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꽃은 지천에 피어 흐드러졌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와 학대당한 흑인 노예들의 꽃이 있었다. 북미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이방의 꽃은 산과 들에 생육하며 천대받는 ‘개’ 자를 얻었다. 일제 치하에서 망할 놈의 꽃이 하도 많이 돋는다고 ‘망할 망’(亡) 자 개망초(변현단 )가 됐다.
표지에 실린, 현실의 은유
농업 이주노동자 삭(29·남)은 타이에서 2010년 4월 한국에 왔다. 고향에선 자동차 부품 판매소에서 일했다. 생활비와 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다. 엣(36·여)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삭보다 6개월 뒤에 입국했다. 대학 졸업 뒤 호찌민에서 디자인 일을 하다 이주노동자가 됐다. 두 사람은 한 농장에서 만났다. 농장을 옮긴 엣이 2년 만에 돌아왔을 때 둘은 부부가 됐다. 2013년 12월 아들 홍을 낳았다. 지난 1월 타이로 데려가 삭의 부모에게 맡겼다. 엣은 2015년 10월 체류기간이 끝나 돌아가야 한다. 한 차례 사업장을 바꾼 엣의 이력이 그의 재입국을 어렵게 할 것(고용허가제는 사업장을 이동한 경우 재입국을 제한)이다. 김정용(50)의 사진 속에서 삭과 엣은 노동하고, 사랑하며, 홍을 낳고, 홍을 보냈다.
사진가 김정용은 개망초를 찍고 있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며 그들의 사진에서 개망초의 여정을 읽는다. 한국 국민이 외면한 농촌에서 한국인을 대신해 ‘노동력’이 된 그들은 지천으로 퍼지면서도 아직 서럽다.
김정용은 서울메트로 소속의 전동차 정비노동자다. 3년 단위로 전동자 전체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중정비를 25년 했다. 그는 부모님 밭에서 일하는 앗(45·남)과 오잉(42·여) 부부를 찍으며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프레임에 담았다. 타이인 부부는 미등록 노동자였다. 앗은 일도 잘했지만 농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2013년 4월 전후 부부는 10여 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차례로 귀국했다. 김정용은 앗을 따라 타이로 갔다. 방콕 시내에서 수백km 떨어진 벽지의 농촌 마을이었다. 앗의 가족을 촬영하며 김정용은 왜 그들이 한국에서 일해야 했는지를 이해했다. 자신의 카메라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그는 3년 동안 작업한 사진을 추려 지난 9월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전 이름을 ‘개망초의 꿈’이라 붙였다. 그중 한 컷이 제1033호(우리가 눈감은 인신매매) 표지에 실렸다. 고기잡이 투망에 걸린 듯 연출한 이주노동자의 사진은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현실을 은유한다. 그가 ‘인권밥상’ 공동캠페인(이 국제앰네스티 등 8개 단체와 진행)에 제공한 사진들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 포토갤러리(http://photo.naver.com/galleryn/100000039)에서 전시되고 있다.
“고용허가제 독소조항부터 개선돼야”“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더 이상 농촌이 유지될 수 없고 우리의 밥상도 차려지기 힘들다. 내가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듯 그들도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63조와 고용허가제 독소조항부터 개선돼야 한다. 나의 부모님과 형님도 농사를 짓는다. 국가가 제도의 문제를 노사의 문제로 떠넘기는 한 농민도 이주노동자도 행복할 수 없다.”
개망초를 이방의 꽃으로 보는 한국인은 이제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개’ 자를 떼고 그대로의 존재로서 살아가는 삶을 그의 사진은 응원한다. 그의 피사체들이 염원하는 ‘개망초의 꿈’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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