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일까 의도일까. 국제앰네스티의 한국 농·축산 이주노동 보고서(‘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제1033호 표지이야기 참조)를 반박한 고용노동부의 설명자료가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노동부는 10월20일 앰네스티가 보고서를 발표하자마자 미리 준비해둔 7장 분량의 반박자료를 냈다. 노동부가 택한 전략은 국가인권위원회의 2013년 보고서(‘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흠집내기였다. 인권위 보고서는 앰네스티가 선행조사 결과로 참고·인용한 자료다. 노동부는 인권위의 조사 결과가 과장됐음을 입증함으로써 앰네스티 보고서의 신뢰도 하락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농업과 축산업 노동자 간의 비율 차이
노동부는 “앰네스티 보고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는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이민정책연구원의 조사와 큰 차이를 보인다”며 서두를 열었다. 이민정책연구원 조사(‘2013년 체류외국인 실태조사: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 외국인의 취업 및 사회생활’)는 법무부의 연구용역 결과물이다.
노동부는 두 기관의 조사 결과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인권위 조사에선 127만원으로 나왔지만 법무부는 133만원으로 조사했다. 노동시간은 각각 월평균 283.7시간과 주당 62.6시간으로 나타났다. 임금체불 경험(68.9%와 5.1%) 등 모든 분야에서 인권위의 수치가 높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가 이주노동자의 비참을 과장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노동부의 논리에 인권위 조사의 연구수행기관인 ‘이주민과함께’가 발끈했다. 이주민과함께에 따르면, 두 연구의 가장 큰 차이는 조사 대상 이주노동자 중 농업과 축산업 종사자의 비율이다. 인권위 조사에서 농업과 축산업의 이주노동자 비율은 각각 82%와 16.8%였다. 법무부 조사에선 42.9%와 40.1%를 기록했다. 두 조사 모두 축산업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축산업 이주노동자 비율이 높은 법무부 조사 결과가 인권위 쪽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주민과함께는 농업과 축산업 노동자의 응답 결과를 분리한 뒤 두 기관의 조사를 재비교했다. 그 결과 인권위와 법무부의 연구 수치는 거의 일치했다. 월평균 임금은 인권위 조사가 ‘농업 123만8천원, 축산업 144만원’이었고, 법무무 쪽이 ‘농업 121만~125만원, 축산업 144만원’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경우도 노동부는 인권위(월평균 283.7시간)와 법무부(주당 62.6시간)를 서로 다른 기준으로 비교했다. 동일 기준으로 바꿔놓으면 각각 ‘65.3시간 대 62.6시간’(주 근무시간)과 ‘283.7시간 대 272시간’(월 근무시간)이 된다. 인권위 쪽 노동시간이 조금 더 많은 것 역시 농업 노동자와 축산업 노동자 간의 비율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제도를 보완하라는 요구를 묵살”
임금체불 경험에선 두 조사의 격차가 컸다. 이주민과함께는 질문 방식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았다. 인권위는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한 번이라도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지’를 물은 반면, 법무부는 ‘현재 일하는 농장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질문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이주민과함께 부설) 연구위원은 노동부의 연구자료 왜곡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담당기관으로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시키고 제도를 보완하라는 국내외의 요구를 묵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주민과함께는 고용노동부 장관 앞으로 공문을 보내 해명을 요구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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