 삶에 대한 섬세한 초상화를 제공하면서, 그 기사에 독창적이고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관점을 제공했다”고 심사위원회는 평했다.
‘글쓰기의 품질’을 가려 뽑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좀체 짐작하기 힘들지만, 아마 그것은 권위 높은 문학상 심사와 맞먹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2014년에는 ‘피처라이팅 부문’의 수상작이 아예 선정되지 않았다. 출품작 모두 수준 이하라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이 부문 심사위원은 모두 6명인데, 그 위원장은 하버드대학 니먼재단의 큐레이터인 앤 머리 리핀스키가 맡았다. 니먼재단은 ‘문학 저널리즘’을 21세기적 흐름에 되살린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진앙지로 유명한 곳이다. 기자 출신인 리핀스키는 1988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또 다른 심사위원 베리 시겔은 <la> 기자 시절인 2002년 ‘피처라이팅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았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자가 영문학 교수를 맡았다는 것 자체가 문학 저널리즘의 위상을 입증한다. 그 밖에 [AP] 의 편집 간부 4명이 심사위원을 맡았다.
기사는 언어다. 특히 대중을 상대하는 언어다. 당연히 언어 ‘전략’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은 좋은 언어 전략 아래 태어난다. 좋은 기사는 좋은 언어 전략을 통해 좋은 문장을 벼려야 탄생한다. 그래야 더 많은 독자가 몰입해 교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다.
인터랙티브, ‘언어 전략’ 고민의 결과
더 많은 독자와 교감하려는 기자는 좋은 문장과 구조를 의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디지털에 적용한 것이 멀티미디어 기사 또는 인터랙티브 기사다. 철학은 기술보다 우월하다. 한국의 기성 언론이 디지털 환경에 좀체 적응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기술이 아니라 철학의 열등함에 있다. 한국 기자들은 기사의 언어 전략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마컴 기자는 6차례에 걸쳐 연재된 기사의 1회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구사한 언어 전략을 생각하며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두 명의 일꾼들은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잡초 위로 괭이질을 했다. “잡초가 많은 척하자고.” 프란시스코 갈베즈가 그의 친구 라파엘에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일주일짜리 일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항상 일자리를 함께 구했다. 좀더 나이가 많은 라파엘은 트럭을 갖고 있었다. 갈베즈는 영어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농담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 한 달 동안, 함께이건 혼자건, 그들이 처음으로 찾은 일감이었다.
원래 20명씩 두 그룹이 있었어야 할 들판에는 그들 두 사람뿐이었다. 농장 주인은 도박을 저질렀는데, 토마토 또는 양파를 재배할 충분한 물이 없는 들판에 가뭄 저항력이 높은 가밴조 콩을 심었다. 가밴조 콩의 누런 잎으로 판단해보자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도박이었다.
35살의 갈베즈는 그의 허리가 굽어 지치는 날까지 매일 일하다가, 이후 조금만 더 살면서 손자들과 노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자식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에게 신발을 사주기를 그는 소망한다. 그의 장남에겐 지금 한 켤레의 신발이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의 모래 지대’ 기사에는 이런 문장과 단락이 한없이 이어진다. 각 기사의 분량은 1500~2천 단어인데, 6회에 걸쳐 1만2천여 단어의 기사를 쓴 셈이다. 참고로 한국 신문의 1면 머리기사는 250~300단어고, 방송 뉴스의 리포트는 150~200단어로 구성된다.
이런 장문의 기사를 전재한 인터넷 버전에는 각 편마다 포토다큐·영상다큐·인포그래픽 등을 곁들였다.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는 이제 미국 언론의 기본 요소로 자리잡은 듯하다. 그러나 형용어구 없이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이뤄진 1만 단어의 기사를 읽도록 만드는 힘은 다양한 멀티미디어 장치가 아니라 글쓰기 그 자체에 있다. 그 동력으로 사진·영상·인포그래픽의 도구를 가동시킨다.
읽는 이유 “좋은 글”
기사 분량보다 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기사 게재 주기가 불규칙하다. 1회는 2014년 5월30일, 2회는 7월4일, 3회는 10월24일, 4회는 12월11일, 5회는 12월18일, 6회는 (수상 직후인) 2015년 4월14일에 게재됐다. 각각의 마을에 대한 충분한 취재를 마친 다음, 그때마다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규칙성이 없어 독자에게 혼란을 줄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테마를 다루면서도 각각의 기사에 독립성을 주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기사를 읽더라도 캘리포니아 가뭄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서술하고 있다.
국내 어느 대학에서 언론학 박사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지난해 겨울, 이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미국인 교수와 막걸리를 마셨다. 그는 를 탐독한다고 말했다. 꼬부라진 혀를 힘겹게 움직여 짧은 영어로 물었다. “의 어떤 면이 좋아?” 젓가락으로 오징어회를 힘겹게 집어들며 그가 짧게 답했다. “좋은 글”(Good writing)!
올해 봄, 딸과 함께 뉴질랜드 트레킹 여행을 다녀왔다. 의학 전문 기자로 일하다 은퇴한 어느 미국인 여성을 만났다. 그녀 역시 를 정기구독한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을 했다. “무엇 때문에 를 읽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늙은 여기자는 명쾌하게 답했다. “좋은 글”(Good writing)!
역대 퓰리처상 최다 수상 매체는 다. 바로 턱밑에 <la>가 있다. 좋은 글을 쓰는 기자를 많이 거느린 매체가 좋은 기사를 쓴다. 내 짐작이 맞다면, 올해의 퓰리처상 피처라이팅 부문 수상자 다이애나 마컴은 조만간 에 버금가는 위대한 사실주의 소설을 하나 써낼 것이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la></la></la></l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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