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장님’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11월11일 타결됐다. 한-뉴질랜드 FTA가 나흘 만에 뒤따랐다. 한국의 농·축산업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았다. 먹이사슬 끝으로 내몰린 농·축산업 종사자들은 최말단에 선 이주노동자들을 밟고 올라타도록 떠밀리고 있다. 국내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수난은 수난받는 한국 농·축산업과 겹쳐 읽어야 바로 보인다.
① 전국의 대파밭으로 실려다니며 혹사당한 한 이주노동자의 여정을 좇았다. ② 대파의 생산·유통구조(유통업자)를 살피고 14개월치 대파 관측정보(한국농촌경제연구원)를 모았다. ③ 쪼그라드는 농업노동력과 이주노동자 노동현실의 상관관계는 최근 발표된 논문 ‘생활양식으로서의 가족농과 그 지속가능성’(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11월7일 한국농촌사회학회)에 빚졌다. ①을 뼈대로 세우고 ②와 ③을 덧대며 다시 묻는다.
나쁜 사장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_편집자
경기도 고양시 대장동
① “선생님, 여기, 몰라요.”
ㅇ(22·여·캄보디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택시가 도착한 장소는 낯설었다. 외출 뒤 농장으로 돌아가던 ㅇ은 농장을 잃었다. 택시 기사에게 외국인등록증을 보여주면 주소지로 데려다줄 거라고 친구는 알려줬다. 등록증 주소지에 있어야 할 농장이 없었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은 그곳이 아니라며 기사에게 다른 주소를 불렀다. 등록된 주소지와 다른 장소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ㅇ은 그때 알았다.
ㅇ은 2013년 5월 인천공항에 내렸다. 한국은 ‘커다란 빌딩’이 솟은 나라였다. 그는 캄보디아 캄퐁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커다란 항구’란 뜻의 마을이었다. 한국에 오느라 5천달러(현재 환율로 약 556만원)를 썼고 3천달러를 빌렸다. 한국어능력시험에서 173점(200점 만점)을 얻었다. 희망하는 제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높은 점수(농업은 훨씬 낮은 점수로도 가능)였다. 한국에서 농업 쪽 계약서가 왔다. 거부하면 언제 새 계약서를 받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사인했다.
‘사장님’은 ㅇ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으로 데려갔다. 계약서상 근무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였다. 그는 4개 장소 41개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대파를 수확하고 심었다. 타이,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6명이 같이 일했다. 미등록 노동자도 있었다. 컨테이너 숙소에서 살았다. 사장은 서울 서대문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② 하우스 대파는 틈새시장이다. 남쪽 겨울 노지 대파가 끝난 뒤 봄 대파 수확 직전까지 4월 전후로 수도권에서 출하한다. 겨울철 한파와 4월 저온 등으로 월동 대파의 생육이 부진했다. 국내 출하 물량도 감소했다. 대파 1kg당 가락시장 상품 도매가격은 4월 상순 1990원(중품 1760원)에서 하순 2090원(중품 1950원)으로 상승했다.
③ 삼성전자 한 개 기업의 2013년 매출액은 228조원이었다. 같은 해 농·축산업 전체의 매출액은 60조원이었다.
2013년 7월1일~8월31일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② 7월 대파의 주 출하 지역은 경기도다. 가락시장 하루 평균 반입량은 전월보다 10% 적은 180t이었다. 주산지의 강수량 증가와 병충해로 출하량이 감소했다.
① ㅇ은 ‘보내지기’ 시작했다. 전날 밤 사장은 노동자들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어디로 가고 왜 가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출발했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도착했을 땐 비가 내렸다. 비닐하우스는 없었고 모두 노지 밭이었다. 고양시에서 이동한 노동자들이 비를 맞으며 파 작업을 했다. 이주노동자가 18명이었고, 한국인 노동자가 4명이었다. 남자는 뽑고 여자들은 다듬어 한 단씩 묶었다. 사장의 밭은 아닌 듯했다. 사장이 소유한 밭이라면 제초작업부터 시켰을 것이다. 고양에선 그랬다. 고생하자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고 ㅇ은 마음을 동여맸다.
③ ‘ㅇ들’ 없인 사장의 대파 농사도 불가능하다. 농촌에서 농사지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2003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농업노동력의 몰락을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9년이 흐르는 동안 농가 평균 가구원 수는 2003년 3.2명에서 2012년 2.6명으로 떨어졌다. 농가 평균 연간 농업노동 투입량은 1613시간→1204시간으로, 임시 농업 종사자 수는 0.49명→0.32명으로 감소했다. 거꾸로 1인당 노동시간은 464.2시간→1005.6시간으로 껑충 뛰었다. 가족 노동력을 최대치까지 활용해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1970~2012년 농가수·농가인구(15~65살)도 248만3천 호·743만8천 명에서 115만1천 호·165만8천 명으로 추락했다. 농업 현장에선 ‘공공근로사업 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들린다. ‘그나마 일할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버린다’는 푸념이다. 이주노동자 고용신청 날마다 농업인들이 농협 앞에서 밤새 떨며 줄 섰다는 이야기도 새삼스럽지 않다.
2013년 9월1일~10월30일 강원도① 사장이 ㅇ과 노동자들을 강원도로 데려갔다. 강원도 날씨는 추웠다. 풀부터 먼저 뽑는 밭이 있었고, 제초 없이 파만 수확하는 밭도 있었다. 고랭지 대파는 크고 굵었다. 수확한 파는 타이 남자가 트럭에 실어 사장 아들과 서울 가락시장으로 운반했다. 이주노동자 15명과 한국인 7명이 같이 일했다. 잠은 모텔에서 잤다.
사장이 노동자들을 이동시키는 경로는 국내 대파 주산지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5월 경기도 하우스 대파가 끝나면 6월부터 11월까지 경기도 일부와 강원도 평창 쪽으로 주산지가 바뀐다. 11월 하순부턴 전북 부안·완주와 전남 영광에서 대파가 주로 난다.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진 전남 진도와 신안 등 섬으로 산지가 옮겨간다.
② 경기·강원에서 긴 장마와 폭염으로 병충해가 확산됐다. 전국 도매시장 반입량이 전월(8월) 대비 3% 감소했다. 9월 평균 도매가격은 1450원으로 전월보다 10% 높았다. 고랭지 대파 ‘포전거래’(밭떼기)는 80% 이상 이뤄졌다.
③ 1~2인의 가족 노동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노동시간은 연간 1800시간 규모다. 고용노동력 확보가 절실한 농가는 연간 노동 투입이 1800시간이 넘는 중농 이상의 농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농업 구조조정과 농가 생존 방안의 하나로 영농 대형화가 제시됐다. 대형화가 옳은 길인지는 이견이 있다. 규모를 키워 수익을 내야 할 때도 인건비가 딜레마다. 생산비용은 뛰는데 농·축산물 가격은 떨어진다. 비용을 아끼려면 값싼 노동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농·축산업인들이 이주노동자를 찾는 이유다. 농·축산 분야 이주노동자는 2003년 923명 입국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4년 9월 현재 등록 노동자는 2만3687명(여성은 7352명)이다. 전체 이주노동자 중 농·축산업 종사자 비율은 10%를 넘어섰다. 미등록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시설채소 농가가 많은 경기도와 축산농가가 많은 충남에 각각 9068명(39.6%)과 3207명(14%)이 체류하고 있다.
2013년 11월1일~30일경기도 고양시 대장동
① 고양시 사장의 밭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4월께 수확할 하우스 대파를 심었다.
③ ㅇ의 사장은 농업인 겸 ‘산지유통인’이다. 산지유통인은 포전거래로 농산물을 매입해 경매에 넣는다. 포전거래는 자금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산지유통인은 대부분 농사를 겸한다. 수도권에 본인 소유의 비닐하우스나 임대 하우스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농업인 신분을 가지면 세제 혜택(농업소득세와 부가세 면제)을 받을 수 있다. 포전거래가 끝나면 농민은 밭에서 손을 뗀다. 대파 관리와 수확은 산지유통인의 몫이 된다.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수확기에 산지유통인들은 외부 노동력을 조달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전문작업단’이라 불린다. 전문작업단은 특정 작물의 수확기에 맞춰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절농업 노동자 집단’이다. 일종의 ‘십장’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팀장이 노동자를 모아 산지유통인과 구두계약 뒤 채소를 수확하고 단 작업까지 한다. 전문작업단은 비공식 노동시장이지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일용직(‘놉’)도 확보하기 어려울 만큼 농업현장의 노동력이 말라버린 까닭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포함된 전문작업단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엔 팀장이 이주노동자인 경우도 목격되고 있다. 특정 사업장에 묶이지 않고 이동해야 하므로 이들은 주로 미등록 신분이다. 산지유통인인 ㅇ의 사장은 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 포전거래한 밭의 대파를 수확하게 했다. 전국의 대파 산지로 데리고 다니며 사실상 전문작업단 역할을 시킨 것으로 보인다. 수확량에 비례해 지급해야 하는 전문작업단 비용보다 훨씬 싸다.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은 탓이다.
2013년 12월1일~2014년 1월1일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① 사장이 멀리 남쪽으로 ㅇ을 데려갔다. 대파 단지와 염전이 붙어 있었다. ㅇ과 노동자들은 사장이 밭떼기한 대파를 뽑아 다듬고 묶었다. 일을 마치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서 잤다. 사장은 어디론가 자러 갔다.
겨울 노지 대파는 따뜻한 남쪽에서 재배된다. 여름엔 중부지방을 거쳐 강원도 고랭지까지 재배단지가 올라간다. 내려갈 땐 중부를 거치지 않고 남부로 직행한다. 남쪽 대파들이 김장철에 맞춰 출하되기 때문이다. ㅇ의 사장도 이주노동자들을 이 경로에 따라 이동시켰다.
② 주산지가 경기·강원에서 호남으로 이동하면서 일시적 공급 부족으로 가락시장 반입량이 3% 감소했다.
③ 이주노동자가 농·축산 노동 투입량 전체에서 차지하는 몫은 5.4%다. 고용노동만 놓고 보면 36.7%를 점한다. 이주노동자가 농·축산업 생산력에 ‘결정적’(crucial) 존재가 됐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의 ‘지속 가능한 노동환경’ 조성이 한국 농업의 중요한 정책 과제가 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4년 1월2일~15일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①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떴다. 영광에서 6시간 걸려 섬에 닿았다. 밭떼기한 겨울 대파를 작업했다. 휴일 없이 매일 12.5시간씩 일했다. 계약서상 노동시간은 하루 11시간이었다. 한 달 노동시간은 226시간으로 돼 있다. 308시간(이틀 휴일)이어야 맞다. 실제로는 325~379.5시간 일했다. 미지급 초과노동 임금은 800만원이 넘었다. ㅇ은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출렁이는 마음을 달랬다.
조선시대 문헌엔 밭에 소금을 뿌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섬의 짠 기운이 신안 대파의 맛을 돋운다. 해풍도 풍미를 배가한다.
2014년 1월16일~2월11일경기도 고양시 대장동
① 보름 만에 고양시로 올라갔다. 사장은 신안에 노동자 4명을 남겨 뒤처리를 맡겼다. 전라도에서 밭떼기한 대파를 싣고 와 사장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다듬었다.
흙대파는 수확한 현지에서 단 작업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흙을 털고 겉껍질을 까는 작업은 산지유통인의 수도권 하우스로 옮겨 처리하기도 한다. 주로 대형마트로 납품된다. 노동자들은 하우스 대파 관리도 동시에 한다.
② 상품 1kg당 가락시장 평균 도매가격은 1030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47% 낮았다. 2014년은 대파 생산이 워낙 많았다. 지난해 겨울부터 날씨가 좋았다. 진도군은 2~3월 두 차례에 걸쳐 190ha의 대파를 폐기처분했다. 양파 가격이 싼 것도 원인이었다. 양념 채소인 대파와 양파의 소비는 50% 가까운 대체율을 보인다. 둘의 가격은 동반상승하거나 동반하락한다. 양파는 마늘의 영향을 받는다. 양파와 마늘은 재배 지역과 시기가 비슷해 생산에서 대체율이 높다. 몇 년 전 국내 마늘이 부족해 수입을 하면서 마늘 농가 일부가 양파 재배로 전환했다. 한 농작물의 가격은 여러 층위의 영향을 받는다. 수입개방은 농가소득을 흔드는 가장 큰 ‘외래변수’다. 불안정한 농가소득은 고용노동을 흔들고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압박한다.
2014년 2월12일~5월5일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도
① 임자도를 갈 때보다 2시간이 더 걸렸다. 사장은 ㅇ과 노동자들을 섬에 내려둔 뒤 다시 고양시로 돌아갔다. 사장이 밭떼기한 봄 끝물 대파를 작업했다. 이주노동자 16명과 한국인 노동자 10명이 일했다.
“계약서보다 일을 많이 하는 건 참을 수 있다”고 ㅇ은 말했다. 자신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쳤다.
“열심히 했어요. 비가 와도 열심히 일했어요. 몸이 아파 약이 필요했을 때 사장님은 ‘아프면 그냥 캄보디아 가’라고 했어요. 동료들한테도 ‘약 사다주지 말라’고 했어요.”
지난 9월17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ㅇ에게 초과노동 체불임금 469만원을 지급하라’고 사장에게 명령했다.
③ 한국의 농업은 거대한 전환기에 있다. 농·축산 분야의 상시노동을 이주노동자들이 채워가면서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농업노동자가 출현하고 있다. ‘농민’은 ‘사장님’이 되고 ‘일꾼’은 ‘노동자’로 옷을 갈아입는다. 반면 현행법은 ‘농업에 노동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정부는 변화하는 현실을 법체계로 담아내려는 의지도 없다(제1036호 ‘법 밖의 그림자 노동’ 참조).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동상이몽’은 이 현실에서 발생한다. 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는 적지 않은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를 최저임금 이하로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농업노동의 중요 상수가 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 대우받고 싶은 기대를 배반당한다. 논리가 부러진 계약서(제1034호 ‘약속을 배반하는 비정한 계약들’ 참조)를 가운데 두고 양쪽의 거리는 자석의 양극처럼 만나기 힘들다. 고용주-노동자를 서로 등 돌리게 하면서 고용노동의 주춧돌을 모래 위에 세우는 시스템이 근로기준법 제63조(농·축산 분야는 휴게·휴일·근로시간 규정 적용 예외)다. ‘생활양식으로서의 가족농과 그 지속가능성’ 논문을 발표한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사업장 이탈이 많다는 이유로 2012년 정부는 베트남(당시 최대 송출국)을 농·축산업 특화국가에서 제외했다. 지금은 캄보디아 노동자가 가장 많은데 가시(근로기준법 제63조)를 빼내지 않으면 머지않아 베트남처럼 제외될 수 있다. 그다음엔 어느 국가 노동자로 대체할 것인가.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인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의 고용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의 농업생산량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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