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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노동자’의 첫 번째 귀가

고공농성 49일 만에 씨앤앰 노사, 해고자 복직 등 합의… 노조·시민사회 “사회적 연대의 결과”
등록 2015-01-06 16:05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2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광고판에서 50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씨앤앰 해고노동자 강성덕·임정균씨가 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정용일 기자

지난해 12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광고판에서 50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씨앤앰 해고노동자 강성덕·임정균씨가 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정용일 기자

2015년 1월1일은 새날이었다.

50일 동안 하늘로 치솟던 통화 신호가 고도 0m로 날았다. 씨앤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강성덕씨는 이날 ‘땅의 노동자’로서 전화를 받았다. 2014년의 마지막 날에 하늘에서 착륙한 그는 녹색병원(서울 중랑구 사가정로)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피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아직 완전히 땅의 생활로 돌아오지 못한 듯했다. “광고탑에서처럼 머리가 계속 아프고 근육통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퇴원하면 ‘무단점거’를 이유로 경찰조사도 받아야 한다. 그는 “여전히 착잡하다”고 했다.

2014년 12월30일. 고공농성 49일 만에 씨앤앰 원청-노조-협력업체 3자 간의 타결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밤 10시께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도 그는 “착잡하다”고 했다. 그와 임정균(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정책부장)씨는 광고탑 꼭대기에 서서 마지막 밤바람을 맞았다. “오후에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의 차광호 동지한테서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때 착잡함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와 쌍용차 굴뚝의 두 동지를 두고 우리만 내려와서 미안하다.” 25m의 하늘에서 ‘하강 전야’를 보내며 강성덕·임정균은 경북 칠곡의 45m 하늘과 평택의 70m 하늘을 생각했다.

12월31일 오후 5시25분. 그들을 태운 크레인이 땅으로 내려왔다. 크레인을 타기 전 임정균씨는 하늘에서의 마지막 발언을 했다. “동지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씨앤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한 자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를 지켜준 자리다. 그 자리를 지켜줘서 이길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고공농성 50일째는 광고탑 아래 동료들의 단식농성 10일째였다. 씨앤앰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 205일째였고, 비정규직 노숙농성은 177일째였다. 정규직은 44일째 총파업을 벌였다. 이날 집회는 ‘승리대회’로 진행됐다. 근래 고공농성 해제 현장에서 보기 드물게 조합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교착 상태를 보이던 3자 협의체는 2014년을 하루 남기고 극적 타결을 이뤘다. 씨앤앰은 협력업체 해고노동자 109명 중 이직·전직자를 제외한 83명 전원을 신규법인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40여 명만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던 사 쪽은 ‘전원 채용’으로 선회했다. 계약 해지와 폐업 상황에서도 해고 대신 고용안정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씨앤앰 매각 땐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노조의 요구사항이 모두 받아들여지진 못했다. 원직복직이나 씨앤앰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 아니라 새 협력업체 설립을 통한 원청과의 계약 방식이다.

이날 집회 구호는 “연대로써 승리했다”였다. 노조와 시민사회는 씨앤앰 사태 타결을 ‘사회적 연대의 결과’라며 높이 평가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자와 비해고자,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 성과를 만들어냈다. 원청이 흔치 않게 외주업체 고용 문제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도 인정할 만하다.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찬반투표에서 92.1%의 찬성으로 합의안을 가결했다.

재폐간을 위한 ‘첫 번째 귀가’가 이뤄졌다. 최근 며칠 동안 포근했던 날씨가 두 사람의 착륙 과정에서 급격하게 추워졌고 바람도 거세졌다. 칠곡과 평택에선 눈도 내렸다. 아직 남아 있는 두 개의 굴뚝은 이 추위를 견뎌야 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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