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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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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밥상’을 위해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등 ‘30인의 밥상’ 농·축산
이주노동의 실태 알리고… 한살림 등 노동인권 개선 서명운동 동참하고
등록 2014-11-07 06:23 수정 2020-05-02 19:27
10월25일 ‘한살림 가을걷이’ 행사장(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농·축산 이주노동자 ‘인권밥상’ 캠페인 부스를 차린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이 고용노동부 장관 앞으로 보내는 탄원 서명을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제공

10월25일 ‘한살림 가을걷이’ 행사장(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농·축산 이주노동자 ‘인권밥상’ 캠페인 부스를 차린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이 고용노동부 장관 앞으로 보내는 탄원 서명을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제공

‘인권밥상’은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손만으론 차려지지 않는다.

전남 완도에서, 강원도 삼척에서, 충남 부여에서, 인천 강화에서, 서울과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10월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오방놀이터)에 모였다.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남성 농부와 딸기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이, 전복 생산자협동조합 관계자와 유기농산물을 유통하는 사업가가, 매크로바이오틱 요리사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인권단체 활동가가 ‘인간다운 밥상’을 이야기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 ‘인권밥상’ 공동캠페인 탄원 엽서도 썼다. 근로기준법 제63조(농·축산 분야 법 적용 제외) 폐지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허용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촉구했다.

한 달에 한 번 밥을 나누며

‘30인의 밥상’(푸드앤저스티스 지니스테이블·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오방놀이터 공동주최)은 지난해 12월 시작된 ‘소셜 다이닝’ 프로그램이다. 먹거리정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밥을 나누며 실천을 모색한다. 10월 밥상엔 박진희(‘푸드앤저스티스 지니스테이블’ 대표)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자문위원의 제안으로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고민하는 꼭지가 포함됐다. 10월20일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보고서를 낸 국제앰네스티의 변정필 캠페인팀장이 참석자들에게 실태를 설명했다.

박진희 위원은 지난해부터 슬로푸드 매니저 교육 때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이야기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가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30인의 밥상’엔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를 초청해 농·축산 이주노동 실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9월엔 경기도 안산시 지구인의정류장을 직접 방문해 이주노동자들과 음식을 나눴다. 그는 강조했다.

“현재 한국 농·축산업엔 노동권이란 개념이 확립돼 있지 않다. 농가들이 기업농으로 규모를 키워 생존을 도모하려면 좋은 기업인과 마찬가지로 좋은 농업인의 모델이 정립돼야 한다. 나도 농사를 짓는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한국 농업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는 전국 20여 개 지부 생산·소비자 교육에 농·축산 이주노동 실태를 고민하는 과정을 포함시킬 방침이다. 각지 회원들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휴식 공간, 고속도로휴게소 식당 등에도 캠페인 포스터와 탄원 엽서를 비치한다. 지역 특산물의 슬로푸드 연구를 대행해주는 지방자치단체에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제안도 논의하고 있다. 12월12~13일 한국슬로푸드대회 때 차리는 30인의 밥상에도 같은 주제를 올릴 계획이다.

‘인권밥상’은 고용주-이주노동자 혹은 생산자-소비자 간의 이항대립 관계가 아니다. 전국의 논밭이 모여 하나의 밥상을 이루듯 밥상의 순환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의 공감과 참여로 가능하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이 차린 ‘눈물의 밥상’에서 눈물을 걷어내는 일에 생산자와 소비자들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탄원에 나선 생산자·소비자 조직들

먹거리정의를 화두로 모인 생산자·소비자 조직들이 탄원에 나섰다. 한살림은 누리집에 캠페인 페이지(www.hansalim.or.kr/?p=29845)를 열고 회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한살림은 “사람, 자연, 농작물, 가축,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존중받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생산과 소비는 하나다. 소비자의 생명을 살리듯 생산자의 일원인 이주노동자의 인권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한살림은 지난 10월25일 서울 가을걷이 행사(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인권밥상 캠페인 부스를 제공하고 서명운동을 응원했다. 11월8일 열리는 대전 가을걷이(대전 유성구 유림공원)에서도 부스가 마련된다. 한살림은 생산자 조합원들 중심으로 ‘이주노동자들도 인간적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쿱도 10월27일부터 누리집에 팝업창(www.icoop.or.kr/coopmall/icoop/campaign_board/human.html)을 띄워 온라인 탄원을 시작했다. 오프라인 매장엔 탄원 엽서를 비치했다. 11월부턴 지역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전국 2천여 개 ‘마을모임’에서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탄원 서명을 받는다. ‘아이쿱이 지향하는 윤리적 생산·소비엔 인권과 노동권이 예외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아이쿱 생산자회도 지지와 동참을 위한 선언을 추진 중이다.

국제식품노련(IUF)은 농업 등 식품 분야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국제산별노조다. IUF 한국지부는 최근 결성된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도와 캄보디아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대응을 지원하고 있다. 정옥순 사무국장은 “인권밥상 캠페인의 일환으로 근로기준법 제63조의 문제 등을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5개 국어로 된 매뉴얼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2015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를 맞아 국제 로비도 진행 중이다. ILO의 ‘농업노동자 결사 및 노동조합 결성’에 관한 11호 협약 개정을 앞두고 한국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의 연대를 호소하며

국제앰네스티의 인권밥상 캠페인 부스는 대학생과 한국 노동자들 곁으로도 찾아간다. 11월6일 열리는 중앙대학교(서울 동작구 흑석동) 축제 현장에서 게임의 방식으로 농·축산 이주노동자의 실태를 알린다. 이틀 뒤(11월8일) 개최되는 ‘2014 전국노동자대회’(서울시청)에선 한국 노동자들의 연대를 호소하며 탄원을 받는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국제앰네스티 온라인 탄원 참여: amnesty.or.kr/mw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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