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오늘 귀하를 부른 것은 몇 가지 양국 간의 관심사를 협의하기 위한 것인데 먼저 ‘사이밍턴’ 소위원회에 관해서 상황이 어떠한지요?
대리대사: ‘사이밍턴’ 소위원회는 오는 2월23일부터(실제로는 24일 -필자) 시작해서 약 일주일 동안 개최할 것이라 하는데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 그리고 ‘브라운’ 각서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합니다.
장관: ‘사이밍턴’ 소위원회에서는 비밀회의로서 청문회를 열 것이라고 하나 ‘브라운’ 각서에 관해 공개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복잡한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공개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대리대사: 본인도 같은 생각이지만 상대가 국회의원이니만큼 개별적으로 토의사항이 누설될 경우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정부로서도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 줄 압니다마는 한국 정부 측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국 신문에서 너무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관: 물론 한국 정부 측으로서는 이러한 문제가 조용히 지나가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마는, 우리도 언론만은 어찌할 수 없다는 점도 귀하는 염두에 두시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중략)
장관: 국방부로부터 받은 연락에 의하며는 70년도 군원이 1억4050만달러라고 한다는데 그것이 근거 있는 말인지요? 만일 사실이라면 당면한 노후 장비의 대체 문제, 그리고 운영비의 앙등 등의 악조건하에 있는 처지에서 1억6천만불이 있어도 겨우 현상 유지가 될까 말까 하는데 2천만불 이상이나 삭감된다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리대사: 본인이 알기로는 ‘포터’ 대사가 ‘사이밍턴’ 소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국무총리 각하를 만나서 이 문제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의 요인들도 그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략)
장관: 미국의 대한군원이 총체적으로 삭감되어서는 안 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대한 관심이 있는 바를 귀하께서 워싱턴에 꼭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정부 조여온 사이밍턴 청문회1970년 2월20일 금요일이었다. 이날 오전 11시30분, 최규하 외무부 장관은 장관실에서 레스람 주한미대리대사와 대화를 나눴다. 뭔가 긴급했다. 사이밍턴 청문회 때문이었다. 사이밍턴 청문회란 미국 스튜어트 사이밍턴 상원의원을 의장으로 하는 안보조약 및 대외방위 공약에 관한 조사분과위원회를 일컫는 말이다. 청문회는 나흘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2월24일부터 26일까지로, 한국은 마지막 차례. 필리핀(1969년 9월30일~10월3일), 라오스(1969년 10월20~22일), 타이(1969년 11월10~14일), 자유중국(대만, 1969년 11월24~26일), 일본 및 오키나와(1970년 1월26~29일)를 이미 거쳤다. 모두 미국 정부의 돈으로 베트남에 파병을 하거나 기지를 제공했던 아시아 동맹국이다. 청문회는 그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조사하는 자리다. 행정부 쪽 증언석엔 윈드롭 브라운 동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차관보와 마이 켈리스 주한미군사령관, 윌리엄 포터 주한미대사 등이 앉을 예정이었다. 청문회를 앞두고 미국에 간 포터 대사 대신 레스람 대리대사라도 불러야 했다. 최규하 장관은 그에게 청문회를 둘러싼 ‘한국 쪽의 관심사항’을 전했다. 관심사항이란 단순했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과 관련해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
베트남 파병은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브라운 각서’였다. 브라운 각서란 미국 정부가 1966년 3월7일 브라운 주한미대사를 통해 한국 정부의 베트남전 추가 파병을 조건으로 14개항의 보상 조치를 약속한 것을 말한다. 미국 정부의 파병 비용 부담은 물론 국군장비 현대화 지원, 베트남에서의 각종 사업에 대한 한국인 업자 참여, 차관과 군사원조 제공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 브라운 각서가 사이밍턴 청문회를 통해 도마 위에 오를 조짐이었다. 한국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미 한국 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착신전보 내용을 보면, 브라운 각서 공개로 인해 대한군원(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이 삭감되거나 끊길지도 모른다는 정부의 우려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군 파월을 계기로 사이밍턴 조사위원회에서 한국 측이 과도의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는 비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바 이에 대하여 (미국) 행정부에서는 최대한으로 그를 부인하고 한국 측을 옹호할 계획이라 함. (하략)”(1970년 1월OO일의 착신전보 중)
“본직은 브라운 각서 공개로 인하여 한국이 월남에 ‘용병’을 보낸 것과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대호 지시사항을 브라운 대사(1966년 주한미대사 역임. ‘브라운 각서’의 주인공이며 1970년엔 동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차관보로 옮긴 상태였음. -필자)에게 설명하였던바, 브라운 대사는 자기들로서도 그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양국에게 체면 손상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하였음.”(1970년 1월23일의 착신전보 중)
드러나기 시작한 한국군의 잔혹행위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나타났다. 바로 한국군의 잔혹행위 의혹이다. 사이밍턴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실제 1970년 2월17일 외무부 장관은 국방부 장관 앞으로 ‘주월한국군의 불상사에 관한 문의사항’이라는 전문을 보냈다. “미 국무성은 앞으로 있을 미 상원 사이밍턴 조사위원회에서 주월 한국군의 잔학행위 등 불상사설에 관한 질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됨에 비추어 여사한 불상사설과 관련한 아 측의 징계조치 사항의 유무와 징계조치가 있었을 경우 동 조치에 관한 자료를 주미대사관을 통하여 요청한 바 있으니 이에 관한 것을 시급히 회시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1969년 12월부터 미 국무성과 국방부, 주월미대사관 사이엔 한국군의 잔혹행위 의혹을 둘러싼 서신들이 오고 갔던 것이다. 서신 속엔 그 이름이 등장했다. 퐁니, 그리고 퐁넛.
1969년 12월18일이었다. 남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에 있는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샘 샤프 대령은 비밀보고서 한 부를 주월미군사령부 참모장 타운젠트 소장에게 제출한다. 제목은 ‘1968년 2월12일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 이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1970년 1월10일엔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또 다른 고위 장교 로버트 쿡 대령이 비밀보고서 한 부를 참모장에게 건넨다. ‘1969년 4월15일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 이튿날인 1월11일에도 쿡 대령은 또 다른 사건의 보고서를 같은 상관 앞으로 보낸다. 사건 날짜만 다른 ‘1968년 10월22일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이었다. 세 사건은 모두 베트남 중부지방인 꽝남성에서 벌어진 것으로 각각 2월12일은 디엔반현 퐁니·퐁넛, 4월15일은 지쑤엔현 푹미사, 10월22일은 호앙쩌우 마을을 무대로 했다. 퐁니·퐁넛촌에 대한 조사보고서엔 1968년 2월12일 사건 직후 이를 목격한 미군들과 남베트남 민병대, 퐁니·퐁넛 마을 주민, 남베트남군 지휘관 등의 진술 내용은 물론 웨스트몰랜드 주월미군사령관과 채명신 장군 간에 오간 편지와 함께 미군이 희생자들을 찍은 사진이 첨부됐다. 주월미군사령부는 왜 이들 사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서 상부에 보고했을까.
이는 미국 내 싱크탱크 집단인 ‘랜드재단’의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1968년 7월 랜드재단은 미 국방성의 용역을 받아 ‘베트콩의 정치 양식’이라는 보고서(이른바 ‘랜드보고서’)를 발간했다. 1966년 중반 베트남 푸옌성의 민간인 수백 명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내용이었다. 1969년 12월12일 미 국무성은 이 내용을 사이공에 있는 주월미국대사관에 알렸고, 벙커 대사는 에이브럼스 주월미군사령관에게 문서를 회람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 국무성은 주월대사관을 통해 주월미군사령부 쪽에 한국군의 잔혹행위와 관련된 추가 정보가 없는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1968년 2월12일의 퐁니·퐁넛 사건을 포함한 세 가지 조사보고서였다. 1970년 1월10일 미 국무성 장관 윌리엄 로저스는 주월대사관에 보낸 전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런 의혹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조사했는가. 조사를 안 했다면 왜 안 했는가. 우리는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고 결론지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인들에 대한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그들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가. 이런 사실들에 대해 어느 정도 언론에 이야기해도 되는가.” 국무성은 하루 뒤인 1월11일 주한미대사관에도 전문을 보내 이렇게 말한다. “한국군 관련 사건에 관한 보고서가 절대로 절대로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할 것.”
예고된 태풍은 오지 않고…언론 보도에 대한 경각심을 언급한 것은 1월12일의 기사와 관련 있다. 가 그날 랜드보고서의 내용을 입수해 소개하며 “주월미군사령부의 고위 장성이 한국군에 대한 조사를 중단시켰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보도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았는지 1월10일 작성된 미 국무성 전문엔 미국 정부가 우려하는 지점이 정확히 담겼다. “우리(국무성과 국방성 -필자)의 관심사는 주월미군사령부가 이 사건들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난이다.” 그 비난은 2월24일부터 시작하는 한국에 대한 사이밍턴 청문회를 통해 터져나올 수 있었다. 밀라이 사건으로 인해 베트남 파병의 명분이 도전받는 상황에서, 그 여진이 주요 동맹군인 한국군의 잔혹행위로 옮겨붙는 걸 막아야 했다. 은폐 노력이 성공한 덕분인지 퐁니·퐁넛 등 추가로 보고된 3건의 사건 정보는 미국 언론에 더 이상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언론에는 기사에 대한 관제 논평만이 간략히 보도됐을 뿐이다. “노영서 국방부 대변인은 15일 하오 지난 66년 주월한국군 해병대가 월남 민간인에 대하여 이른바 잔학행위를 범하였다는 일부 외신 보도에 대해 ‘이는 주월한국군을 포함한 우리 국군 전체의 명예와 한국의 국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보도로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국방부의 공식 태도를 발표했다. 노 대변인은 이 발표문을 통해 일부 외신이 보도한 주월 한국군의 잔학행위 운운은 하등의 입증자료도 없이 단순히 월남 피란민의 진술과 풍문을 근거로 한 기사로서 이는 연합군이 월남에서 추구하고 있는 공동노력을 저해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1970년 1월16일치)
예고된 태풍은 오지 않았다. 사이밍턴 청문회에서 한국 정부를 전전긍긍케 할 내용은 없었다. 청문회가 끝난 뒤 1970년 3월2일 외무부가 ‘대통령 각하’와 ‘국무총리 각하’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면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이 여하한 것이며 대한 정책이 미국의 능력 면에서 적절한 것인가 등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청문회의 주요 질의 목록으로 꼽은 4개항 중 하나엔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에 의한 월남전에 있어서의 한국군의 ‘잔학행위’설에 관한 규명”이 포함됐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알려진 그 풀부라이트다. 그러나 이는 1월12일치에 보도된 사건을 물은 것으로 주월미군사령부가 추가 조사한 퐁니·퐁넛 사건 등에 접근하는 것은 아니었다. 답변은 뻔했을 것이다. 바로 앞 에서 보도한 한국 국방부의 논평 수준처럼.
박정희가 진실을 알고 싶었던 이유였을까대통령 박정희는 미리 알았을까. 주월미군사령부가 한국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추가 정보를 미 국무성으로부터 요구받던 시점이 1969년 12월12일. 국무성과 국방부, 주월미국대사관 사이에 공식적인 문서가 활발히 오고 가던 때였다. 그렇다면 이를 한 달 정도 앞둔 1969년 11월의 박정희는 물밑에서 이와 관련한 정보를 주월한국군사령부나 중앙정보부를 통해 보고받지는 않았을까. 아직은 추정만이 가능하다. 주월미군사령부가 조사한 세 가지 사건 중 가장 파괴력이 큰 것은 퐁니·퐁넛이었다. 희생자가 70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퐁니·퐁넛 사건이 혹시라도 1970년 2월 사이밍턴 청문회의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 퐁니·퐁넛촌에 진입한 해병들을 1969년 11월 중앙정보부로 불러 조사한 것은 박정희의 그런 노파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k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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