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말아야 할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들’을 하늘에서 맞이하길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지 말아야 할 숫자들이 보이고 있다. 45, 100, 300, 310, 끝없이 늘어나는 숫자는 한국 사회의 상승하는 위험 수위와 정비례한다. 쓰지 말아야 할 기록들이 쓰이고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기록’을 경신할 때 그 기록은 시대의 잔혹함을 새기는 철필이 될 것이다.
무엇이 그날들과, 그 숫자들과, 그 기록들을 맞고, 보고, 쓰게 만드나. 생(生)의 경계를 지키려 하늘에 오른 노동자들은 땅에 내려설 수 없어 사(死)의 경계로 떠밀린다.
300. 3월22일이면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의 차광호(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300번째 고공의 아침을 맞는다. 국내 두 번째 최장기 고공농성(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의 296일 철탑농성) 기록은 3월19일(297일째)부터 넘어선다. 그리고 4월1일 만우절. 여린 연두가 억센 초록이 되길 소망하며 움트는 4월의 첫날. 차광호는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을 앞질러 역대 최장기 고공농성자가 된다. 스타케미칼 사 쪽의 완고함과 차광호의 의지를 고려하면 ‘새 기록’의 탄생 가능성은 확실해 보인다. 이 ‘거짓말같이 끔찍한 기록’의 생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차광호는 “최장기 고공농성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그냥 내려갈 수도 없다”고 했다. “땅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올라왔는데 하늘에서 이룬 것 없이 내려가진 못한다”고 했다. 1월 초 스타케미칼 사 쪽이 교섭을 일방 중단(제1047호 ‘외롭다, 그래도 무너지진 않겠다’ 참조)한 뒤 대화조차 닫힌 상태다. 늦봄에 올라간 차광호가 해를 바꿔 다시 봄을 맞도록 사태 진전은 없다. 그는 “내게 데드라인은 없다”고 했다.
100. 3월22일이면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의 김정욱(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창근(정책기획실장)은 100번째 고공의 아침을 맞는다. 1월21일 65개월 만의 교섭에 합의한 뒤 노사는 5차례의 실무교섭을 했다. 사 쪽은 5차 교섭(3월5일)을 마치기까지 회사안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쌍용차지부는 실무교섭 중단과 본교섭(노-노-사 대표 교섭)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티볼리는 출시 27일 만에 ‘1만 대 계약’을 돌파하며 예상(2015년 판매 목표 3만8500대)을 훨씬 뛰어넘는 판매 속도를 보이고 있다. 고공농성 100일 이틀 뒤(3월24일)면 이유일 사장이 직을 내려놓는 주주총회가 열린다. 시간이 없다.
45. 3월22일이면 서울중앙우체국 광고탑의 강세웅(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장연의(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는 45번째 고공의 아침을 맞는다. 원청인 재벌 통신사들은 여전히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대리 교섭에 나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규직 전환 비용(개통 기사들의 급여를 떼어 4대 보험료 회사부담금과 퇴직충당금 사용 등)을 노동자들이 부담할 것을 요구해 반발을 사고 있다. 3월5일(총파업 105일째)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장을 지키는 100여 명을 남기고 ‘현장(일터인 홈서비스센터) 복귀 투쟁’으로 전환했다.
45일, 100일, 300일, 310일…. 노동자들이 최후의 벼랑으로 선택한 하늘에 ‘그들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시간은 무관심하다. 극단의 고공농성에도 반응하지 않는 가혹한 사회는 하늘 노동자들의 발끝을 어디로 몰아가는가. 다급하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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